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실의 시대', 손석희가 있어 다행이다

[게릴라칼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와 <뉴스룸> 그리고...

등록 2016.10.28 09:48수정 2016.10.2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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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자 <뉴스룸>의 앵커 브리핑 화면.
27일자 <뉴스룸>의 앵커 브리핑 화면. JTBC

"그래서,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순실씨의 주장대로 최순실씨의 것이 아니라면 사실 더 큰 일 아니겠습니까?"

말 그대로, 탈탈 털었다. 27일 보도된 <세계일보>의 최순실씨 '해명' 인터뷰에 대해 당일 방송된 JTBC <뉴스룸>의 대응은 신속하고 철저했다. 특히나 최순실씨의 인터뷰 내용이 대부분 JTBC의 보도를 부정하는 것이라 그런지, 손석희 앵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또 한 가지가 국가기밀기록인지 몰랐다라고 얘기한다는 것은 저희가 (뉴스룸) 1부에서 얘기했는데 그게 더 무섭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한 개인이 국가기밀을 받으면서 '이게 국가기밀인지 몰랐어' 하면 만에 하나 기밀도 아닌데 다른 사람한테 그냥 같이 보거나 넘겼다면 그게 더 큰 문제가 되는 거니까요."

자신의 태블릿 PC가 아니라는 최순실씨의 주장을 요목조목 반박했고, 특히나 이미 발견된 셀프 카메라 사진을 통해 최순실씨가 직접 태블릿 PC를 사용했다는 신빙성 있는 증거를 제시했다. 심지어 "오늘의 댓글"을 통해서 "본인 PC가 아니라면 그 엄청난 정보들을 또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는 얘기? 갈수록 가관"이라는 국민들의 비판까지 전하면서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 새누리당과 검찰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했다.

그리고, 손석희 앵커는 이문재 시인의 시 '땅끝이 땅의 시작이다'를 인용한 앵커브리핑을 통해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참담함과 절망을 전했다. '막장 드라마'라고 일컬어지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선두에서 파헤친 언론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신중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논란의 당사자는 인터뷰를 자청해 증거가 선명한 그 모든 의혹을 '음모'라 칭했습니다. 또한 세간에는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훨씬 뛰어넘는 추측과 두려운 소문, 조롱마저 난무하는 가운데 오늘은 결국 청와대 수석이 직접 관련되었다는 의혹까지 터져나왔습니다.

국가가 지니고 있어야 할 신뢰와 권위는 추락했고… 분노와 상실감을 넘어선 사람들 앞에 '이제 우리는 앞으로…' 하는 걱정이 막아섭니다. 저희 JTBC는 지난 한 주 동안 나름 최대한 신중하게 이 문제에 접근해왔습니다. 언론에 넘쳐나는 사적이고, 때로는 선정적으로 보이는 문제는, 저희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뉴스룸에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보다 더 실체에 접근하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의 마음 역시 어둡습니다. 뉴스와 절망을 함께 전한 것은 아닌가. 허락하신다면 마무리는 다음과 같이 하겠습니다. 땅끝이 땅의 시작이다. 함부로 힘주어 걷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시청률 8% 돌파한 손석희와 <뉴스룸>의 힘


 27일자 <뉴스룸> 중에서.
27일자 <뉴스룸> 중에서. JTBC

'특정 종교'가 얽혀있는 것 아니냐는 <세계일보>의 단독 인터뷰를 제외하고, 지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방송사는 다름 아닌 JTBC와 TV조선이다.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좌우합작'이라 명명된 이 사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넘어 세월호 참사 이후 '기레기'란 신조어를 양산하며 지극히 왜곡됐던 언론지형을 균열을 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더욱이, 간신히 이슈를 따라잡고 있는 KBS에 비해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논조를 버리지 못한 MBC는 좋은 비교 대상이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투를 치른 <조선일보>마저 '하야'를 언급하는 상황에 TV조선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 가능하다.

