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 땅 심야 산책길 문득, 생로병사를 떠올리다

[디카시로 여는 세상 - 시즌2 중국 정주편 39] 심야의 맹인악사

등록 2016.12.09 12:14수정 2016.12.0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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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인악사
맹인악사이상옥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음률로 별들의 귀를 세우는
              -이상옥의 디카시 <심야의 맹인악사>


겨울이지만 자주, 정주경공업대학교 인근 대학 심야 산책을 즐긴다. 한국에서도 자주 산책을 했다. 창원에 거주할 때는 토월공원을 애견 고야와 함께 산책했고, 고성 고향집에 있을 때도 진돗개 원더와 집앞 논길을 산책하거나 인근 연화산길을 올랐다.

기회가 되면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도 걸어보고 싶다. 중세풍의 도시 하이델베르크는 뮤지컬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무대로, 많은 철학자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하이델베르크의 네카강 '카를 데오도르 다리(Karl Theodor Bruke)'는 오래된 아름다운 다리로 독일의 명물이라고 한다. 칸트가 퀘니히스베르그 마을길을 산책하며 점심시간 때 이 다리를 늘 건넜는데, 다리 위로 칸트가 보이면 마을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심야 맹인악사가 연주하던 곳의 아침 , 정주경공업대학교 학생들로 가득하다..
심야 맹인악사가 연주하던 곳의 아침 , 정주경공업대학교 학생들로 가득하다.. 이상옥

칸트처럼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정주경공업대학교 인근 대학로를 거쳐 쭉 걸어 공원까지 때로는 더 멀리 쇼핑몰이 있는 곳까지 산책을 한다. 어제 산책할 때는 거의 자정이 가까운 시각, 맹인악사가 구슬프게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길은 이미 인적이 끊겼는데, 도대체 누굴 위해 연주하는 것일까.

산책을 하며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률을 연주하는 맹인악사의 음악을 듣는 것은 행운인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지 않고 사람들이 들어주든지 들어주지 않든지 심혈을 기울여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그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했다. 다음 산책길에는 미리 맹인악사를 위해서 지폐를 준비해 두어야겠다.

산책길에서 만난 심야의 맹인악사


심야 산책을 하며 창원과 고향 고성집에서 10년을 함께한 진돗개 고야 생각도 났다. 그 녀석은 정말 야성이 강한 산책길의 벗이었다. 그 녀석과 같은 진돗개를 한 마리 얻고 싶었지만 그런 명견을 구하기는 싶지 않았다.
 용맹한 진도새 암컷. 유방암에 걸려서도 진돗개 본연의 위용을 드러낸다.
용맹한 진도새 암컷. 유방암에 걸려서도 진돗개 본연의 위용을 드러낸다.이상옥

몇 해 전 지인이 알고 있는 아주 영민한 진돗개 암컷이 있다고 해서, 그 강아지를 한 마리 받고 싶었다. 그 녀석은 암컷인데도 산에 가면 사나운 오소리를 만나도 제압할 정도의 용맹성 또한 탁월하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 녀석 새끼 한 마리 받아 키울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이가 너무 많아 수술도 할 수 없을 없다고 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로병사라는 자연의 질서 앞에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심야의 이국 땅 산책길 맹인악사의 연주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대체 생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덧붙이는 글 올 3월 1일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
#디카시 #산책길 #맹인악사 #정주 #정주경공업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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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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