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간한 '시크릿파일 국정원'의 저자 김당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이 1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정권교체가 국정원 최고의 개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남소연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의 시계는 거꾸로 흘러갔다." 지난 20여 년 동안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을 낱낱이 해부한 <시크릿파일 국정원>을 낸 김당 전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본부장(편집국장)이 내린 결론이다. 아닌 게 아니라 대선개입 댓글공작, 불법해킹, 간첩조작을 자행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과거 북풍과 총풍, 세풍 사건을 주도했던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과거로 회귀한 국정원의 모습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역대 국정원장을 비롯한 50여 명의 전·현직 요원들과의 인터뷰,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라는 점에서 김 전 본부장의 분석은 자못 무게감을 갖는다.
'5000명이 넘는 인원이 연간 1조 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하는' 국정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정부이지만, 정보기관이라는 이유로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국회에 설치된 정보위원회가 국정원의 활동을 통제해야 하지만 이는 다분히 형식적일 뿐이다. 국가와 시민에게 더없이 중요한 조직일수록 소홀히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은 국정원에도 해당된다는 것이 김 전 본부장의 지적이다.
오직 대통령만 바라보고 대통령에게만 충성을 다하는 국정원은 그 과정에서 저지른 잘못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지난 대선이 증명하듯 대통령과 원장의 '선한 의지'에만 국정원을 맡겨두기에는 전 국민이 감당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
김 전 본부장은 국정원을 신뢰받는 국가정보기관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시민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책에 '정보기관 사용설명서'란 부제가 붙은 까닭이다. 그는 <시크릿파일 국정원>이 도대체 국정원은 어떤 조직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쉽게 설명하는 입문서라면 곧 출판될 2권은 실제 국정원의 조직과 예산, 기능에 대한 심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전 본부장은 최근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는 '부패 스캔들'을 넘어서 '국가보안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중대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당장 국정원이 보안시스템의 뚫린 구멍을 찾기 위해 보안누설 조사를 실시해야 하며 그 대상에는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만약 대통령의 지시나 묵인 아래 대통령 측근인사들이 최씨한테 이메일로 보냈다면, 미국처럼 대통령도 기소되어 감옥에 가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20일 오후 국회 앞마당에서 김 전 본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으로,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이후 일부 문답을 추가했다.
"정보 하는 사람이 수사까지 하면 늘 불법의 유혹 받아"
- 국정원 전문기자로 알려져 있다. 언제부터 국정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1995년 연세대 문정인 교수가 주축이 되어 국가정보연구회(회장 김진현 전 과기부 장관)를 결성해 윌리엄 콜비 전 CIA국장을 비롯해 러시아, 이스라엘 정보기관 관계자를 초청해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 국가정보연구회에는 주로 교수들과 전직 국정원 인사들이 있었는데, 언론인으로는 나와 <중앙일보> 전영기 기자 정도가 참여했다. 이 모임에서 국가정보에 대한 제대로 된 교과서 같은 책을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낸 책이 <국가정보론>이다.
1994년 국회에 정보위원회가 설치되었고, 이듬해 국가안전기획부가 내곡동으로 옮겨가면서 처음으로 정보기관에 공보관 자리가 만들어졌다. 국정원이 대통령 직속기관이어서 형식적으로는 청와대 출입기자가 담당하게 되어 있는데, 사실 상시적으로 취재하는 사람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국정원이 일종의 틈새시장이었던 셈이다."
- 책이 나온 후 국정원 쪽의 반응이 있었나."국회 정보위 보좌관들 얘기로는 자기들이 접촉한 국정원 직원들 대부분이 읽었다고 하더라. 출판사 마케터는 책이 서점에 깔린 첫날, 강남 교보문고 바로드림(인터넷으로 주문해서 현장에서 바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통해 한꺼번에 20권이 나갔다고 했다. 아마도 내곡동(국정원)에서 가져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부서장들에게 돌린 게 아닌가 싶다. 그 다음날부터는 한 사람이 대여섯 권씩 사가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건 아마 부서에서 사 간 것 같고."
- 국정원의 역사에 대해 다루면서 편제는 CIA를 따랐지만 탄생 배경은 소련의 KGB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정보기관보다는 체제 유지를 위한 비밀경찰로 기능했던 과거를 비판했던 것으로 읽히는데, 이 지적은 지금도 유효한가."실제로 과거처럼 운영되고 있지는 않다고 해도 이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지난해 JP가 낸 회고록에서 이 부분은 자신도 후회한다고 하지 않았나. '5.16 쿠데타 직후 중앙정보부를 만들면서 미국의 CIA를 모델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수사권은 가지지 않는 것이었는데, 이른바 반혁명들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서는 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중론에 따라 수사권을 도입했지만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것이었다. 검경에 수사권을 넘기려고 했지만, 그걸 못하고 물러났다. 그다음부터는 중정이 거대한 공룡이 되어버렸다' 이게 JP의 말이다.
국정원은 북한이라는 적국이 있기 때문에 수사권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지금도 구사하고 있지만, 이것은 정말 냉전시대에나 가능한 논리다. 또 지금은 수사권이 불법적이나 초법적으로 행사되고 있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부 감찰 등을 통해 유지될 뿐이다. 근본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이 수사까지 하게 되면 늘 불법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아닌가. 영사증명서까지 위조해서 간첩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나. 결국은 이런 일을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수사권을 환원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 국정원을 개혁하려는 여러 차례의 시도가 있었다. 성과와 한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대중 정부는 IMF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출범했기 때문에 공공부문 개혁을 강도 높게 진행했다. 국정원에서도 전체 정원의 11.1%를 줄이는 구조조정이 단행되었다. 구조조정 대상자들 중에는 이른바 북풍사건 등 불법 정치개입 행위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단순하게 수치로만 보면 당연히 영남 출신들이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중요한 자리에 앉아서 정치적 행위에 개입했던 사람들이 영남사람들이 많았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영남사람들만 잘랐다' 이런 얘기도 가능했던 것이다. 또 정형근 전 의원이나 한나라당 쪽에서 이런 주장들을 증폭하는 스피커 노릇을 했다. 이런 감정적인 논리가 합리적 개혁을 가로막았던 요인들이다.
어쨌든 김대중 정부에서는 적어도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중립성의 토대는 닦았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토대 위에서 노무현 정부가 이른바 '4대 권력기관 힘빼기' 차원에서 국정원 제자리 찾기를 시도했고 실제 어느 정도 성과를 봤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2005년부터 지식인을 대상으로 국내 파워집단 영향력 조사를 하고 있는데,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국정원은 한 번도 10위권 안에 들지 못했다. 순서도 다 검찰, 경찰, 국세청 다음으로 나왔다. 이건 굉장한 변화인데,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서서 국정원은 과거로 회귀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원세훈 전 원장의 정치개입이고 유우성 조작간첩 사건 아닌가."
"대통령-국정원장의 선한 의지만 믿고는 국정원 개혁 불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