하지만 MBN의 간판선수인 김주하 앵커가 지난 26일 <뉴스초점> 칼럼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피해자로, 최순실씨를 가해자로 지목한 것은 주목할만 하다. 야당은 물론 일부 여당 의원들까지 박 대통령의 거취를 두고 '탄핵'이나 '하야' '거국적 내각'을 거론하는 상황이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를 기록한 시점에서, 사태의 심각성과 국민 여론을 읽지 못하고 여전히 '박근혜 바라기'를 자처하는 언론을 가려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다시, 손석희 JTBC 사장이 진두지휘하는 <뉴스룸>으로 돌아가 보자. 손석희 사장은 "마음이 어둡다"고 했지만, <뉴스룸>은 지금 국민들의 눈과 귀가 돼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 카드'를 꺼내든 지난 24일, <뉴스룸>이 발로 뛰며 취재한 최순실씨의 태블릿 PC건이 없었다면 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여론의 분노도 늦춰졌을지 모른다. "절망적"이라도 절대 간과하지 말았어야 했을 "뉴스"란 얘기다.

2년전, 팽목항을 지켰던 <뉴스룸>... 그리고 '순실의 시대' 

 SNS에서 화제가 된 손석희 사장의 사내메일 내용.
SNS에서 화제가 된 손석희 사장의 사내메일 내용. 인터넷 갈무리

시청률 8%대 돌파. 26일과 27일 양일간 <뉴스룸>에 쏠린 관심이 이 정도다. 공고한 '공영방송' KBS1의 <뉴스9>의 17%는 여전히 요원해 보이지만, 동시간대 MBC <뉴스데스크>의 4%대는 이미 훌쩍 뛰어 넘었다.

일부 미디어 전문가들은 최근 특종들로 인해 <뉴스룸>이 10만의 충성 시청자를 확보했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막장드라마보다 재밌다"는 중평 속에 <뉴스룸>의 90여 분에 달하는 1, 2부 대부분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관한 단독보도와 정치권과 검찰, 여론의 향배를 전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물론 '포스트 손석희'에 대한 우려와 삼성과 중앙일보의 그림자를 걱정하는 시각도 여전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아니 예상했으나 이 정도라고는 대다수 국민들이 짐작하지 못했던 '국정농단' 사태에 맞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 같다.

2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 현장을 끝끝내 지켰던 <뉴스룸>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도 그래서다. 최근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밝힌 <뉴스룸> 관련 소식은 그래서 더더욱 설득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거는 거의 확실한 취재원인데요. JTBC가 (최순실씨) 태블릿 PC를 입수했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시정연설하기 이틀 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백방으로 (방송을) 막아보려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설에 따르면 세무조사하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버텼다는 거예요. 당연하겠죠. 손석희 앵커가 있으니까. 그런데 끝까지 안 되니까 급하게 (개헌 추진 얘기를 시정연설문에) 넣었다는 거예요. 개헌으로 덮을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뭐든지 해야 할 상황이라서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특히나, 이와 더불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보도 국면에서 손석희 사장이 직원들에게 보냈다는 사내 메일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최민희 전 의원의 전언은 더욱 신빙성을 얻었다. 26일과 27일에 나온 <뉴스룸>의 앵커브리핑과 겹쳐 보일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실감을 던져주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태도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세월호 참사에 이은 국가적 비상사태, 그러니까 '순실의 시대'가 낳은 '상실의 시대'를 함께 버텨 나가기. 26일 <뉴스룸> 클로징 곡으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선곡한 손석희 앵커와 <뉴스룸>은 그렇게 국민들에게 이토록 황당해서 더 깊은 상실감을 이겨 나가자고 제안하있다.

심지어 27일 자 <뉴스룸>은 29일로 예정된 대규모 항의집회까지 홍보(?)해 주기까지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정부여당이 만들어낸 국가적 위기에 전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지금, 손석희 앵커의 말마따나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뉴스룸>과 함께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모두의 마음은 며칠사이 분노보다는 차라리 자괴에 아팠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영문도 모를 상처를 입어야 했고 그 상처가 다시금 긁혀나가 또 다른 생채기가 생겨버린… 무어라 말로는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상실의 시대'.

최고권력자는 고개를 숙였다지만 그 사과를 바라보며 느껴야 했던 또 다른 갈증과 상실감… 많은 언론들은 어제와 다른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지만 그 갈증과 상실감을 과연 채워줄 수 있을까… 무엇이 맞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것인가. 그 혼돈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의지하고 마음 둘 곳은 과연 어디인가. 그렇게 가슴 왼 편이 휑하니 뚫려버린 것만 같은… '상실의 시대'. 아니 '순실의 시대'."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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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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