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차 졸병들끼리 이게 뭔 짓거리인가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Ⅰ부 초록색 견장(14)

등록 2016.10.03 10:21수정 2016.10.0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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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방송


한강 건너 저편 산하는 북녘 땅이었다. 그런데 그쪽에서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대남방송을 쏟았다. 아마 접적 지역인 강 이편 우리 쪽에서도 그에 맞서 대북방송을 내보냈을 것이다. 남과 북의 대결은 꼭 소갈머리 없는 어린 아이들 싸움처럼 피장파장이었다.

두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어디 한 손이 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리가 나는가. 그저 불쌍한 것은 이제나 그제나 남과 북의 힘없는 백성들뿐이다.

어둠이 깔리면 숨을 죽이는 정적, 저 멀리 강 위에 남북을 가르는 DMZ 표지의 노란 불빛이 깜박깜박 비치고 있었다. 게다가 수상 초소의 서치라이트, 그리고 아군 순찰자의 포터블라이트가 일촉즉발의 전선임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아!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북녘산하다. 포대경으로 바라보면 거기에도 수양버드나무 가지가 휘늘어졌거나 미루나무가 우뚝 솟은 남녘과 똑같은 마을이 있었다. 모내기철이면 거기서도 모를 심었고, 추수철에는 황금빛 벼를 거두어들였다. 같은 핏줄, 같은 말을 하는 우리들의 형제자매인 김씨, 이씨, 박씨, 조씨 … 백성들이 그 마을에도 오손도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 이편과 저편에는 강대국들이 가져다 준 이데올로기로 빤히 보이는 산하가 지호지간의 거리지만 서울과 워싱턴보다 더 멀다. 그리고 쌍방의 병사들은 상부 명령에 따라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로 총구를 마주 겨냥하고 있다.


나는 강둑 초소를 순찰하면서 때때로 철조망 너머 저 북녘 산하에 차라리 이민족(異民族)이 살고 있다면 간장이 이처럼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아! 고함을 질러도 메아리조차 없는 곳. 비바람과 대남방송, 철모, 수류탄, Ml6소총, 클레이모어, 견인줄, 서치라이트, 야간조준경….


 한국전쟁 당시 함경북도 혜산진까지 북진했던 유엔군들이 중국군 파상적 공세와 강추위를 견디지 못해 후퇴 도중에 길바닥에 앉거나 선 채로 쪽잠을 자고 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강추위는 적군보다도 더 무서웠다"고 전했다(1950. 11. 29.).
한국전쟁 당시 함경북도 혜산진까지 북진했던 유엔군들이 중국군 파상적 공세와 강추위를 견디지 못해 후퇴 도중에 길바닥에 앉거나 선 채로 쪽잠을 자고 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강추위는 적군보다도 더 무서웠다"고 전했다(1950. 11. 29.).NARA

겨울의 강둑

나는 한때 이 강둑이 좋았다. 일몰 직전의 저녁노을과 그 노을빛에 황금색으로 물든 강물이 좋았다. 이따금 찾아오는 물오리, 백두루미, 그리고 시원스레 길게 뻗어 있는 강둑, 그 모두가 나를 매료시켰다.

하지만 겨울의 강둑은 싫어졌다. 저 시뻘건 황토의 개펄은 나를 금방이라도 질식시킬 것만 같았고, 조수로 굽이치는 강물도 곧장 나를 삼킬 것만 같았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데, 밤낮없이 쏟아지는 대남방송은 내 영혼을 마비시키는 듯 짓눌렀다.

연초부터 몰아닥치는 한파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수은주는 영하 15도 내외를 맴돌지만 강바람이 무척 세차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이하일 것 같았다. 경계근무에는 겨울이 없었다.

일주일에 사흘은 수문초소에서 야근이다. 한밤중 강 쪽에서 '우두둑 우두둑'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이 결빙하는 소리요, 바닷물이 역류할 때 얼음이 깨지는 소리였다. 진지 안에도 이렇게 얼음집처럼 추운데 무개호인 잠복초소에 근무하는 병사들이야 얼마나 추우랴.

자정 무렵 순찰하고자 강둑을 올랐다. 북녘에서 몰아치는 세찬 바람에 몸을 가누기조차도 힘들었다. 초병들은 방한복, 방한모, 방한화로 무장을 했지만 이런 강추위를 막아내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초소바닥을 온통 볏짚으로 깔고 초병들은 모포를 여러 겹 뒤집어쓰고 그 위에 판초우의를 덮었다. 눈만 빠끔히 보였다. '졸면 죽는다'에서 '졸면 얼어 죽는다'로 구호가 바뀌었다.

강추위는 무장공비보다 더 무섭다. 총 한 방 쏴 보지도 못 하고 동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찰을 하면서 초병들에게 일렀다.

"몸을 자주 움직여라, 가만히 앉아 있으면 동상에 걸린다."

어떤 전과자

 어느 날 이 이병(왼쪽)과 함께(1969. 12.)
어느 날 이 이병(왼쪽)과 함께(1969. 12.)박도
초병들은 졸음을 쫓고자, 동상을 막고 자 수시로 초소 밖에서 제자리 뛰기를 했다.

