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의 개고기 논쟁 전 생각해봐야 할 것들

[식탁이 낯설어질 때 1-④] 윤리적 채식주의 논쟁 3라운드

등록 2016.09.16 16:44수정 2016.09.1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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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①] '채식인'과 '채식주의자'는 다르다
[1-②] 돼지가 고통을 느끼면 삼겹살 대신 샐러드 먹어야 할까
[1-③] 상추도 흑돼지처럼 고통을 느낄까


영국에서 '한국이 야만적 개고기 유통을 금지하도록 압박하라'는 청원이 10만 명 이상의 서명을 얻어 의회에 제출됐다. 또한 영국 외무부 알록 샤르마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은 "동물을 사랑하는 영국의 평판에 걸맞게 한국이 개고기의 유통을 바꾸도록 압력을 가하겠다"라고 밝혔다.(관련 기사: 영국 정부 "한국 개고기 유통 중단 압박하겠다") 파장은 한국까지 전해져 문화적 차이에 대한 존중 요구와 내정 간섭 논란을 낳고 있다.

개를 먹으면 안 된다는 영국인들의 생각이 옳든 틀리든 생각을 전하는 태도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영국인들의 문제 제기 자체를 한국인들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묵살한다면 이 역시 성숙한 태도로 평가받지 못 할 것이다. 개는 다른 동물보다 사람에게 친숙한 동물에 가깝다. 하지만 개와 다른 동물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떤 근본적 차이는 없다. 그럼 개고기 논쟁 전 생각해봐야 할 것은 육식 문화 자체가 아닐까.

 강아지는 사람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이다. 그러나 몇몇 나라들에서는 식용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강아지는 사람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이다. 그러나 몇몇 나라들에서는 식용으로 취급되기도 한다.pixabay

지난 연재 정리
동물해방론자 피터 싱어(프린스턴대 석좌교수)는 육식에 반대하고 채식을 할 것을 주장한다. 또한 다양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제시해 인간과 동물은 근본적 차이가 없고 정도의 차이만 있으며, 동물도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는 감응력이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동물의 도덕적 지위도 인정해야 하고 인간의 사소한 이익 때문에 육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중앙대 철학과 맹주만 교수는 인간의 사소한 이익 때문에 동물에게 큰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상식에서 동물의 복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때가 때때로 있다는데 동의하지만, 고통을 보편적인 도덕의 잣대로 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싱어가 식물에 대해서는 공정한 고려를 한 듯 보이지 않고, 무엇보다 각각의 존재들에게 고통이 갖는 의미(가치)에 대한 해명과 고통을 느낀다는 '생물학적 사실'로부터 어떻게 '도덕적 규범'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해명이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강원대 철학과 최훈 교수는 맹 교수의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감응력보다 높은 곳인 합리성을 도덕의 기준선으로 잡으면 인간까리 임의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과거 서유럽 제국주의자들처럼-필자 주) 인종차별을 하는 것조차 비난할 수 없게 되므로, 맹 교수처럼 식물도 고려해 감응력보다 낮은 곳에 기준을 그을 수는 없는지 모색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식물은 중앙 집중적 신경 체계가 발달하지 않아 의식이 있다고 볼만한 징후가 없고, 따라서 감응력을 도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최 교수가 보기에 정당한 선택이다. 또한 인간과 동물 모두 고통을 느끼고 또 고통은 그들에게 싫어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상식을 뒤집을 근거가 없다면 양쪽의 이익을 공정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때때로 다른 존재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맹 교수의 지적처럼) 어떤 일이 고통스러워도 '단지 중요하기 때문에' 감수할 때도 있다. 이는 인간은 단순한 고통 이상의 존재이며 따라서 감응력을 종을 초월한 독립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의 잣대로 택하는 길도 험난할 것이라는 증거처럼 보인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요약 끝.(필자)

육식이 나쁘다면 채식도 나쁜지 따져봐야 한다?

맹 교수는 다시 끈질기게 싱어가 식물도 고려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재밌는 건 정말 식물도 먹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귀류법 전략인 듯 보인다는 것. 귀류법은 상대방처럼 어떤 주장을 부정하면 모순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 주장이 참임을 증명하는 전략이다. 쉽게 말해 "내 말이 틀렸고 네 말이 맞다 쳐보자. 그러면~"식의 논리랄까.(필자)

맹 교수가 애초에 주장한 건 고통만으로는 도덕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맹주만, 2007:249) 그런데 싱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도덕적 기준으로 제시한다.(Peter Singer, 1990:1) 맹 교수 입장에서는 귀류법으로 싱어의 주장을 물리쳐야 하는 셈.(필자)


