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쓸쓸한 풍광의 도구해수욕장. 멀리 포스코(구 포항제철)가 보인다.
이용선 제공
케케묵은 고릿적 소설로 오해될 수도 있는 황석영의 <몰개월의 새>를 다시 펴드는 것은 웃음은 물론 눈물까지 함께 했던 그(주인공 '나')와 그녀(빠꿈이란 별명의 작부 '미자')의 공동체인 '골목'이 어떤 과정을 통해 와해됐으며, 무엇을 통해 복원될 수 있는지를 살피는 행위인 동시에, 대비되는 두 공간(몰개월 창가와 폭탄 터지는 베트남 정글)이 이름을 달리해 현재도 엄존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에 다름없다.
소설의 서두는 베트남 파병을 목전에 둔 주인공 한 상병(나)이 유년과 청춘을 보낸 서울의 '골목'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년 반 만에 서울을 찾아가 다시 확인했던 것은 나의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파충류의 허물과도 같은 것이고, 나는 그 허물을 주워서 다시 뒤집어쓰고 돌아온 건 아닌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싸돌아다니던 골목에는 아직도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어두운 얼굴로 서 있었다. 나도 언제나 끼이고 싶어하던. 머리 좋은 치들의 비밀결사는 여전히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성공한 신사들 같았다. 모친의 식료품 가게는 문을 닫았다. 그 어두운 가게의 천장 위에 내 '잠수함'은 뚜껑을 닫고 선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뚜껑을 젖히고 머리를 내밀자 나는 다시 심해에 잠기는 것 같았다. 내 다락방의 벽에는 떠나오던 날의 낙서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밤새껏 승냥이는 울부짖는다-라고. 지붕 건너편에서 솜틀집의 활차 돌아가는 소리가 여전히 들렸고,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발소 집 형제는 유행가를 합창하고, 야채장수 부부는 또 한바탕 두들기고 울었다.'골목'에서 성장한 소년이 청년이 되고 그 청년이 또 다른 '골목'인 몰개월에 이르러 이제는 '골목 바깥'으로 내팽개쳐질 운명이 됐다. 온전한 형상이라 믿고 살았던 공동체가 붕괴하는 모습을 힘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20대 젊은이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골목'에 대한 집착과 같은 아픔을 앓는 골목 안 인간들에 대한 연민은 무한대로 증폭한다. 한 상병에게 그 집착과 연민은 가진 돈 전부를 몰개월의 직업여성 빠꿈이(미자)에게 털어주는 형태로 나타난다.
추장이 말했다. "뭐하니... 몰개월 나가자.""잠이나 자야겠어.""헛... 야, 너 미쳤구나. 다섯시에 출동이야. 지금 벌써 한시 가까이 되었다. 마지막인데 잠이 오냐?""졸려.""돈 아까워서 그러니? 이제부턴 휴지나 다름없는데 뭐할래...""몸이 불편해.""인마, 술 먹으면 다 나을 병이야. 갈매기집 빠꿈이가 오매불망 기다린다.""조용히 누워 있을라구 그래. 갔다 와. 그리고, 이거 갖다줘라. 탁 털은 거야.""외상값이냐?""휴지나 마찬가지잖아.""빠꿈이 수지 맞았는 걸."주인공 나(한 상병)는 어디에서 미자를 처음 만났을까? '골목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강제한 전쟁에 '골목 안' 사람들이 끌려가 죽는 아이러니가 반복되던 1960년대와 1970년대. 당시 경북 포항 외곽 바닷가마을엔 '무너지는 골목공동체'를 은유하는 공간이 존재했다. 바로 '몰개월'이다. 황석영은 그곳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는 철조망을 무사히 통과했다. 개구리 소리에 귀가 멍멍했다. 논두렁을 지나면 한길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 "불빛 보이니?""응. 몰개월이다."몰개월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특교대가 생겨나자 서너 채의 초가가 있던 외진 곳에 하나둘씩 주막이 들어섰는데, 거의가 슬레이트 지붕에 흙벽돌이나 블록으로 지은 바라크들이었다. 비슷한 꼴의 나지막한 집 이십여 채가 울퉁불퉁한 자갈길 양쪽에 늘어서 있었다. 원래의 몰개월 마을은 2킬로쯤 더 가야 있었으나, 이곳을 모두 몰개월이라 불렀는데 바다가 바로 그 뒤편에서 철썩이고 있었다. 어디서 흘러왔는지 모를 작부들이 집마다 두세 명씩 기거했다.지금도 포항시 청림동과 동해면은 좁은 골목이 야트막한 건물들을 거느리고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불을 밝힌 골목 안 집들에선 40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삶이 간당간당 이어진다. 외형은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보일 수 있지만, 간난신고(艱難辛苦)로 이어지는 가난한 자들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렇다면 1960년대 빈한한 가정의 딸로 태어나 온갖 고생을 겪다가 결국엔 삶의 마지막 진창으로 머리채 잡혀 끌려온 몰개월의 '작부'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축복받지 못한 출생과 거친 삶의 이력 탓에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잃었던 것일까? 천만에다. 몰개월의 창가 중 한 곳에 기생했던 포주(抱主)가 입을 열어 '골목 안' 그녀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쓸개 빠진 년들이 모두들 애인 하나씩 골라서는 편지질을 하는데, 어떤 애들은 열 사람 스무 사람에게 쓴다우. 한 달에 한명씩 골라잡아두 열 달이면 열명이 꽉 찬다구. 미자년이나 옆집 애란이나 가끔 술 처먹구 지랄을 하는데, 아마 상대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는 모양이지. 제대하구 가면서 몰개월에 찾아와 들여다보는 놈들은 한 번도 못 봤는데두."1960년대 베트남으로 보낼 군인들을 훈련시키던 장소 인근에는 현재 '몰개월 비행기공원'(포항시 남구 청림동)이 들어서있다. 줄을 지어 늘어선 비행기를 보며 떠올리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엔 베트남 하늘을 날아다니며 그 양을 측정할 수도 없는 네이팜탄과 고엽제(枯葉劑)를 쏟아 붓던 미국 공군 폭격기가 가장 먼저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