12초소를 지나는데 이두식(가명) 이병과 임영규 상병이 한 조로 근무 중이었다.

"근무 중 이상 무!"
"춥지?"
"괜찮습니더."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플래시로 얼굴을 비추니까 이 이병 눈자위에 눈물이 어려 있었다. 얼마나 추우면 울고 있을까? 그는 육가(육군교도소)에서 출소한 전과자였다.

그는 남해안 한 낙도 출신이었다. 약간의 밭뙈기를 농사지으면서 때때로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갔다. 같은 마을에 한 아가씨와 장래를 약속하며 사귀던 가운데 입대케 되었다. 그는 기갑부대 무전병이었다.

어느 하루 친구의 편지를 받고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충격을 받았다. 장래를 굳게 약속했던 아가씨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결혼식 전날 저녁 그는 권총 탄창에 실탄을 장전하여 품안에 넣은 채 탈영을 했다.

이튿날 결혼식장에 이르렀다. 막 결혼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주례의 성혼선언문이 낭독될 순간 그는 권총을 빼들고 차마 신랑신부 쪽으로는 쏘지 못하고 천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결혼식장은 그 총 한 방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곧 출동한 경찰에 연행되어 군 헌병대로 넘겨졌다. 그는 군사법정에서 3년형을 받고 만기 복역한 뒤 남은 복무기간을 채우고자 우리 중대로 전입해온 것이다(당시에는 출소 후 잔류 복무를 현역으로 채웠음).

생각이 짧았다

이두식 이병이 우리 중대로 전입해 왔을 때 중대 내 소대장들이 서로 맡지 않겠다고 배구볼처럼 토스했다. 보다 못해 내가 그를 소대원으로 맡았다.

"이 일병 열심히 근무해줘서 고맙다."
"감사합니다. 이젠 무사히 제대해야죠.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때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조그만 참았더라면 피차 상처가 깊지는 않았을 건데."

"그래,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나?"
"풍문으로 들으니 시집간 지 얼마 안 돼 쫓겨났대요. 총소리에 놀란 신랑과 시집식구들이 그냥 둘리가 없었을 테죠."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글쎄요. 일단 제대를 해 봐야죠. 제가 여자를 너무 믿었던 탓이었고, 세상 물정을 몰랐던 탓이었지요."

"이젠 용서할 수 있나?"
"그럼요. 제가 육가(육군교도소)에 있을 때 그가 면회 와서 울면서 용서를 빌더군요. 이젠 제가 그 여자에게 용서를 빌어야죠

"사람은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어. 그 잘못을 깨닫고 참회하는 게 훌륭한 사람이야."
"소대장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의 겨울철 한국군 모습이다. 이 사진을 교학사에서 여름에 전사한 학도병 이아무개라고 단정해서 교과서에 실어었던 문제의 사진이다(관련기사; 5개월 전 죽은 학도병, 누가 그를 환생시켰나).
한국전쟁 당시의 겨울철 한국군 모습이다. 이 사진을 교학사에서 여름에 전사한 학도병 이아무개라고 단정해서 교과서에 실어었던 문제의 사진이다(관련기사; 5개월 전 죽은 학도병, 누가 그를 환생시켰나).NARA

졸때기들만 불쌍하다

초소 바닥이 얼음장이었다.

"볏짚 좀 갖다 깔아라."
"네, 알겠습니더."

이 일병과 임 상병이 둑 아래로 내려가 볏짚더미에서 짚단을 한 아름 안고 왔다. 나도 삼십분 남짓 무개호 초소에 앉아있었더니 다리가 저리고 온몸이 뻣뻣해졌다.

이런 여건에서 밤새워 근무하는 초병들의 고역을 알만하다. 부대로 돌아가 주전자에 물이라도 펄펄 끓여서 초소마다 한 모금씩 나눠 줘야겠다.

"수고해라. 내 잠시 후에 다시 올게."

"공격! 소대장님, 수고하십시오."

강둑에는 여전히 강바람이 세차다. 이런 강추위에도 대남방송은 바람결에 고장 난 라디오처럼 떠듬거린다.

야! 이게 누구를 위한 무슨 광대 짓이냐! 쌍! 허공에다 대고 Ml6 소총을 연발에다 놓고 한바탕 갈기고 싶다. 무슨 짓이냔 말이다, 이게. 같은 피를 나눈 형제들끼리. 권력을 쥔 자들은 서로 만나면 술잔을 부딪치고 음흉한 미소를 교환하지만 피차 졸때기들은 이게 뭔 짓거리인가! 쌍!

왜 남북지도자들은 평화회담을 할 줄 모를까?

(* 다음 글에 계속)
덧붙이는 글 마침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지난 9월 30일, 낯선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주인공은 바로 47년 전,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전우 박한진 소위였다. 그는 이 연재기사를 잘 읽고 있다면서 자기는 전역 후 줄곧 부산 해운대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만나고 싶다고 나를 부산으로 초대했다. 새삼 인터넷의 위력에 감탄했다. 혹 이 기사를 읽는 다른 전우들도 '쪽지'로 전화번호를 보내주시면 지난날의 계급을 떠난 옛 전우로 안부를 나누고 싶다. 박도 기자 올림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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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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