맹 교수는 우선 싱어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필수적인 조건으로 의식의 존재를 든다는 점에 주목한다. 싱어는 생명을 '자의식과 의식이 있는 생명' '의식만 있는 생명' '의식도 없는 생명(식물)' 셋으로 나눈다. 또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를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나눈 뒤 식물은 의식이 없어서 먹어도 괜찮다고 주장한다.(맹주만, 2009:24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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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 교수는 싱어가 만에 하나 식물이 고통을 느껴도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필수적으로 섭취하지 않으면 훨씬 큰 고통을 겪으므로) 채식을 허용할 탈출구를 남겨뒀지만, 이것은 2차적 조치일 뿐 애초에 식물도 의식과 도덕적 지위가 있는지 고려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또한 싱어는 인간과 동물의 행동이 유사하다는데 주목하지만 동물의 의식과 인간의 의식과 동등하게 비교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을 하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가령, 원숭이들의 의사소통은 겉보기에 인간과 비슷하지만 실은 인간처럼 상대에게 생각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데 그친다.(맹주만, 2009:252~254) 조심스러운 문제지만,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건 인간의 편견일 가능성도 아예 없진 않다. 한편 식물도 의식이 있을 가능성, 무언가를 느낄 가능성은 없을까?(필자)

맹 교수는 인간은 하등 동물에 비해 감각 기능이 다양하게 분화된 동시에(통각은 이중 하나일 뿐이다) 중앙 집중적 신경 체계로 통합돼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동물들의 먹이사냥에서의 민첩함, 예민함, 과단성 등을 보면 동물이 인간보다 더 우월하다고 보는 것도 가능하고, 심지어 식물이 더 우월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식물은 굳이 움직이지도 따로 음식물을 소화시키지도 않는다. 그저 땅에 뿌리를 박고 삼투압을 이용해 자신이 융해할 수 있는 영양분만 선별해 섭취하니 오히려 운동으로부터 해방됐고 훨씬 효율적이라 볼 수도 있다. 또한 빛에 반응하고(굴광성) 중력에 반응하며(굴중성) 단단한 물체에 반응한다(굴촉성). 심지어 잎을 오므려 곤충을 잡아먹는 경우도 있다. 식물도 이처럼 감각을 갖는다면 의식적 존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설사 동물과 같은 고통을 느끼지는 못 한다 해도.(맹주만, 2009:264~267) 그럼 다양한 감각 중 하필 고통을 도덕의 잣대로 봐야 할 이유는 뭘까. 인간, 동물, 식물 각각에게 고통은 어떤 의미일까. 싱어는 의식의 존재를 생명이 도덕적 지위를 얻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으로 들고 채식은 정당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싱어와 같은 전제에서 출발해도 이와 모순되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맹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필자)
"싱어는 식물의 감각을 배제하는 고통 중심의 도덕적 기준을 포기하거나 식물도 도덕적 고려에 포함시키는 새로운 감각 중심의 도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중략) 만일 식물이 감각을 지닌 의식적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의식이 갖는 어떤 능력의 차이를 식물을 차별하는 정당한 근거로 삼을 경우, 동일한 이유에서 인간과 동물의 의식의 어떤 차이를 근거로 양자를 차별하는 것 또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맹주만, 2009:267~269)
"식물과 무척추동물은 자신이 받는 영향을 신경 쓰지 못 한다"

 개미는 자신이 받는 영향을 신경쓰지 못 할까?
개미는 자신이 받는 영향을 신경쓰지 못 할까?pixabay

최훈 교수는 감응력(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도덕의 잣대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하지만, 여전히 감응력이 도덕의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감응력보다 높은 곳 가령 의사소통 능력이 도덕의 잣대가 되면, 영·유아나 식물인간 등(가장자리 인간)의 도덕적 지위를 인정할 수 없게 돼 큰 부담을 져야 한다.

또한 의사소통 능력이 있는 사람끼리도 능력의 정도에 따라 도덕적 지위를 차등적으로 부여해야 하는데 이것은 '엘리트주의 즉 차별이다. 사람들이 특정 인종이나 성별을 차별하지 말고 이익을 평등하게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실제로 해당 인종이나 성별의 어떤 능력이 뛰어난가 아닌가와 같은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윤리적인 '원칙'이기 때문이다.

