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일깨워주는 많은 것들

[여행, 나의 일상에서 그대 일상으로 4]

등록 2016.12.05 16:18수정 2016.12.0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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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금 저 무생물에 내 생사를 맡기는구나'
'다시금 저 무생물에 내 생사를 맡기는구나'이명주

'다시금 저 무생물에 내 생사를 맡기는구나'. 

나를 포함한 백수십여 사람을 싣고 날아갈 비행기를 본 순간 드는 생각. 비행기를 탈 때마다 하는 또 한 가지 생각은 직업에 대한. 정확히 주변의 수많은 '직업인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다.


여느 때보다 간절히 '이 거대한 무생물을 움직이는 데 가담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주(줬)길. 그리하여 나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살려 보내주길' 하고 바라게 된다.

이렇게 소망하다보면 누군가의 직업이 내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실감한다. 고로 불손한 언행으로 누군가 자신의 일을 소홀히하거나 거기에 분풀이하고 싶지 않게끔, 애정과 자부심을 잃지 않게끔 존중하고 응원함이, 나와 이 세계의 안전을 도모하는 가장 쉽고도 확실한 한 방법임을.

 '나는 국민이다'
'나는 국민이다' 이명주

형용하기 어려운, 황당과 분노가 자글거리는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 상황. 탑승 전 마땅히 활용할 것이 없어 편의점에서 산 우비 포장 위에 썼다. '박근혜 하야 & 구속'. 이럴 줄 알았으면 거리 행진 때 흔들던 플래카드를 가져올 걸 후회했다.

해외로 간다고 내 나라 일에 무심할 수 없다. 무슨 일이든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명주

착륙. 기체가 흔들리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다가 점차 잦아진다.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리내 말했다. 비행 내내 환하게 웃던 승무원에게도 인사했다.


여행은 여러모로 일상에서 무뎌진 감각을 일깨워 스스로 작은 존재임을,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겸손해진다.

 너무 닮은 도시의 모습
너무 닮은 도시의 모습 이명주

타이베이 시먼역 숙소 찾아가는 길. 도시와 도시인들의 모습이 익숙하다. 지하철역 안의 사람들은 무표정하게 오가고, 마스크를 착용한 청소 노동자가 손걸레를 들고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닦고 있다.


한국에서도 자주 든 의문인데, 지나치리만치 많은 것들을 기계화하면서 청소 노동자들에겐 왜 여전히 걸레와 양동이만을 제공하는지? 무인화 주장이 아닌 근로 복지, 배려를 말하고 있다.

 카우치서핑으로 구한 첫 번째 집
카우치서핑으로 구한 첫 번째 집 이명주

이번 여행은 최대 반 년 일정이다. 경비를 아끼려 카우치서핑(CouchSurfing)으로 첫 숙소를 구했다. 카우치서핑은 자신의 집 일부 또는 전체를 다른 여행자와 함께 쓰는, 근래 유행하는 '셰어하우스' 일종이다. 돈 대신 서로간의 신뢰와 배려가 필수다.  

그런데 '오 마이 갓!', 열흘간 묵기로 한 집과 집주인이 심상치 않았다. 집은 불특정 다수 손님이 오가는 타투 작업실을 겸하고 있었고, 내가 쉴 곳은 바로 그 공간 한편에 이름 그대로 카우치(couch, 긴 의자) 하나였다. 심히 낡고 위생이 의심되는.  

더욱 심각한 것은 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연거푸 담배 세 대를 피웠고, 그의 말대로면 대개 취침 시각인 새벽 3시까지 그럴 거라고. 머릿속이 지끈한 동시에 바빠졌다. '여기 말고 나를 재워주겠다 했던 또다른 카우치서핑 숙소가 지금도 유효할까', '이대로 가도 될까' 하면서.

 두 번째 카우치서핑 집주인을 기다리며.
두 번째 카우치서핑 집주인을 기다리며. 이명주

결국 양해를 구하고 일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서둘러 나를 초대했던 다른 현지인에 연락을 했다. 곧바로 긍정적인 답이 왔고, 위치도 지하철로 10여 분 거리였다. 까만 밤, 낯선 동네에서 낯선 이를 기다리며 '자고 싶을 때 잠잘 수 있는 것도 큰 복이었구나' 생각했다.

두 번째 카우치서핑 아파트. 좀 전과 비교하면 과장 보태 궁전 격이다. 나만을 위한 일실이며, 그 안에 커다란 침대, 옷장 하나씩이 있다. 침대에 머리카락이 몇 올 보이지만 그쯤이야. 화장실에 물때와 각종 얼룩이 가득하지만 뭐 또 그쯤이야. 일단 오늘(11월 9일)은 여기까지.

<여행, 나의 일상에서 그대 일상으로>
'여행은 결국 나의 일상에서 누군가의 일상을 오가는 여정. 고로 내 일상에선 먼 곳을 여행하듯 천진하고 호기심어리게, 남의 일상에선 나와 내 삶을 아끼듯 그렇게.

'삶은 여행'이라는 너무 익숙해서 인용조차 꺼리던 이 표현이 새롭게 깊이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또 한 번의 여행을 11월 9일부터 시작합니다. 길의 단절이 아닌 확장을 위함이고, 보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나와 내 삶을 만들고자 하는 바람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종종 전하겠습니다.

facebook /travelforall.Myoungju


덧붙이는 글 카우치서핑(couchsurfing)으로 숙소를 구할 때는 초대 요청에 앞서 호스트(집주인 또는 그런 책임과 권한을 가진 자)가 올린 정보와 앞서 그곳에 묵은 서퍼(이용자)들의 후기를 세심하게 읽어야 합니다. 본인이 첫 번째로 묵기로 했던 집에서의 해프닝은 스스로 사전 설명을 충분히 읽지 않은 부주의 때문이었습니다. 계획대로 묵지는 않았으나 초대해준 Oz씨게 고마움 전합니다.
#타이페이 #김해공항국제선 #얼리버드 #대한항공조현아 #카우치서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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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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