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동네 친구둘과 함께(뒷줄 오른쪽이 '나')
나관호
어머니를 생각하니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추억들이 하나 둘 생생하다. 덩달아 내가 고등학교 때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생각난다. 아들 바보로 사셨고, 아들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셨다. 어느 날은 동네 친구들과 총싸움놀이를 하고 싶으니 권총 말고, 장총을 사달라고 말씀드렸더니 퇴근하시며 장총을 살 수 없으시다며 철물점에서 장총을 만들어 오신 아버지다. 아버지의 아들 사랑은 늘 차고 넘쳤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공직에서 물러나신 후 엿장수 20여명을 거느린 고물상을 하셨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 철이 부족해 고물상을 통해 철이 조달되었다. 아이들은 집에서 길에서 주은 고철을 들고 와 엿과 바꿔 먹던 시절이다. 그때는 고물상집 아들이라는 새롭게 생긴 수식어가 싫었다. 어머니는 합숙하는 직원들의 밥과 옷을 뒷바라지 해주셨고, 특히 어려운 형편에 공부를 못한 엿장수 직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시기도 했다. 성격과 기질 자체가 부지런한 어머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셔서 아버지를 도우셨다. "어머니! 훌륭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