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 정상에서(오른쪽부터 이상길, 신길순, 임봉재, 박도)
이창묵
늙은 남자의 행복 조건출발 이틀을 앞두고, 전날에도 문자로 확인한 결과, 모두 참석하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내가 극성스럽게 독려를 한 까닭은 대학 졸업 후 처음 떠나는 1박 2일의 수학여행으로, 친구들이 서울, 대구, 용인, 양평, 원주 등지에서 흩어져 사는 데다가 일흔을 넘긴 나이, 그리고 건강 문제, 가정사 등 여러 가지로 돌발변수들이 많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2016년 9월 22일 12시 정각에 강원도 여행에 교통 요지인 원주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 TV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데다가 임시반장이기에 그날 아침 약속시간 30분 전에 약속장소로 갔더니 임봉재 중앙농원 대표가 부인의 애마를 몰고 가장 먼저 나타났다. 이어서 대구에서 이상길 대표(대동가방상사)가 시외버스로 도착했다. 곧 이어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온 이창묵 이사(전 선경, 유원건설)가 손을 번쩍 치켜들면서 나타났다.
곧 이어 양평에서 중앙선 열차를 타고 온 신길순 친구가 마지막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은 서로 얼싸 안고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면서 우정을 확인했다. 우리들은 곧장 스케줄에 따라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오대산으로 달렸다.
한 친구는 늦은 점심으로 시장할 것 같아 부인이 마련한 약밥을 싸왔고, 또 한 친구는 앞으로 계속 건강생활을 하라고 만보기를, 또 한 친구는 자기 집 밤나무에서 수확한 햇밤과 음료수 등 여러 가지 선물을 쇼핑백에 가득 담아왔다.
가을볕이 좋은, 가을이 곱게, 아주 멋들어지게 잘 익어가는 차창 밖 풍경을 보면서 다섯 친구들은 차중 한담을 즐겼다. 모두들 일흔 노인들이라 우리의 화제는 자연히 '꼰대 이야기'였다. 늙은 남자의 행복 조건 네 가지 얘기로, 첫째 부인이 있을 것, 둘째 적당한 돈이 있을 것, 셋째 친구가 있을 것, 넷째 건강 등이라는 말에 모두 공감했다. 하지만 늙은 여자의 행복 조건 네 가지에는 첫째 남편이 없을 것이라는 말에 차중 친구들은 한동안 씁쓸히 웃었다. 그밖에 조건은 남녀가 동일하단다.
차중 친구들은 이번 1박 2일 수학여행을 떠남에 부인들은 아예 며칠 더 머물고 오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올해 99세의 노모를 모시고 산다는 신길순 친구는 늙으신 어머니가 아들이 하루라도 당신 곁을 떠나는 게 싫어하는 눈치를 보였다는 그 말에 숙연해졌다.
카메라 메모리 칩을 빠트리다우리 7학년 2반 다섯 친구들은 1965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입학 동기생들이다. 이 가운데 세 친구(임봉재, 이상길, 박도)는 학훈단 후보생이었고, 이창묵 친구는 재학중 고대신문사 기자로 활동했기에 넷은 1969년에 함께 졸업했고, 신길순 친구는 1학년 수료 후 군에 입대하여 복학한 뒤 3년 후인 1973년에 졸업했다. 각기 병역을 마친 후 두 친구(신․박)는 학교에서, 세 친구는 산업현장에서 뛰면서 모두들 열심히 살았다.
우리는 오대산 들머리 보배식당 할머니의 반가운 영접을 받았다. 두 내외가 손수 마련한 산채나물 정식과 비빔밥으로 시장기를 메운 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대산 월정사 천년의 숲길을 산책했다. 나는 그 길에 매우 익었지만, 그날따라 친구들과 걷는 발걸음은 한결 사뿐했다.
나는 이번 역사적인 수학여행을 기획하면서 미리 챙긴 것 중의 하나가 카메라였다. 내 카메라는 2004년 백범암살진상 규명차 미국방문을 앞두고 큰돈을 들여 마련한 것으로 그동안 잘 써오다가 최근에는 책장에 고이 보관한 채 거의 사용치 않았다. 그래서 전날 밤 카메라를 꺼내 배터리를 충전시키고 메모리 칩에 저장된 이미지를 지우는 등 이번 수학여행 행사의 전 과정을 잘 찍은 뒤 친구들에게 내 솜씨를 뽑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월정사 어귀 돌다리 위에서 기념촬영을 하려는데 초점이 맞춰지지 않아 메모리 칩을 열자 그때서야 칩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순간 낙담과 함께 '이제 나도 별 수 없이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자지러지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자 친구들이 나를 위로하면서 자기들 스마트폰을 꺼냈다.
"자네가 이번 수학여행 반장으로 여러 가지를 챙기다 보니 그런 모양이네."우리는 거기서 멋지고 한적한 지름길로 진고개 정상에 올라 20전 대보탕(주인이 20가지의 영약을 넣어 끓였다 함)을 한 컵씩 마신 뒤 동해바다로 달렸다. 현남 IC를 지나자 마침내 동해바다가 펼쳐졌다.
그리운 '친구여'임봉재 친구 부인 애마는 푸른 동해바다를 끼고 양양에 이른 후 죄회전하여 한계령으로 달렸다. 핸들을 잡고 있는 임봉재 친구는 전직이 나무장사꾼이라 전국 구석구석 다니지 않은 곳이 없기에 모르는 곳이 없었다. 그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한계령 정상 부근의 필레게르마늄 온천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 오색에서 온천하기로 스케줄에 있지만 이틀 거푸 하는 것도 좋은 듯 한데다가 모두들 가보지 못한 곳이라 그의 안내에 찬동했다. 하기는 그가 핸들을 잡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기사 맘대로'일 수밖에 없었다.
한계령에서 만학천봉을 굽어살핀 뒤 친구가 안내하는 천년비경의 골짜기를 사뿐히 달려 갔다.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닌 탓으로 필레게르마늄 온천장은 보수 중이라 눈 구경만 하고 돌아섰다. 한 친구가 덕담을 했다.
"말표(임봉재 친구의 별명), 자네가 우리를 이곳으로 다시 안내하라고 오늘 쉬는 모양이네."그 온천 옆 필레식당에서 송어매운탕으로 만찬 건배사를 하면서 그 진미를 오감으로 맛보았다.
거기서 차머리를 다시 돌려 오색약수 숙소로 갔다. 체크인 한 뒤 거실에 이르자 이상길 친구가 오카리나 악기를 꺼낸 뒤 '친구여'를 연주하며 그동안 배운 솜씨를 뽑냈다.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옛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 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