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공기관 비정규직이 0명? 실체 파보니

[초선의원실 국정감사 이야기 2] 비정규직 노동자의 또 다른 이름 '협력업체 직원'

등록 2016.10.24 17:09수정 2016.10.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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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우리는 청소, 경비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이라 부르지만, 기관에서는 협력업체 직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정부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한다며 해마다 수십조를 산업에 투자한다. 70년, 80년대 노동을 억압하고 재정 지원을 통해 특정 산업을 키워온 산업 전략은 오늘도 유효하다. 기업 친화적, 규제 완화, 외자 유치 등의 단어들은 남발되지만 줄지 않는 산업재해, 장시간 노동, 저임금 노동 등의 통계 자료는 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산업정책에는 왜 '노동'이 빠져있을까? 김종훈 의원실(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는 낯선 '노동'을 국정감사의 주제로 잡았다. 마치고 나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주제였다고 자평했다. 이래저래 수집한 자료들과 허둥거리며 첫 국감을 치렀던 초선의원 김종훈 의원실의 이야기가 버리기 아까워 오마이뉴스 지면을 빌려 기록으로 남긴다. - 기자 말

국감에서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들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경비노동자들이 의원실을 찾아오신다고 했다. 아파트에서 경비를 서는 어르신을 떠올렸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랐다. 그들은 30대 청년들, 40대 가장들이었다. 각종 수당을 포함해도 이들의 한 달 급여는 220여만 원. 초봉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호봉제도가 없으니 5년이 된 직원도 똑같은 급여를 받는다. 정규직들과 하는 일은 똑같은데 5년 된 직원 기준으로 정규직과 80만 원의 급여 차가 났다. 이들의 요구는 소박했다.

"군 출신들이 관리자로 특별 채용되어 승진할 기회조차 없다."
"협력업체도 발전사마다 급여가 20만 원 차이가 나니 그거라도 통일해 달라."

호봉제도, 정규직 대우도 뒷이야기다.


부산의 한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느 날 근무지에서 핸드폰을 빼앗겼다. 회사에서 경비노동자들의 근무행태를 지적하는 공문이 내려왔다는 이유였다. 또 한날은 회사가 경비 초소의 의자를 수거해갔다. 한 직원의 근태가 문제였다.

이들이 우리 의원실에 부탁한 것 또한 소박했다.


"점심도 서서 먹으란 말입니까? 의자를 돌려주십시오."

한전KPS는 발전사 정비업무를 맡아 한다. 한수원, 한전, 발전소의 정비를 하며 이중 경정비 업무를 협력업체들에게 재하청한다. 공공기관이 하청에 재하청을 거치는 과정도 이해되지 않지만, 협력업체에 대한 관리도 상식 이하였다.

협력업체 직원들이 의원실에 부탁한 것은 초보적인 것이었다.

"화장실이 사무실과 너무 멀다."
"협력업체 직원들이 한전KPS에서 버리는 의지하고 테이블을 가져다 썼는데 그것도 못쓰게 한다."
"원청에서 수주 받을 때 임금 단가와 자기들에게 주고 있는 임금 단가를 비교하고 싶다."

그 많던 비정규직은 어디로 갔나?

김종훈 의원의 수식어는 노동자 국회의원이다. 조선소 노동자들이 김종훈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그래서 의원실의 제1 관심은 노동이다.

국정감사 준비회의를 하며 제일 먼저 나온 주제가 비정규직이었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는 산업부와 통계청, 중소기업청 외에도 한전, 한수원, 발전 5사 등 50여 개의 공공기관들이 있다.

"우리 기관에 있는 비정규직이 몇 명이나 되는지 한 번 알아봅시다."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다. 우리는 기관들에 "비정규직이 몇 명이냐?"는 질의서를 보냈다. 그런데 기관들에서 "비정규직이 없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분명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그 많던 비정규직은 어디로 갔을까?

답을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청소, 경비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이라 부르지만, 기관에서는 협력업체 직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2년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협력업체에 고용된 정규직이라는 것이 기관 담당자들의 설명이었다.

현실은 공공기관에 상시로 고용된, 사실상 공공기관의 용역발주가 없으면 고용을 유지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또 다른 이름이 협력업체 직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도대체 협력업체 직원 수는 얼마나 되는 거야?

우리는 다시 협력업체 직원 현황을 조사했다. 50여 개 기관 자료를 일일이 수집하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런데 며칠 후, 초짜 보좌진은 비정규직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몇 년 전부터 고용노동부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시스템을 통하여 인터넷에 공공기관의 단시간, 기간제, 파견, 용역 노동자 수를 집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http://public.moel.go.kr

며칠간의 수고를 뒤로 하고 시스템에서 해당 기관들의 협력업체 직원들 수를 세기 시작했다. 50여 개 기관이 너무 많아 한전 등 큰 기관 몇 개만 취합하고 말까? 하는 유혹도 잠시, 이상하게 인터넷에 고시된 숫자와 일부 기관에서 받은 협력업체 직원 숫자가 달랐다.

"이건 뭐지?"

고용노동부 담당자와 다시 통화했다. 초짜 보좌진은 기관들의 협력업체 형태와 계약조건이 다양해서 고용노동부는 청소, 경비, 경상 업무 등 4개 업종의 협력업체 직원 수만 취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자료를 취합하지 못한 기관들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조사한 산자위 소속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숫자는 2016년 10월 현재 1만9703명이었다.

산자위 산하기관 협력업체 직원수 김종훈의원실
산자위 산하기관 협력업체 직원수김종훈의원실이희종

며칠간의 수고에 뿌듯해했다. 국정감사 질의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통계에 잡히지 않는 한전KPS 협력업체 직원들을 만났다. 아니 찾았다. 한전KPS는 분명 자기 기관의 협력업체 직원이 60명이라고 얘기했는데 우리가 만난 협력업체 노동조합 사람들만도 그 수를 훨씬 넘었다.

"이건 또 뭐야?"

한전KPS 측에 발전소에서 근무 중인 전체 인원 현황을 요구했다. 그래서 한전KPS의 협력업체 직원이 1200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전KPS가 이들을 협력업체 직원으로 취합하지 않는 이유는 경상정비 업무를 용역발주가 아니라 건설현장과 같이 물량발주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공사를 맡기는 식이라는 답변이다.

정부는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을 통해서 협력업체 직원이라도 고용유지와 임금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공공기관 지침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물량발주를 하게 되면 이 규정도 지킬 의무가 없다. 건물을 짓거나 단기간의 수리업무라면 물량발주가 당연할 수도 있다.

다소 모호한 규정을 꼼수 삼아 일상 경상정비 업무를 물량으로 발주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상시 업무인데  물량발주를 하는 행태는 한전KPS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수원의 수처리 업무에서도 이런 고용형태가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산자위 산하 공공기관에 일하는 비정규직 수는 얼마나 되는가? 찾으면 찾을수록 늘어나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확한 통계를 위해서는 공공기관이 저임금 노동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감추려고만 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산자위 국감장을 환노위 국감장으로

김종훈의원실 한전kps 협력업체 직원에게 질의하는 김종훈의원
김종훈의원실한전kps 협력업체 직원에게 질의하는 김종훈의원이희종

우리는 국정감사장에 한전KPS 협력업체 직원을 불렀다. 한수원의 경비노동자도 불렀다. 산자위 국감장이 환노위 국감장이 되었다. 적어도 산자위 국감장에 노동자를 등장시켰다.

(* 이후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진다.)
#김종훈 #비정규직 #국정감사 #김종훈 의원 #협력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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