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서원의 강당 지행당, 사진에 보이는 주련의 일가화수돈륜(一家花樹敦倫)은 '한 가문의 화수(일가친척)가 돈독하고 질서있네' 라는 뜻이다.
정만진
참고로, 손처각이 쓴 '유사'에서 손린의 일화 두 가지만 골라서 소개해 본다. 하나는, 그가 어릴 때부터 문장가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드러내었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효성을 말해주는 기록이다.
손린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빨랐으며 겨우 입으로 말을 배우실 때부터 문자를 한 번 들으시면 문득 기억하셨다. 6세에 종질(조카) 모당(손터눌) 공께서 독서하는 것을 보고, 매우 흥미를 느껴 배우기를 청하셨다.'
마침 그때 책상에 도연명의 시가 있었다. 모당이 이것을 시험 삼아 주었는데 손린은 날마다 그것을 소리내어 읽었다. 하루는 손처눌에게 '귀거래사'를 배우는 제자가 '농부가 내게 봄이 왔음을 알리니' 부분을 읽고 있었는데, 곁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손린이 웃으면서
"심하도다, 도연명의 취함이여!" 하고 탄식했다. 제자가 무슨 뜻에서 그런 말을 했느냐고 손린에게 물었다. 어린 손린이 또박또박 대답했다.
"도연명이 날마다 취하여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에 봄이 온 줄도 모르니, 농부가 봄이 왔음을 알려주어야 했던 것입니다."제자는 어린 손린의 식견에 놀라 신기하게 여겼다.
어릴적부터 뛰어난 문장 솜씨를 보여준 손린손린은 8세에 어머니 상을 당했는데 가슴을 치며 곡하는 것이 성인과 같았다. 집안사람들이 어린 나이에 몸을 상할까 염려하여 하루는 고기를 억지로 조금이라도 먹이려 하니 물리치면서 "어머니께서는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않은 지 오래인데, 밥 먹는 것도 차마 못할 내가 어찌 고기를 먹겠는가?" 하였다.
계동 전경창 공께서 이 말을 듣고 "대대로 효도하는 가문에 다시 효도하는 아이가 태어났구나!" 하시면서 "<시경>의 효자불궤 영석이유(孝子不匱永錫爾類, 효자가 효성을 다하면 자손에 다시 효자가 태어난다)라는 구절이 손씨 가문을 두고 말한 것이다."하고 크게 감탄하였다. (전경창에 대해서는 관련 기사
<연경서원 터, 지금 보지 못하면 영영 못 본다> 참조)
그 이후 이웃과 고을 일원에는 손린을 두고 효자 아이라고 칭찬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뒷날 그가 한강 정구 선생을 찾아뵈었는데, 선생께서 "그대가 일찍이 세상에 효자 아이라고 칭하던 그 아이인가?" 하고 물으셨다.
1588년에 형 손섬이 문과에 급제했으나 미처 창방(唱榜, 합격자 명단 발표)이 되기도 전에 타계했다. 형수 정씨가 남편을 따라 죽을 결심을 하니 손린이 밤낮으로 울면서 간곡한 지성으로 말렸다.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살아계신데 어찌 차마 이렇게 거듭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까?" 형수가 마침내 마음에 느낀 바가 있어 자결할 마음을 버리셨다.
1589년에 아버지 상을 당했다. 손린은 묘소 옆에 띠집을 짓고 3년 동안 슬픔에 잠겨 살았는데, 거의 몸을 지탱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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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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