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도 아는 100만의 의미, 국민의 요구는 하나다

[게릴라칼럼] 2선 후퇴도, 거국내각도, 책임총리도 아닌 '퇴진'이 필요하다

등록 2016.11.13 20:59수정 2016.11.1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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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광화문 일대 뒤덮은 '박근혜 퇴진' 촛불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2일 오후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청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광화문 일대 뒤덮은 '박근혜 퇴진' 촛불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2일 오후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청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것이 '민의'다. 연인원 1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어느 기자는 조심스레 150만을 예상했다. 경찰들은 어느 순간 '집계'를 포기하고, 광화문에서 자취를 감췄다. 다만, 청와대 길목만을 간신히 지켰을 뿐이다. 그에 반해,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평화로운 집회 문화를 완성해 가며 "이것이 한국식 민주주의다"라는 성숙한 분노를 청와대와 전 세계에 알렸다.

12일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광화문은 해방구였고, 역사의 현장이었으며, 민심의 증언대였다. 인원만 보자면 1987년 6.10 항쟁 이후 최대 인원, 아니 최대 국민들이 운집했다. 외신들도 당연히 '주목'했다.

집회 직후, 광화문을 중심으로 경복궁 안국역, 종로 등 그 일대 식당, 술집들의 식재료와 술이 동이 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렇게 대통령 박근혜는 '시위경제 활성화'를 달성했다.

"말은 독일로 달려가는 게 아닙니다. 이화여대로 달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달려야 할 곳은 청와대입니다."

현재를 예언한 것 같은 노래 '말 달리자'를 부른 크라잉넛이 이날 광화문 광장 무대 위에서 한 말이다. 특유의 입담으로 헌법 강의를 펴고 사자후를 터트린 김제동도, 자신의 노래 '덩크슛'의 주문을 '박근혜는 하야하라'로 바꾼 이승환도, 갑작스레 무대에 올라 사회자를 당황시킨 도올 김용옥도 이날의 주인공일 수는 없었다.

우리가 달려야 할 곳이 청와대이고, "하야하라"는 요구를 받들어야 할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걸 아는 국민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그중에서 인상 깊던 인물을 한 명 꼽자면 "대통령을 한 게 자괴감이 들고 괴로우면 그만두시라"고 일침을 놓던 한 초등학생이었다.

"대통령과 친한 사람이나 재벌만 잘사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한 게 자괴감이 들고 괴로우면 그만두세요. (중략) 저 같은 초등학생에게 시국선언이나 자괴감 같은 단어를 알려주신 박근혜 정부께 참 감사하고요. 그리고 친구와 노는 얘기가 아닌, 수다가 아닌, 즐거운 얘기가 아닌 우리나라와 사회에 대해 얘기하게 한 것도 참 감사하네요. (중략) 귀가 안 좋으신가, 눈이 안 좋으신가, 전국에서 이 여덟 글자를 말하고 있는데 왜 못 알아 들으실까요? 저도 말합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최고조로 상승한 '분노 게이지' 그럼에도

a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앞에서 '박근혜 하야하라! 3차 범국민행동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경찰에 의해 청와대 행진이 저지되자, 경찰 차벽을 두드리며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앞에서 '박근혜 하야하라! 3차 범국민행동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경찰에 의해 청와대 행진이 저지되자, 경찰 차벽을 두드리며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걱정 마시라. 폭력 시위는, 단언컨대 없었다. JTBC까지 자정 넘은 시간에 뉴스특보로 "일부 시위대" 운운하며 경찰과의 대치를 걱정하고 나섰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경복궁 인근 시위대는 충분히 평화로웠다.


일부 경찰 버스에 올라가고 차벽을 넘어 섰지만, 청와대 권력과 경찰은 그 정도도 감지덕지 여겨야 마땅하다. 역사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최고조로 상승한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를 감안하면, 청와대를 '접수'하고도 남았지만 간신히 참았다고 볼 수 있다.

