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인터내셔널의 이마붑 대표M&M 인터내셔널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마붑 대표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얼어버린 마음에 영화가 스미는 순간
주말이면 뒷산에 올라 강아지들과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즐기는 이마붑씨. 그는 방글라데시 출신 한국인이다. 1999년, 스물두 살 되던 해 처음 밟은 한국 땅은 산이 많고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필력 있는 지인들의 글을 엮어 다섯 권의 책을 출판한 이력도 있다. 노래 잘하는 친구의 음반 제작은 비록 실패했지만...
3년 동안 학비를 벌겠다며 고국을 떠나온 그는 햇수로 17년째 한국에 머물고 있다. 아니, 정착했다. "해외에 나가면 아내보다 강아지들과 더 통화하고 싶다"는 그의 농담에 단번에 그와 가까워졌다.
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미디어 활동가로 알려진 그는 지난해 'M&M인터내셔널'이라는 영화배급사를 만들어 11월 3일 첫 영화 개봉을 했다. 영화 홍보에 정신없는 그를 지난 10월 14일, 사무실에서 만났다. 질문 하나하나 곱씹은 뒤 단어들을 세심하게 선별해 문장을 조합하듯 답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은 신중하고 어딘가 조심스러운 데가 있었다.
춤추고 노래하면서 즐거우면 안 되나요?섬유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마붑씨가 멋진 풍광 속에 감춰진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마주하기까진 그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네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좁디좁은 방 한 칸을 함께 썼고, 공장 바로 옆에 붙은 숙소에서는 잠을 잘 때에도 줄곧 기계 소음이 들렸다. 이주노동자로서의 삶은 한국의 자연과 달리 열악하기만 했다. 12시간 이상 노동은 기본이었고, 동료들은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해 늘 위태로웠다. 이주노동자들의 공동체를 만든 것은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힘이 되고픈 바람 때문이었다.
"함께 밥도 먹고 놀러도 다녔어요. 장점도 많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죠.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이라든가 법을 바꾼다든가 하는…. 종교단체 등에서 관심을 갖고 도와주시긴 했지만, 우리를 복지나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싫었어요. 함께 맛있는 밥 한 끼 먹는 일회성 행사들도 발전이 없다고 느꼈고요. 주변에 노동운동을 하던 여러 나라 친구들을 만나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는 '인종차별'의 문제였지만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우리가 처해 있는 '노동' 운동에 집중했어요. 노동운동을 처음부터 좋아서 시작하는 사람은 없어요. 자연스럽게 흘러가 닿는 거죠."
노동운동은 반드시 필요했지만 운동의 방식은 그의 몸과 잘 맞지 않았다. 무겁고 답답했달까. 마붑씨는 노동운동과 문화, 예술, 다양성이 함께 가는 방법을 늘 생각했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행진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사람들과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서로 친구가 되는 것, 그것이 필요해요2004년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체언론을 만들고, 2006년 이주민영화제를 시작하게 된 것은 그렇게 조금씩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 결과였다. 다국적 사람들과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며 본인 역시 타문화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을 깨트리는 순간순간이 즐거웠다.
"한국에서의 이주민 문제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요. 다양한 문화, 예술, 사람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거죠. 이건 교육의 문제이기도 해요. 이주민에 대한 편견도 그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들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가 아끼는 영화 <빵과 장미>에는 국경을 넘어온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나온다.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다루지만, 분위기는 결코 무겁지 않다. 심지어 집회 장면은 '그들이 연애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가 <빵과 장미>을 좋아하는 이유다.
개봉을 앞둔 영화 <아프리칸 닥터>는 칸영화제에서 온종일 샌드위치만 들고 다니며 관람한 수십 편의 영화 중 그가 선택한 첫 배급 영화다. 평생 한 번도 흑인을 본 적 없는 마을에 정착한 아프리카 출신 의사 가족들이 주민들과 친해지기 위해 겪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렸다. 인종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웃음과 감동 속에서 편견을 허무는 영화. 그가 딱, 바라는 콘텐츠다.
지난 6월 지인의 소개로 서울혁신파크에 입주한 그는 여덟 개의 입주단체와 한 사무실을 쓰고 있다. 파크 안에 영화 관람이 가능한 장소가 있다는 점이 썩 마음에 들었다고 그는 말한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사무실 식구들과 함께 회식을 할 만큼 사이가 가까워졌다. 그는 요새 멀리 넓게 보기보다는, 가까이 좁게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 가족, 그리고 나로부터의 시작되는 변화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느끼기 때문이다.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작은 변화를 바랄 뿐이죠. 영화는 제게 소통의 창구예요.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제도나 법, 운동도 모두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지 '친구가 되는 것', 그것뿐이에요."혁신가의 '영화'영화 <반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