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막이 벌교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임현철
전남 보성의 재래시장인 벌교시장입니다. 좌판에는 배추, 무, 대파 등 농산물과 감, 귤, 다래 등 과일 및 게, 소라, 꼬막, 주꾸미, 새우 등 수산물이 놓여 있습니다. 정리된 듯 안 된 듯한 꾸밈새에서 삶에 녹아난 질서와 무질서를 읽습니다. 삶이 질서정연하기만 하면 무슨 재미겠어요. 간혹 비뚤어진 길과 험난한 굴곡의 길도 가봐야 인생이 그만큼 재미난 것임을 아는 이치지요.
늘 느끼는 거지만, 재래시장에 서면 언제나 살아 있는, 혹은 살아나는 느낌입니다. 왜일까요? 생각해 보건데, 재래시장에는 "이거 얼마예요? 조금 더 줘요. 오백 원만 깎아줘요" 같이 가격 흥정으로 대변되는 '왁자지껄' 문화가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니까 말 섞는 중에 묻어나오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정으로 인해 살아있음을 인식하는 거랄까.
벌교시장 통에서 나오는 어떤 중년 남자 손에는 박스가 양손에 들려 있습니다. 발걸음이 바쁩니다. 이를 보니 '어떤 이에게 무엇을 보내려는 걸까'란 궁금증 보다, 마음이 담긴 선물 같아 더 흐뭇합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풍경에 '아~' 하며 눈길을 멈췄습니다. 익은 호박과 그 옆으로 무 잎을 말리는 모습. 이 대목에서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엄마는 아들 먹인다고 무 잎을 말려 시래기 된장국으로 내셨지요. 정성이었지요.
'다 어디 가셨지?'벌교시장에 한 눈 파는 사이, 일행이 사라졌습니다. 분명 이쪽으로 같이 왔는데, 연기처럼 없어졌습니다.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 걷노라니, 문 사이로 승복이 보입니다. 그제야 간판을 봅니다. 간판도 없습니다. 허름한 선술집 분위기. 그저 문 유리에 '할매밥집'이라 쓰였습니다. 그 옆으로 '아침식사 됩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간판 없이 살아남은 밥집의 당당함을 봅니다. 밥집의 당당함의 원천은 '맛'뿐이라는 거.
대박, 어머니 맛 2000원짜리 백반 '할매밥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