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이장군> 포스터 70~80년대를 주름잡았던 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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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 정부의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북한을 단순히 독재국가로서 인식하다 보니 남북한 분단 체제의 특수성과 그동안 근대국가 북한이 수립해온 정당성, 그리고 북한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경험을 과소평가함으로써 제대로 된 대화의 물꼬를 트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야 동구권이 붕괴 후 북한이 세계적으로 고립되고 우리보다 훨씬 못 사는 만큼 남한이 통일의 주도성을 가지고 있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으며, 친일파 척결과 혁신적인 토지 개혁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여기에다 전 국토가 파괴된 한국전쟁의 기억은 남한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국민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그것을 바탕으로 북한은 국가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맥락을 모두 무시하고 똘이장군식으로 북한을 바라본다? 북한 지도부만 제거하면 북한의 선량한 주민들은 남한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일 것이다? 이는 망상이다. 북한은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지적했듯이 굉장히 이성적으로 작동하는 국가이다.
만약 수백만 명의 탈북자가 쏟아져 들어온다면?대통령의 발언을 들으면서 느꼈던 또 하나의 충격은 탈북에 관한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였다. 대통령은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 놓을 거라며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라고 했지만 과연 우리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 내 탈북자 수는 약 3만 명이고 월평균 임금은 약 160만 원, 실업률은 약 5.5%로 추정된다고 한다. 남한 전체 근로자 월평균 임금이 300만 원을 넘고, 실업률이 3.7%(5월 기준)임을 감안한다면 탈북자들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혹자들은 그런 탈북자들의 생활도 북한에서의 삶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조건이라고 지적하지만, 어느 사회나 그렇듯 문제는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에 있다. 그 어느 나라보다 빈부 격차가 격심하고, 무한 경쟁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 과연 경쟁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탈북자들에게 우리 사회는 희망과 삶을 찾을 수 있는 자유로운 터전이 될 수 있을까?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탈북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다. 비록 같은 생김새에 거의 비슷한 언어를 쓰지만, 탈북자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조선족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들이 자라온 북한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그들에게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왠지 음험하고 무섭고 믿을 수 없는 그들. 현재 탈북자들은 분단체제의 경계인으로서 양 체제로부터 백안시당하는 것이 사실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으로 오라고 한다. 만약 그 바람대로 북한이 붕괴되고 수백만 명의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쏟아져 내려온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우리 사회는 버틸 수 있을까? 혹자의 장밋빛 예측대로 북한 출신 노동자들이 대한민국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재앙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 사회는 말 그대로 아노미를 맞을 것이며, 많은 이들이 다시 북쪽으로 그들을 내쫓으라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내부적으로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으며, 그만큼 갑작스러운 통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독도 동독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수십 년이 걸렸는데 하물며 남한이 북한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보다는 점진적인 개혁·개방을 유도해야 한다.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북한을 남한이 쉽사리 흡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역시나 공상일 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북한과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그들이 정상적인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야 된다. 그것이 공멸을 막는 길이다.
정부는 부디 철 지난 똘이장군 놀이를 그만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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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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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탈북 권유'... 똘이장군 놀이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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