TV조선 등 일부 매체는 '폭력' 딱지를 덧씌우려고 노력했다. 세월호 유족들이 경복궁역 앞으로 합류하면서 그 분노의 불길은 더 거세졌다. 하지만 유혈 투쟁을 막으려는 시민들의, 국민들의 자제력은 전 세계가 부러워할 만했다. 100만, 서울로만 치환하면 국민 10명 중 1명이 광장에 집결한 셈이다.

'지지율 5%'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 어떤 면에서, 민주주의와 진보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20대와 호남은 심지어 0%다. 외치, 내치 가릴 것 없이 그대로 내치면 된다. 외신들이 '미 트럼프 당선'과 함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세상에 이런 일이'처럼 다루고 있다. 국민에게 치욕을 안겨준 대통령이 하야할 차례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전 서울 특파원인 다니엘 튜더가 12일 <중앙일보>에 게재한 '역사의 평가가 대통령에게 덜 가혹해지려면'이란 제목의 칼럼이 이를 잘 반영한다.

"모든 전임 대통령들은 수뢰한 친인척·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들 중에 공직이 없는 부패한 외부인의 영향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 그 어떤 전직 대통령도 현 수준의 국가적 수치심을 초래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그게 우파가 대통령을 포기한 궁극적 이유다. 박정희는 우파가 애지중지하는 강력한 국가 이미지의 건설자였다. 슬프게도 딸은 그런 이미지에 손상을 입혔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까지 부패를 참을 수 있지만 수치심은 용인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도덕적·정치적 권위는 이제 확실히 없다. 이 나라가 어떤 해결책을 수용하건 그 해결책에는 그의 권력을 부분적으로라도 박탈하는 게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는 상황에, 1년 4개월이 남은 임기는 애매함과 갈등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탄핵 과정 또한 늘어지고 험악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트럼프 임기를 앞두고 한국은 지정학적인 불안을 더 심히 느끼게 될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명백하고 단호한 지휘가 더욱더 필요하다."

정말 민의를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면  

a 국민들의 분노, '박근혜는 퇴진하라!'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이 타고 있다.

국민들의 분노, '박근혜는 퇴진하라!'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이 타고 있다. ⓒ 이정민


이 와중에, 청와대는 "엄중하다"는 표현을 썼다. '100만 광장'의 민의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논평이 나왔다. 안타깝게도, 번역기가 필요했던, 아니 최순실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려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현실 인식이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던 그 '최순실 옆 박근혜' 대통령의 화법 말이다.

'엄중하게'는, 엄중하게 불필요하다. 광장의 그 뜨겁고도 드높은 '분노의 평화'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말이다. 12일 광장에서 맹활약한 김제동의 말마따나, "종편에서 하루 종일 떠드는" 그 정치평론가들이 절대 알 길 없는 그 민의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은 2선 후퇴도, 거국내각도, 책임총리도 아니다. 엄중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혹은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그 광장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13일 오후,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국회에 "탄핵소추 검토 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100만 민심을 받들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기 위한 법적, 정치적 절차를 제대로 밟아야 한다는 촉구인 셈이다.

국민의 요구가 그러하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상황만 봐도 답이 나온다. 대선주자 중 '박근혜 퇴진'의 목소리를 드높인 이재명 성남시장의 지지율 상승폭을 보라. 12일 저녁,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청계광장을 찾은 이 시장의 이름을 연호하는 광경은 분명 생경했다. 하지만, 그것이 민심이다. 역시나 '박근혜 하야'를 가장 빠르게 선포하고,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을 지지하고 나선 박원순 시장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미적지근하게 '정치공학'이나 '역풍'을 고려할 시기가 아니다. '변호인 시국선언'과 같이 현실적이고 다각적으로, 정치권이 박근혜 퇴진의 방법론을 실천해야 할 때다. 국민들의 요구가 그러하다. 역사적인 투쟁의 보람도 없이, 정치권의 내부 거래와 그 정치공학으로 시민들의, 국민들의 열망을 제쳐버렸던 6.10 항쟁의 교훈을 되새길 때다. 초등학생도 말하는 "박근혜 퇴진", 더 늦출 수 없다. 한국 사회 재변혁의 초석을 지금, 우리가 놓아야 할 때다.
#박근혜 #최순실 #민중총궐기 #100만명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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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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