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이전에 활동한 지휘자를 좋아해요. 이때 대가가 많이 나왔거든."
이재은
"스님들은 선문답으로 말하잖아요. 한 장을 꺼내더니 이건 내가 잘 모르는 연주자인데 네가 한 번 알아봐, 그래요. 생전 처음 보는 거였죠. 그걸 갖고 명동을 헤매고 다니면서 물어보고. 누가 엘피 많이 갖고 있다고 하면 무작정 가는 거예요. 초인종 누르고, 음악 좋아하는 학생입니다, 맨땅에 헤딩. 좋은 분을 많이 만났어. 대견하게 생각하더라고. 음악 듣고 판 몇 장 얻어오고. 스님한테 하나씩 배우다 보니까 (클래식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게 된 거야. 일주일에 한 번씩 절에 갔어."'정통 스님이 아닌 이단', '짝퉁 스님'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어, 영어, 일본어도 잘 하고, 그에게 성경을 풀어주기까지 했다. "한자를 좀 아나?" "네, 조금 압니다." 스님이 책 한 권을 툭 던졌다. "한 번 보게." 20분 넘게 들여다봤지만 아는 게 없었다. 앞이 캄캄했다.
"선문답은 그거예요. 너가 한자를 안다고? 그럼 한 번 봐라. 한자는 좀 안다고 자부했는데 내가 너무 모르는 구나... 그 양반 하시는 말씀이 무식이란, 내가 모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게 무식이라는 거예요. 클래식에서만큼은 그분이 내 사부예요. 첫 사부는(명동의 가게 주인) 엉터리야. 정통이야, 이쪽이. 그 양반이 지휘를 하는데 메시아 전곡을 다 해. 음악을 들으면서 지휘하는 거야. 소프라노, 알토, 정확해.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이야. 한 마디로 학잔데 그때 당시에는 돌중으로 생각했어. 한편으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어. 저런 땡중이 다 있나 하고. 보세요. 불상 옆에 스피커가 딱. 그거부터 이상하잖아요. 헨델의 메시아, 모차르트 레퀴엠, 칸타타 같은 건 하늘에서 부르는 소리거든. 그건 하나님이거든."2년 동안 절에 다녔다. 나중에는 스님하고 명연주, 작품 성향, 연주 스타일 등에 대해 토론할 정도가 됐다. 화음이 좋지 않다,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싸우기도 했다. "자네는 어디 하나에 빠지면 헤어나질 못하는구만. 끝장을 보는구만. 이제 나보다 아는 게 많네." 직장생활 하다 보니, 사업을 꾸리다보니, 이후에는 찾아가지 못했다. 전화도 없던 시절이니까.
"그때 그 양반이 일흔 정도 됐을 거야. 부인도 있고, 애도 있었던 것 같아. 대처승도 아닌데. 대학생이니까 알 건 다 알잖아. 빤하잖아. 속으로 어쩌다가 땡중이 됐을까 그랬지. 근데 아는 게 너무 많아.""스님이 연주할줄 아는 악기는 없었나요?"
그는 두 손을 들어 목탁 두드리는 시늉을 했다. "목탁이 악기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