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함경북도 혜산진까지 북진했던 유엔군들이 중국군 파상적 공세와 강추위를 견디지 못해 후퇴 도중에 길바닥에 앉거나 선 채로 쪽잠을 자고 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강추위는 적군보다도 더 무서웠다"고 전했다(1950. 11. 29.).
NARA
겨울의 강둑나는 한때 이 강둑이 좋았다. 일몰 직전의 저녁노을과 그 노을빛에 황금색으로 물든 강물이 좋았다. 이따금 찾아오는 물오리, 백두루미, 그리고 시원스레 길게 뻗어 있는 강둑, 그 모두가 나를 매료시켰다.
하지만 겨울의 강둑은 싫어졌다. 저 시뻘건 황토의 개펄은 나를 금방이라도 질식시킬 것만 같았고, 조수로 굽이치는 강물도 곧장 나를 삼킬 것만 같았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데, 밤낮없이 쏟아지는 대남방송은 내 영혼을 마비시키는 듯 짓눌렀다.
연초부터 몰아닥치는 한파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수은주는 영하 15도 내외를 맴돌지만 강바람이 무척 세차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이하일 것 같았다. 경계근무에는 겨울이 없었다.
일주일에 사흘은 수문초소에서 야근이다. 한밤중 강 쪽에서 '우두둑 우두둑'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이 결빙하는 소리요, 바닷물이 역류할 때 얼음이 깨지는 소리였다. 진지 안에도 이렇게 얼음집처럼 추운데 무개호인 잠복초소에 근무하는 병사들이야 얼마나 추우랴.
자정 무렵 순찰하고자 강둑을 올랐다. 북녘에서 몰아치는 세찬 바람에 몸을 가누기조차도 힘들었다. 초병들은 방한복, 방한모, 방한화로 무장을 했지만 이런 강추위를 막아내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초소바닥을 온통 볏짚으로 깔고 초병들은 모포를 여러 겹 뒤집어쓰고 그 위에 판초우의를 덮었다. 눈만 빠끔히 보였다. '졸면 죽는다'에서 '졸면 얼어 죽는다'로 구호가 바뀌었다.
강추위는 무장공비보다 더 무섭다. 총 한 방 쏴 보지도 못 하고 동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찰을 하면서 초병들에게 일렀다.
"몸을 자주 움직여라, 가만히 앉아 있으면 동상에 걸린다." 어떤 전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