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국가폭력은 막아 내야지요"

[현장]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등록 2016.09.28 17:26수정 2016.09.2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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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안팎엔 서로 다른 성격의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밖에선 가을을 재촉하는 빗줄기가, 안에선 애도의 눈물이 쏟아졌다.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또 다른 물줄기가 떠오른 탓일까. 장례식장은 추모객들로 붐볐지만, 적막감이 깊었다. 백남기 농민을 떠나보내는 추모 현장에 다녀왔다.

백남기 농민 빈소, 조문행렬 이어져 지난해 민중총궐기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317일만에 사망한 가운데,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백 농민의 빈소에 수많은 시민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백남기 농민 빈소, 조문행렬 이어져지난해 민중총궐기 도중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317일만에 사망한 가운데,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백 농민의 빈소에 수많은 시민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유성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조문 안내 전광판. '고인'에는 단 한 사람의 이름만 보였다. '백남기'. 그러나 장례식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추모하는 시민, 조문객을 맞는 유가족, 입구에 진을 친 기자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공권력에 맞서고자 모인 단체... 인산인해 속에서도 빈소엔 적막함과 공허함이 감돌았다. 무엇인가 중요한 게 빠져 보였다.

 백남기 농민을 찾은 추모객들의 행렬.
백남기 농민을 찾은 추모객들의 행렬.송승현

예부터 죽은 사람의 영혼을 영가(靈駕)라 부른다. 영혼은 고정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몸에서 나와 움직인다는 생각에 수레를 뜻하는 가(駕)를 붙였다. 3일간의 장례엔 영가가 몸으로 들어가 되살아나길 바라는 열망이 담겼다.

장례식장이 공허해 보인 건 왜일까? 지난해 11월 광화문에서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영혼이 돌아올 기미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리라. 쓰러진 날부터 317일. 그간 그의 한(恨)이 풀리지 않아 아직도 그의 영가가 광화문에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출입구 한쪽에 모여 투쟁 준비 중인 갑을오토택 노조.
출입구 한쪽에 모여 투쟁 준비 중인 갑을오토택 노조.송승현

백남기 농민이 떠난 뒤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했다. 돌발 상황을 대비한 밤샘 때문인지, 기자들은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한쪽에 돗자리를 펴고 노트북을 두드려 댄다. 빈소와 출입구엔 각종 TV방송 카메라가 놓여있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갑을오토텍 노조원 중 한 사람은 "백남기 농민이 국가폭력에 의해 돌아가셨는데, 경찰이 부검을 시도하는 어처구니없는 행위를 시도 중이다.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빈소를 지키고 있다. 죽음 이후 두 번째 국가폭력을 저지해야만 편히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송수압기 밑에 있는 준수사항처럼, 물대포 규정을 지켰다면 이런 문구도 필요 없지 않았을까.
송수압기 밑에 있는 준수사항처럼, 물대포 규정을 지켰다면 이런 문구도 필요 없지 않았을까.송승현

"시민사회 외침에 국가는 반드시 반성으로 응답해야"

빈소에서는 미사도 열렸다. 천주교 신자였던 백남기 농민의 지방(紙榜)엔 '임마누엘'이라고 적혀있다. 김배다 수녀(57)는 "백남기 농민의 이별 소식을 듣고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어 미사에 왔다"면서 미사가 끝났는데도 떠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힘없는 사람들이 죽어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반성이 없는 정부가 한 번이라도 사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 머물고 있다"고 말끝을 흐린다.


빈소 한쪽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특검 실시' 촉구 서명 코너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 둘이 펜을 잡았다. 수줍게 서명하고 쪼르르 달려간다. 그 학생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딸들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며 "국가의 횡포에 공감하는 딸들이 대견하고 고맙다"면서 눈시울을 적신다. 서명에 동참하고 장례식장을 나서는 시민들의 마음이 모두 한결같아 보였다.

신주철(25)씨는 "백남기 농민의 죽음 뒤에 보여주는 정부의 태도는 국가폭력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만연한지를 보여 준다"며 "추모 행렬과 집회에서 보여주는 시민의 외침에 국가는 반드시 응답해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장례식 접견실에 놓여 있는 근조 리본.
장례식 접견실에 놓여 있는 근조 리본.송승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백남기 빈소 #추모 #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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