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섭 작가는 양키시장을 주제로 사진전을 열고 책을 펴냈다
사진공간배다리
혼자 사시냐고 물었더니 할머니가 펄쩍 뛴다. "혼자 살긴 왜 혼자 살아. 작은 아들이 공군 대령이야. 큰 아들은 선생이고." 혼자냐고 물은 게 아니고 혼자 사시냐고 여쭤본 건데….
말씀에 북쪽 억양이 별로 안 남아있다고 하자 할머니가 또 펄쩍 뛴다.
"개성 사람들이 무슨 억양이 있어. 나는 개성 사람이고 할아버이는 평양 사람이기 때문에. 할아버이는 억양이 좀 있었지.""고만 좀 허고 가셔. 사람이 좀 오고 그래야지."차가운 동생의 목소리.
"나보고 잔소리 한다고 그러는 거야. 옛날 얘기 헌다고."할머니는 적극적이었고, 듣고 싶은 사연이 넘쳤지만 더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을 수 없었다. 나 때문에 손님이 오지 않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어르신 때문에 뻔뻔하게 버틸 수가 없었다. 멋진 갈색 중절모를 쓴 동생분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던 찰나에 수선을 끝마쳤다. 기다리던 손님에게 옷을 건넨 뒤 또 한 번 "에잇" 하신다.
"술 먹어야 하는데 이야기를 왜 이리 오래 해."고 할머니는 나를 따라 문밖으로 나온다. 나는 연거푸 죄송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인다. 고맙고 미안해서 뭐라도 사드리고 싶은데 동생이 또 화를 낼 것 같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 하고 돌아선다.
희미한 알전등, 습하고 좁은 골목, 지루한 텔레비전 불빛, 손님을 기다리는 목소리 사이로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걷는다. "뭐 사러 왔수?" "뭐 찾어?" 할머니들이 호객한다. 수입과자며 사탕을 파는 가게 앞에 선다. 버터 캔디를 집고 가격을 물었더니
"천 원이야. 100원밖에 안 남아." "이 과자는 얼마예요?" "천오백 원. 남는 것도 없어." 잘 나가는 거라며 선반에 있는 코코넛 과자를 꺼내놓는다. "그것도 주세요." 남는 것도 없다더니 작은 봉지에 든 캐러멜을 슬쩍 넣어주는 건 또 뭔가. 부피가 큰 검정비닐을 받아들고 이걸 평양 수선집 할머니에게 갖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대로 집까지 들고 온다. 집에 와서 뜯은 쿠키는 달아도 너무 달다.
해방 후 미군부대가 들어오면서 형성된 양키시장. 전쟁의 폐허에서 살기 위해 양키 물건을 팔았던 송현동 100번지. '사진 찍지 마시오'라는 경고(?) 때문에 골목 사진 하나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사람을 찍는 게 아니라면 골목이야 몰래 한 장 찍어도 그만일 텐데, 그만하라는 수선집 어르신의 목소리가 나를 막았다.
나처럼 기자들이 이야기 들으러 많이 찾아오느냐고 했을 때 고 할머니는 그런 사람 별로 없다고 했다. 사진 찍는 사람들은 많이 오지 않느냐고 묻자 "사진 많이 찍어. 여기서 촬영도 하고 그래" 하면서도 "여기 사람들이 좋아하진 않아. 그지 같으니까. 못 사는 거 찍어가니까 싫어하지."
'그지 같은 거', '못 사는 거'를 담으려는 것만은 아니었을 텐데, 진심은 알 수 없다. 누군가의 진실조각을 붙들어 살피는 삶도 쉽지 않다.
"까마득한 골목 끝쯤 환한 빛이 걸어오고 있다. 굳게 닫힌 입이 열리는 환영이 들린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이니까. 그것이 길이니까. (중략) 그게 삶이고 생활이니까. 삶이 곧 어둠이고, 어둠이 곧 삶이다. 침묵의 말들이 어둠 속에서 환하게 걸어 나온다." 이세기 시인의 문장처럼 2016년의 양키시장에도 빛이 있다. 어쨌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인천의 어떤 모습이다.
"다 했어! 뭐 헐 거 있나? 다 얘기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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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쇠락한 양키시장에서 "어쨌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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