▲이년 전부터 팔순 엄마는 불볕더위가 오면 식사를 잘하지 못한다. 링거를 한두 번은 맞아야 여름을 지낼 수 있다.(사진은 영화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2015)의 한 장면)
나의아들나의어머니(2015)
엄마는 잘 지내는 걸까? 혹 병원에 입원한 건 아닐까? 이년 전부터 팔순 엄마는 폭염이 오면 식사를 잘 못 했다. 병원에서 링거를 한두 번은 맞아야 여름을 통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올해는 예년보다 훨씬 덥다. 내가 휴가를 떠나기 전에도 식사를 못 하신다고 했으니 분명 식사를 못 하고 계실 게 뻔하다. 전화를 걸어보거나 집으로 찾아가면 금방 확인이 될 일인데 나는 전화도 하지 못하고 8월 첫 주말을 보내고 있다.
7월 말, 죽도 못 드신다는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영양제를 맞춰 드리러. 8월 2일엔 잘 지내고 있다는 엄마의 말이 못 미더워 반찬을 싸 들고 친정에 갔다. 엄마는 한의원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엄마를 한의원에 내려 드리고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식사를 못 해도 침은 매일 맞으러 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우리가 휴가 다녀온 뒤 며칠이라도 우리 집에 와서 지내는 게 어떻겠냐 물었다. 아버지는 생각해 보겠다 했다.
기숙사에서 지내던 첫째까지 방학이라 방 하나 차지하고 있어서 우리 다섯 식구만으로도 집이 꽉 차지만 부모님을 오시라 말씀드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 생각했다.
2박 3일 휴가를 다녀온 뒤에도 친정에 흔한 안부 전화조차 하지 못했다. 팔순 엄마가 여전히 식사를 못 하고 있을 거라 예상을 하면서도 전화를 드리지 못했다. 휴가 가기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며칠 간이라도 지내보자던 그 말을 지킬 엄두가 안 났다.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에어컨 없는 집이 더웠다. 아이들 밥해 주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 드는데 부모님까지 모셔 와서 매끼 챙겨드릴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통화가 목에 걸려서 전화조차 못하고 하루하루 넘겼다. 아침이면 막내를 데리고 도서관으로 탈출하고 해 질 녘에나 집에 돌아왔다. 드디어 누가 보아도 내가 명명백백한 불효자 반열에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위가 한풀 꺾인 8월 둘째 주말,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가슴이 덜컹 내려왔다. 올 것이 왔구나. 친정에 연락을 못 드린 지 열흘이 더 지나 있엇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엄마가 죽도 통 못 드시는데."굶으시던 엄마, 비릿한 수채통 냄새를 어찌 맡았을까죽도 못 먹은 엄마를 보러 가며 난 내 아이들과 남편 아침을 챙겨주고 내 입에도 밥을 꼬박 꼬박 구겨 넣었다. 친정에 가서 벨을 눌렀다. 담 밖에서 들여다보니 엄마가 보인다. 그런데 엄마가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싱크대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닭을 다듬는 걸까? 그새 기운이 나서 닭죽을 끓여 드시려나? 엄마 하고 불렀다. 엄마가 날 돌아보더니 한숨을 쉬고 장갑을 벗는다. 힘겹게 걸음을 떼어 대문을 열어 주셨다.
아버지는 외출하셨다. 뭘 하고 있었냐 물으며 싱크대로 갔다. 싱크대엔 수채통과 솔이 있다. 수채통엔 물컹하고 누런 물때가 끼어 있다.
"아버지가 설거지는 하셔도 이런 건 안 하잖아?"팔순 아버지 눈에 수채통에 낀 누런 물 때가 보일 리 없다. 보인다 한들 닦으실까? 단식하면 냄새에 민감해진단 말을 들었다. 엄마도 마찬가지일 거다. 기운도 없고 위장이 텅 빈 엄마가 비릿한 수채통 냄새를 어찌 맡았을까?
왈칵 눈물이 솟는다. 팔순 엄마에겐 굶으면서도 놓을 수 없는 게 살림이구나. 못 본 사이 엄마 얼굴이 핼쓱해졌다. 눈두덩이도 멍이 든 것처럼 거무스레하다. 병원 응급실로 가서 영양제를 맞춰 드렸다.
내가 못 온 사이 엄마는 세 차례 영양제를 맞으셨다고 한다. 영양제 힘으로 더위를 견디고 있었던 거다. 내가 도서관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책 읽고 있을 때 엄마는 이 몸으로 영양제를 맞으러 다녔다.
친정에 와서 엄마에게 미음을 끓여드렸다. 아버지는 내내 죽을 끓여 주셨다고 한다. 죽에 따뜻한 물을 더 넣어 저어 드셨는데 그게 잘 먹히지 않았단다. 끓여야 미음이지. 미음이 미숫가루인가 물 넣어 먹게. 아버지는 뭘 하신 걸까?
하긴 그 물음을 하기 전에 넌 뭘 했는데. 팔순 아버지가 안 아픈 것만 해도 고마운 거다. 뭘 더 바라나?
"엄마, 우리 집에 가자. 그러면 굶지는 않잖아?"엄마는 안 된다고 한다.
자식들에게 신세 지기 싫어하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