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다시 갈린 골목 구석에 자리 잡은 음식점의 깜찍한 문
길동무
풍차 마을은 벌판이 펼쳐졌고 햇볕의 은총이 두터웠다. 바람이 풍성하게 오갔다. 벌판이 넓고 햇빛 풍성하며 바람 좋은 곳에 풍성한 수확은 당연했으리라. 그리고 방아를 찧을 풍차가 필요했으리라. 그렇다. 풍차 마을은 아늑하고 잔잔한 오비도스와는 태생적으로 딴판이다.
풍차 마을엔 예나 지금이나 라만차 지방의 상징인 광대한 벌판이 바람을 따라 사방으로 내달린다. 그리고 돈키호테의 용기로 변함없이 꿈을 펼친다. 그러므로 풍차 마을에서는 돈키호테가 대표로 나설 수밖에 없다.
16세기에 발간된 소설 <돈키호테>, 어떤 학자는 현대소설의 시효라 평하고, 어떤 이는 세상에서 최고로 많이 읽힌 소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출간한 지 4세기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소설 <돈키호테>, 소설의 주인공 같은 세르반테스 생과 소설 속 가상 인물 돈키호테, 그리고 풍차는 들여다볼수록 참으로 멋진 조화다.
그러므로 승부를 가릴 수 없다. 두 곳의 존재가 실로 개성 넘치고 가치가 분명하지 않은가? 그것을 확인한 것으로 여기서 비교를 마칠 수밖에 없다. 더는 두 곳에 관한 저울질이 필요 없다. 이제 길동무 여행의 본질인 허허실실, 인상파식으로 왕비 마을의 품을 거닐어 보자.
후대의 왕들도 선대 따라 왕비에게 선물한 마을 오비도스성(城)의 이미지는 참 다중적이다. 성은 우선 수난의 표상이다. 수난을 이겨내기 위해 힘들여 성을 쌓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은 보호막 이미지가 강하다.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으로 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살벌한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격동의 시기가 지나고 성의 기능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 성은 아름다운 대상으로 변한다. 특히 오래된 성은 그곳에 서는 것만으로 감회에 젖게 한다. 수난의 역사마저 그리움의 대상으로 바꾸어 대령하는 것이 성이다.
오비도스의 작지만 아름다운 성, 다중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한 성의 모델 오비도스는 아주 천천히 걸어야 그 진수를 즐길 수 있다. 작은 창이 아름답다. 오래된 시간과 따끈한 햇빛이 어울려 즐긴다. 크지 않은 문들과 지붕을 덮은 기와에서는 시간이 빚은 솜씨가 그윽이 배어난다. 창가와 담장의 꽃들이 수줍음을 다툰다. 이에 질세라 곳곳을 장식한 아줄레주(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가 반짝인다. 대형으로 무리를 이룰 때보다 아줄레주의 멋이 깜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