어떤 존재가 의사소통 능력을 덜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쾌락과 고통을 느껴 생기는 이익이나 손해를 무시하면 안 된다. 감응력이 도덕적 지위를 결정할 때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식물이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는 없어도 다른 어떤 경험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신경 쓰지' 않으므로 도덕적인 고려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어서 최 교수는 식물이 동물보다 우월할 때도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 생물학적 '사실'에서 어떻게 도덕적 '가치'를 이끌어낼지 맹 교수는 못 보여줬지만, 감응력 이론은 인간과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생물학적 '사실'에서 도덕적 '가치'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이익 평등 고려 원칙과 고통을 피하는 것의 도덕적 의미를 제시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식물과 무척추동물(식물을 경작하는 과정에서 살생이 불가피한 곤충 등)은 유해 수용 능력은 있어서 회피 반사를 할 때도 있지만 고통 현상 능력은 없으며, 따라서 감각이나 의식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자신이 받는 영향에 '신경 쓰지' 못 하므로 채식주의는 현실적이지 못 하다는 비판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최훈, 2010:123~135)

[생각해보기] '가장 자리 인간' 사례

나는 현재까지 논쟁 추이로 볼 때, 맹 교수가 싱어의 주장의 한계를 짚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그러나 싱어 한 사람의 주장에 흠이 있다고 도덕적인 이유에서의 채식주의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편 나는 최 교수가 맹 교수의 비판으로부터 감응력 이론을 완전히 방어해내는 데는 성공하지 못 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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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의사소통 능력 등을 도덕의 잣대로 삼으면 영·유아나 식물인간 등의 도덕적 지위도 인정할 수 없게 된다며 이를 "가장 자리 인간" 사례라 부른다. 하지만 설사 사람들이 감응력 이론을 따른다고 가장 자리 인간들의 도덕적 지위는 인정될까? 식물인간은 외부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하지만 고통을 느낀다고 보기 힘들다. 심지어 최 교수 스스로도 이렇게 말한다.

"무척추동물 그리고 사람 중에서도 마비 환자들은 유해 수용이 있어도 그것에 대해 불쾌함을 느끼지 않고 그래서 회피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도덕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고통이 있는 존재가 그것에 대해 신경 쓰기 때문이다. 유해 수용은 있는데 그것을 회피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반사적으로만 회피하는 존재는 그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것이고 도덕적으로 고려할 이유가 없다."(최훈, 2010:131)


가장 자리 인간의 도덕적 지위를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신경 쓸 수 있는지 아닌지 때문이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안보 상의 이유로 강력한 폭탄으로 어떤 고립된 마을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행위도 원칙적으로 정당화된다. 마을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신경 쓸 새도 없이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증발해버린다면.

사람들이 가장 자리 인간의 도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현실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능력을 계발하고 자율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잠재성 때문 아닐까(사회화든 의학적 측면에서든). 성인의 영·유아에 대한 도덕적 간섭을 일반적으로 허용하면서도(이것은 명백하게 도덕적 지위를 차등적으로 부여하는 행위다) 최소한의 존중을 꼭 해야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교육을 뜻하는 education도 어원적으로 잠재된 능력을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한편 맹 교수가 식물도 인간이나 동물보다 우월할 수 있음을 지적한 건 그러한 생물학적 '사실'에서 어떤 도덕적 '가치'를 이끌어내려는 적극적 주장을 하기 위해서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식물도 의식과 감각이 있고 그것이 나름의 도덕적 가치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데도(그것이 꼭 동물이 고통을 신경 쓰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일 필요는 없다), 싱어가 '원천적으로' 이를 공평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소극적 문제 제기로 보인다.

또한 인간과 동물 모두가 느끼는 고통이 나름의 가치를 가질 때가 있다. 이 경우 동물의 복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맹 교수는 인간은 단순한 고통 이상의 존재이며 어떤 일이 고통스러워도 단지 '중요하기 때문에' 감수할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고통이 과연 독립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의 잣대가 될 수 있을까. 채식주의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되려면 여기에 대한 해명이 꼭 필요해 보인다.(필자)

참고문헌
맹주만, '피터 싱어와 윤리적 채식주의' <철학탐구> 22, 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2007.
맹주만, '동물의 고통과 식물의 감각' <철학탐구> 26, 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2009.
최훈, '맹주만 교수는 과연 피터 싱어의 윤리적 채식주의를 성공적으로 비판했는가?' <철학탐구> 25, 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2009.
최훈, '감응력 이론 다시보기' <철학탐구> 27, 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2010.
최훈, <동물을 위한 윤리학>, 사월의책, 2015.
피터 싱어, <실천 윤리학>, 황경식·심성동 옮김, 철학과현실사, 1997.
Singer Peter, Animal Liberation, new revised edition, New York: Avon Books, 1990.
Singer Peter, "All Animals Are Equal.", in Philosophic Exchange 1, summer 1974.
#피터 싱어 #채식주의자 #한강 #최훈 #맹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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