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아직도 내 마음에 살아계시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도 어머니를 통해 생각나....감사

등록 2016.09.16 18:09수정 2016.09.1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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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가신 치매 어머니. 어머니를 잊으려 해도 잘 안 된다. 사모곡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다. 때론 유난스럽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리, 안 잊어지는 것을.... 추석 전날, 요양병원에 계신 내 친구의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아버지는 식사 중이시라서 어머니를 먼저 뵈었다. 참 고우시고 온유한 모습이셨다. "엄마! 엄마! 나왔어. 큰 아들 왔어 엄마. 벌떡 일어나셔서 집에 가셔야지. 추석인데 음식도 해주시고." 효자다. 얼굴을 만지며 부르는 친구의 '어머니를 위한 응원가'가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나도 손을 잡고 "어머니! 어머니! 친구예요. 어머니! 힘내세요." 어머니가 손을 꼭 잡아주시며 손으로 대답해 주셨다. 그 순간 천국 가신 예쁜 할머니, 내 어머니가 오버랩 되었다. 애절한 마음이 온몸으로 반응했다. "어머니 보고 싶네요."
 항상 아기처럼 예쁘셨던 어머니
항상 아기처럼 예쁘셨던 어머니나관호

추석을 맞으니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생각난다. 계란 노른자를 올려놓은 육회, 총각김치, 무채무침과 내가 좋아하는 쇠고기무국을 어머니는 잘 만들어 주셨다. 어머니가 그리워 집밥을 만들어 파는 백반집을 찾기도 했다. 특별히 다음날 국은 소고기무국으로 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친절한 사장님은 내 사정을 들어주셨다.


 내 어린시절 모습
내 어린시절 모습나관호

 어린시절 동네 친구둘과 함께(뒷줄 오른쪽이 '나')
어린시절 동네 친구둘과 함께(뒷줄 오른쪽이 '나')나관호

어머니를 생각하니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추억들이 하나 둘 생생하다. 덩달아 내가 고등학교 때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생각난다. 아들 바보로 사셨고, 아들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셨다. 어느 날은 동네 친구들과 총싸움놀이를 하고 싶으니 권총 말고, 장총을 사달라고 말씀드렸더니 퇴근하시며 장총을 살 수 없으시다며 철물점에서 장총을 만들어 오신 아버지다. 아버지의 아들 사랑은 늘 차고 넘쳤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공직에서 물러나신 후 엿장수 20여명을 거느린 고물상을 하셨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 철이 부족해 고물상을 통해 철이 조달되었다. 아이들은 집에서 길에서 주은 고철을 들고 와 엿과 바꿔 먹던 시절이다. 그때는 고물상집 아들이라는 새롭게 생긴 수식어가 싫었다. 어머니는 합숙하는 직원들의 밥과 옷을 뒷바라지 해주셨고, 특히 어려운 형편에 공부를 못한 엿장수 직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시기도 했다. 성격과 기질 자체가 부지런한 어머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셔서 아버지를 도우셨다. "어머니! 훌륭하셨어요."

 아버지와 어머니, 옛사진
아버지와 어머니, 옛사진나관호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인 내가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참 좋으신 분이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잘 나누셨고, 어디를 방문하든 꼭 손에는 설탕이나 기름, 소고기나 생선을 사서 들고 가셨다. 아버지는 삼대독자인 나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길 좋아하셨다. 내 위로 4명의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님. 태어난 후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부모님에게 다섯째인 나는 보호 받아야 할 존재였고 자랑거리였다. 아버지는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그러면 아버지 친구들은 종합과자 선물 세트를 사주시거나 용돈을 주시곤 했다. 아버지 친구들의 사랑 나눔은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는 꼭 이웃집 아이들을 불러 내가 받아온 과자를 내가 나누도록 가르치셨다.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를 다시 생각해 보니 기쁨이 생긴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다롱이와 산책 중이신 어머니
다롱이와 산책 중이신 어머니나관호

아버지를 돕던 어머니의 일과(?) 중 하나는 구겨진 지폐를 다리미로 펴는 일이었다. 재미있는 추억이다. 어머니는 엿장수들이 가져온 구겨진 돈을 그대로 놓지 않고 반듯하고 빳빳하게 만들곤 하셨다. 돈을 귀하게 여기셨다. 그 돈이 다른 사람의 손에 가야하니 빳빳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그처럼 정갈하신 분이셨다. 그런 돈 펴는 일과는 훗날 교회에 헌금을 내실 때도 이어졌다. 당시는 웃어넘겼지만 지나고 나니 아름다운 추억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하니, 기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 효자 친구가 차안에서 말했다. "우리가 부모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고, 반대로 봉양 받지 못하는 첫세대일거야."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아무튼 부모 봉양은 자식된 도리라 생각한다. 효자 친구의 지극 정성어린 부모님 간병과 봉양을 보면서 덩달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머니가 내 마음에 살아계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삶의 교훈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짐했다. '아이들에게 효를 가르치며, 아버지 어머니처럼 열심히 살아야지.'
덧붙이는 글 나관호는 '크리스천커뮤니게이션연구소' 소장이며 북칼럼니스트로 서평을 쓰고 있으며 북컨설턴트이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로 세상에 응원가를 부르고 있으며, 따뜻한 글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또한 역사신학과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을 통해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기도 하다.
#아버지 #어머니 #효자 #나관호 #부모 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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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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