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나온 김재수 후보자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9월 1일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나와 답변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남소연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아래 해임안) 사태는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끝난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의 항의성 파업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은 끝났지만, 김 장관의 진퇴 문제는 결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 장관이 버틸 수록 이 문제로 인한 정치비용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재수 장관 해임안은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야당들이 제출한 해임안 사유 중 인사청문 과정에서 불거진 '황제 전세'와 '친모 방치'는 김 장관의 해명을 수긍할 대목이 있었다. 취임 후 직무수행 과정에서 드러난 허물에 책임을 묻지 않고 해임안을 통과시킨 것도 상식적으로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국회가 법적으로 합당한 절차에 따라 해임안을 통과시킨 뒤에도 이러한 이유들을 들어 국회 결정에 불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역대 '해임안 통과' 장관 5명 모두 정치적 사유로 물러나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국회 해임안(또는 불신임안) 통과로 물러난 장관 5명 중에 법적인 하자가 문제된 경우는 하나도 없다. 1955년 임철호 농림(농정 실패), 1969년 권오병 문교(반말 답변), 1971년 오치성 내무(실미도 사건), 2001년 임동원 통일(방북단 돌출 행동), 2003년 김두관 행정자치(한총련 시위 통제 실패) 장관의 해임 사유들은 각각 달랐지만, 정치적 함의는 하나같다. 대통령 탄핵은 요건이 까다롭고 정치적 부담도 크니 휘하 장관을 대신 물러나게 해서 행정부를 견제하겠다는 취지다.
지금과 공수가 완전히 뒤바뀐 2003년 김두관 장관 해임 사태를 복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그해 8월 8일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미군 사격훈련장 점거 시위를 막지 못한 책임을 김 장관에게 물었다. 하지만, 당시 김 장관은 정부조직법상 행자부의 독립외청인 경찰청의 업무 전반을 지휘·감독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경찰청장 임면권이 없는 야당이 해임건의안 통과로 노무현 정부를 우회 압박했다는 게 더욱 적절한 해석일 것이다.
새누리당이 해임안 처리를 강행한 '속내'는 9월 3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더 명확히 드러났다. 그날 의원총회에서는 이런 얘기들이 나왔다.
홍사덕 원내대표 : "드디어 오늘 오후 대선패배 이후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대결한다. 표결 여하에 따라 코드독재를 저지할 수 있느냐가 판가름난다."김무성 의원 : "나는 노무현을 이 나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무현이 이런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이 퇴임 운동을 벌어야 한다."홍준표 의원 : "해임건의 건은 거부권의 대상이 아니다. 법안이 아니므로 따라야 한다. 따르지 않으면 헌법 위반이다. (거부권 행사의) 다음 절차는 탄핵 절차로 갈 수 밖에 없다."
원유철 의원 : "반성하지 않고 독선·아집으로 위기 심화시키는 노정권 국정실패에 대한 엄중한 경고 전달해야 한다. 국회 통과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거부권 행사 흘린다. 반성할지 오기·독선 정치 할지 국민 똑바로 판단할 계기 삼아야 한다."맹형규 의원 : "부결되면 당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해임안 제출에 미온적이었던 남경필·이성헌 등 소장파 의원들이 가담한 가운데 국회 과반수를 차지한 새누리당의 뜻대로 김두관 해임건의안은 20여 분만에 일사천리로 가결됐다. 20대 국회에는 당시 해임안 표결에 참여한 의원이 9명이나 남아있다(김무성·서청원·심재철·원유철·이주영·정병국·정우택·정진석·홍문종).
공은 노 대통령에게 넘어왔지만, 청와대에서는 "야당이 해임시키라고 다 해임시키면 어느 장관이 제대로 일하겠냐"(유인태 정무수석), "국민들도 부당하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이병완 홍보수석)는 대결론이 고조됐다. 해임안 통과 이틀 전 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9월 1일)에서는 해임안 반대 의견(47.5%)이 찬성(31.0%) 의견을 웃돌았다.
해임안 가결 다음날(9월 4일) 열린 여야 대표 청와대 초청 만찬에서 장관 해임을 관철시키려는 최병렬 새누리당 대표와 해임 철회의 명분을 찾는 노 대통령 사이의 신경전은 팽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