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테스트 전에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됐다.
한성은
지금껏 그 흔한 토익 공부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긴장을 많이 했다. 먼저 어휘력 테스트 시험이 있었다. 객관식 시험에 최적화된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내용을 정확히 몰라도 답은 맞출 수 있었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그리고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썼다. 고등학교 입학사정관 업무를 하면서 지금껏 자기소개서를 수천 장을 읽고 채점했는데, 내가 직접 쓰려니 쉽지가 않았다. 초등학생들이 사용할 법한 문장으로 글을 이어갔다. 내가 얼마나 영어를 못하는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러다가 초등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수가 생각보다 높아서 놀랐다. 심지어 같은 줄에 앉은 학생들 중에 내가 제일 높았다. 노란 머리 외국인보다 내가 높다니. 또 걱정이 시작됐다. 이러다가 너무 상급반에 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었다. 사실 기초반에 가면 쉽게 배울 수 있으니 좋을 테고, 여유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걱정만 하는 내가 참 한심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과 마주 앉아 간단한 대화를 하는 말하기 시험이 있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늘 영어로 이야기를 해왔기에 아무래도 작문 시험보다는 나았다. 어쩌다 이곳 몰타까지 오게 됐는지 설명했는데, 앞에 앉은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어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하는 중이라는 이야기는 그동안 영어로 자주 말했던 내용이라서 내가 생각해도 조금 유창하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반편성 배치고사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상급반도 아니고 기초반도 아닌 intermediate(중급반)였다. 중급반이라곤 해도 어학원은 하급반 비율이 높아서 실제로는 꽤 수준이 높은 반이었다. 2개월 동안 수업 중에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다. 그렇게 나의 유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5개 국어' 구사하는 프로레슬링 챔피언 선생님프란체스코는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어학연수 초반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선생님을 잘 만났기 때문이다. 첫 시간에 먼저 자기소개를 했는데, 같은 반 모든 학생이 첫 시간인 것은 아니었다. 절반 정도는 기존에 계속 공부하던 학생들이었고 나머지 절반 정도가 나처럼 첫 시간이었다. 주 단위로 수강 신청을 하기 때문에 학생마다 어학연수 기간이 달라 어쩔 수 없었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에는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이기 마련인데, 프란체스코가 워낙 웃겨서 어색할 틈이 없었다. 첫날인데도 수업 내내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학생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웃으면서 공부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위계가 없었다. 외국이라서 그런가 싶었다. 이후 두 달 동안 몇 명의 선생님을 더 만났지만, 비슷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말하고 있을 때는 조용히 하라'는 스코틀랜드 선생님도 있었다. 그래서 프란체스코는 학생들에게 늘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호불호도 명확하게 갈렸다. 너무 나댄다는 것이 이유였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그랬다. 역시, 세상 어디나 교무실 분위기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