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은 7월 화학물질 노출 사고 당시 회사와 노동부의 부실 대응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결국 회사는 작업을 중지하지도 작업자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리지도 심지어 피해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가치가 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쩔 수 없이 소속 조합원들에게 피해사실을 알리고 임의로 대피명령을 내렸다.
구토와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치료가 필요하다면 치료하라고 했다. 오전 11시경 소속 조합원들은 모두 대피했다. 대피가 모두 끝나고 오전 12시 20분경 회사는 부랴부랴 사내방송을 통해서 유해물질이 노출되었다는 피해사실을 근무 중인 노동자들에게 처음 알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황은 여기서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다.
대신 7월 29일 회사는 대표이사 명의로 노동조합이 회사의 정당한 업무 지시를 무단으로 지키지 않아 생산손실을 유발하고, 회사의 직제를 문란하게 하여,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두 달이 훨씬 지난 10월 7일, 작업자들을 대피시켰다며 위협적이게도 손해배상과 해고 사유라는 것을 큼직하게 쓴 징계위원회 통지서가 도착했다. 본보기로 확실하게 손을 볼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1차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정말 고민스러웠다. 사실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런 상식적인 상황에 대해서 저들에게 소명해야하는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이유를 찾기 어려워서다.
다시 2차 징계위원회 참석 통지서가 도착했다. 10월 18일 다시 징계위원회를 열겠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당일 대피한 작업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다시 재연 되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같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않냐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에 이르렀다.
만일 회사의 의도대로 징계가 관철된다면 앞으로 우리 사업장에서는 그 어떤 위협이 존재해도 우리는 스스로 대피할 수 없다. 회사의 지침이 나올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를 해야 한다. 해고와 징계의 협박 앞에서 자신의 밥줄을 걸지 않고는 스스로 위험을 인지해서도 안 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주장해서도 안 된다.
노조가 지켜야 할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우리 사회가 달려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혹시라도 노출된 유해가스가 자칫 큰 인명사고로 이어졌다면 우리는 평생 씻지 못할 악몽에 시달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잊을 만하면 매년 반복되는 유해가스 누출사고로 이름 없는 작업자들이 죽고 다치고 병들면서 자신이 일했던 작업현장에서 쓰러져갔다.
누구의 아빠, 누구의 남편으로 불리는 소중한 사람들이 단지 더 많은 돈을 긁어모으겠다는 자본의 천박한 이윤놀음 아래 죽어갔다. 지하철 구의역 비정규 노동자들이 그랬고, 삼성 에어컨 설치 노동자들이 그랬고, 당진에서 유해가스에 중독된 하청 노동자들이 또 그랬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고 또한 이 사회가 마땅히 보장해야 할 보편적인 권리다. 많은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이 절실하고 상식적인 권리를 찾기 위해서 해고를 각오하고 손배가압류를 각오해야 한다면 분명 그것은 비정상적인 사회일 것이다. 그러니 노출된 유해가스보다 노출된 회사의 안전불감증이 더욱 메스껍고 노동자들의 시린 현실이 더욱 가슴 아프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5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공유하기
가스 누출로 직원 대피시켰는데, 돌아온 건 징계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