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진단서 논란... '반지성적' 전문가 권력에 저항해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 학계에도 적용된다

등록 2016.10.12 18:18수정 2016.10.1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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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균씨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부교수입니다. [편집자말]
고 백남기 농민 주치의 백선하 "환자분 위해 최선 다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 백선하 교수(왼쪽)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등에 대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고 백남기 농민의 CT 촬영본을 보여주며 수술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백 농민의 사망 원인이 '병사'가 아닌 '외인사'라고 주장하는 이윤성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눈을 감은 채 백 교수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고 백남기 농민 주치의 백선하 "환자분 위해 최선 다했다"고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 백선하 교수(왼쪽)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등에 대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고 백남기 농민의 CT 촬영본을 보여주며 수술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백 농민의 사망 원인이 '병사'가 아닌 '외인사'라고 주장하는 이윤성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눈을 감은 채 백 교수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유성호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나온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 오류 논란을 보면서 전문가의 자율성이 얼마나 반지성적일 수 있고 불의한 권력은 얼마나 이를 악용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혹자는 전문가들이 학문적 양심보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좇기 때문이라 했고, 다른 이는 "전문가들이 권력이나 이익을 좇는 게 곧 '자기계발'이 되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의 윤리란 새삼 허망한 이야기이다"라고 진단했다. (주간경향 2016. 10/12 참조)

정말로, 지난 정권이 4대강 사업을 강행하던 시절 이전에도  전문가로 불리는 학자들의 곡학아세를 종종 보아왔다. 학자가 정부에 입각하는 경우 폴리페서라 도매금으로 비난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학자들이 전문성을 빌미로 (또는 정보의 비대칭을 지레로 삼아) 권세있는 자들을 비호할 때다. 

물론 한편에서는 학문의 전당에서 때론 수도자처럼 세상이 당장 몰라도 묵묵히 진리를 탐구하는 분, 연구비 따고 논문쓰고 강의하고 필요한 곳에 자문을 하는 분, 진료 또는 실험으로 날밤을 새우며 새로운 지식 연마를 위해 힘쓰는 분들도 있다.

연구비 없이 연구를 생각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특히 정량적인 과학적 근거를 생산해야하는 실험연구에서 더욱) 연구비 따서 학생들 먹여 살리기에도 바쁘다. 그래서 내가 박사과정생 또는 포닥 연구원 시절에 '(유사전공이면) 돈 되는 일은 다 한다는 웃픈 자기소개를 하신 모 대학 교수님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요는 교수들이 전부 세상에 곡학아세하며 권력을 좇고 있지는 않아도 나름의 이익을 좇아 각자도생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Badmoney drives out good.)" –그레샴의 법칙이다. 나쁜 것이 좋은 것의자리를 빼앗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원래 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시장에 두 종류의 화폐가 있다고 할 때 (신용화폐는 제외) 이들은 액면가(명목가치)와실제가치(시장가격)가 서로 다를 수 있는데 이 경우 실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을 시장에서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진짜 금화와 금도금화가 유통되면 머지않아 금도금화만 시장에서 거래된다는 말이다. 이 법칙은 종종 정보의 부족(또는 비대칭성)이나 실가치 이상의 홍보(마케팅이나 편견, 군중심리)가 존재하는 사회현상에도 적용되어 현재 사용되고 있다.

지식정보 사회에서 성과와 효율로 줄 세우기를 강요받는 시대에 세상(사회)과 격리된 순수한 학문은 어쩌면 관념적 이미지일 수 있다. 즉, 권력을 좇지 않아도 내 지식을 가치가 있어 유통가능 하고 개인적으로든 공공재로서든 이익으로 전환 가능한 재화삼아 열심히 달리며 각자도생하고 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권력을 좇고 있거나 권력이 되어 있던 학자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 전문가 영역에서 학문적 순수성을 강조한다고 진리를 지킬 수 있을까? 학문도 세상의 원리와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모두를 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열심히 권력지향적인 집단과 아카데미아의 울타리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있다고 하자. 학자의 실제가치는 그의 학문적 성과(또는 권력), 지위, 명성으로 정량될 수 있으므로 아카데미아 울타리 안에 있는 집단의 실제가치가 더 높을 것이다. 그러나 아카데미아를 정진하는 집단의 실제가치(양화)가 높다고 자부만하고 있으면 안 된다. 자칫하다간 전문가이되 반지성적인 때로는 줄타기를 하며 사익과 권세 있는 자들에 편입되는 사람들(악화)에 세상에서(시장) 밀려나게 될 것이다.

요즘처럼 '전문가'가 많지만 시대의 양심이나 지성에 목마른 적은 내가 철든 이후에 30년간은 없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정보의 홍수, 전문가 풍년의 시대이나 대학교수 만큼 양가적인 시선을 받는 직업도 많지 않을 것 같다. '묵묵히 정진하는 교수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면서 가만히 있는다고 순리대로 가는 것은 아니다.


순리대로 가게 하기 위해서는 지치지 않는 진리에 대한 열망, 나아가 세상을 더불어 이롭게 하기 위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불의한 정부가 사사로이 개입하는 현실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 않게 하려면 학문하는 모든 이들의 깨어 있음이, 그리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려는 힘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다.
#전문가 거버넌스 #백남기 농민 #반지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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