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신간에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니

공지영의 <시인의 밥상>을 읽으며

등록 2016.12.20 09:35수정 2016.12.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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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밥상> 책표지.
<시인의 밥상> 책표지.한겨레출판
책이 내게로 온 다음날 오전 5시 28분부터 읽기 시작, 6시 무렵 70 몇 쪽을 읽고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6시 30분까지, 100쪽 정도까지만 읽자. 빨래 널고 출근해야 하니까' 그런데 책 읽는 맛에 이끌려 읽다보니 6시 50분. '아쉽지만 그만 읽자. 지하철에서 읽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나. '다음 이야기는?' 읽지 못해도 우선 보기나 하자고 펼쳤는데 하필 굴밥 이야기다. 10여일 전, 거제도가 고향인 지인을 통해 통영굴 3킬로그램을 시켜 거푸 세끼를 해먹었음에도 생각만으로도 입 안 가득 굴 향이 고이고, 몇 번이고 다시 해먹고 싶은 하필 굴밥에 대한.


결국 책을 놓지 못하고 109쪽부터 시작되는 '두그릇뚝딱굴밥'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 '애호박고지나물밥' 이야기까지 출근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각까지 읽었다. 공지영의 <시인의 밥상>(한겨레출판)은 이렇게 붙잡고 읽은 책으로 기억하기도 할 것이다.

버들치 시인은 잘 씻어 건진 그 굴을 놀랄 만큼 가득히(아니, 수북이) 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덮었다. 굴밥이라면 굴을 넣고 밥을 하는 것, 그리고 밥 사이에서 굴의 잔해(?)들을 찾아 먹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나는 그의 과감한 굴 투입에 놀랐다. 버들치 시인은 대파 썬 것을 다시 그 굴 위에 넉넉히 넣고 뚜껑을 덮었다. 불은 중간 불이었다. 우리가 추울까 봐 군불 속에 고구마를 묻어놓았던 시인은 우리에게 그걸 내놓고 그동안 양념장을 만들었다.

노란 고구마의 속살을 입에 호호 불어 넣으며 슬쩍 엿보니 시인의 양념장 재료는 이랬다. 멸치와 다시마, 무, 양파껍질, 파 뿌리 등등을 넣어 우려 놓은 육수 한 컵에 어간장 약간, 그리고 집간장 약간, 그리고 대파와 풋고추, 붉은 고추 다진 것, 그리고 매실 진액 약간이다. 굴밥이나 무밥이라면 그냥 시중에서 파는 양조간장에 파, 마늘, 풋고추, 깨소금, 참기름을 넣는 줄 알았던 나의 통념과는 아주 다른 맛이 거기에 있었다.(111~112쪽)

맛있게 해먹곤 하나 그래도 궁금한 누군가의 굴밥 레시피. 시인은 미리 들기름 먹인 프라이팬에 굴밥을 한 후 양념장을 한꺼번에 비벼 여러 사람과 둘러앉아 나눠 먹는 방법을 택했다.

대체 어떤 맛일까? 저자는 '생각만으로 침이 고이는 맛'이라고 표현했다. '들기름을 머금은 누룽지는 바다의 굴 내음을 머금고 있었고, 굴은 들기름으로 달구어진 구수한 누룽지를 머금고 있었다'는 표현과 함께.


여기까지 쓰다가 굴밥 해먹을 때처럼 어리굴젓으로 아침밥을 해먹었다. 생물로 해먹을 때만 못하나 며칠 전 책을 읽으며 발동한 굴밥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굴전은 대파, 마늘, 매운 고추를 넉넉히 다져서 달걀 푼 것에 섞고 여기에 밀가루를 조금만 넣은 것에 굴을 담갔다 꺼내 뭉근한 불에 식용유를 두르고 부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생굴에 밀가루를 먼저 묻혀 그 위에 달걀 물을 씌웠는데 여기 굴전이 식감이 훨씬 더 부드럽고 굴 향기가 났다. (69쪽)


생굴을 잘 먹던 아이들이 청소년기부터 익힌 것만 먹는다. 그래서 몇 년째 굴전을 자주하는데, 저자처럼 밀가루를 입힌 후 달걀 물을 입혀 지져내곤 한다. 흐물흐물한 굴에 밀가루를 입히는 것이 유쾌하지 않다. 수분을 많이 품었기 때문에 자칫 밀가루가 뭉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짝 찐 후 밀가루와 달걀 물을 입혀 지져본 적도 있고, 다져서 반죽해 동그랑땡처럼 지져본 적도 있지만 굴전은 역시나 모양 그대로 지지는 것이 탱글탱글한 식감 때문에 가장 맛있다. 이런지라 반갑게 배운 굴전 레시피다.

<시인의 밥상>은 버들치 시인 박남준(1957~)이 음식을 만들고 <지리산 행복학교> 지인들과 나누어 먹는 것을 공지영이 기록한 것이다. 책에는 이처럼 따라해 먹고 싶은 음식들이 많은데, 굴전이나 굴밥, 갈치조림처럼 나도 이미 즐기고 있으나 나와는 전혀 다른 방법의 레시피들이라 여간 솔깃하고 반가운 것이 아니다.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음식들은 25가지 정도. 굴전과 굴밥 외에 조만간 꼭 해먹고 싶은 것은 저자가 시인에게 대접 받은 후 자주 해먹는다는 아삭아삭한 식감이 특별하다는 콩나물국밥. 아마도 올 겨울 많이 해먹을 것 같다. 가지선과 호박찜, 애호박고지나물밥. 그리고 갈치조림과 생감자쉐이크도 꼭 해먹고 싶은 것들. 특히 생감자쉐이크는 묘하게 끌리고 있다.

오래된 나무들을 보아왔지만 600년 된 나무(주: 하동 축지리 문암송(천연기념물 제491호))가 이토록 싱싱한 것은 처음이었다. 버들치 시인은 거기서 시를 하나 낭송했다. 젊은 날 이 나무를 보고 쓴 <아름다운 관계>라는 시였다.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사랑이었지…"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름다운 관계'라는 제목부터 좀 의아했는데 여기서 몸을 뒤트는 것은 소나무가 아니라 바위인 것이다. 더운 내 등으로 찬 소름이 지나갔다. 태고부터 거기 있어온 바위가 잘못 내려앉은 그 어린 소나무를 위해…인 것이다. 어린 소나무가 불굴의 의지로 바위를 뚫은 것이 아니라 늙은 것이 어린 것을 위해 필사의 힘을 다해 생명을 키워내는 이야기로 시인은 이 관계를 읽었던 것이다. 아직도 무언가를 극복하고 뚫고 그런 것에 감탄하고 있던 나에 비해 그는 이미 내어주고 죽어주고 갈라짐을 견디는 바위에 주목했던 것이다. (294쪽)

책이 주는 또 다른 감동들은 음식 사진들은 물론 웃음 머금게 하거나 여운을 품고 있어 오래 보게 하는 사진들이 많다는 것, 음식을 통한 마음 나눔과 삶을 살피게 하는 부분들도 많다는 것이다.

시인의 편지 12편도 실려 있는데, 시를 그리 즐기지 않고 살아 모악산 산방 시인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시인에 대해 알게 되어 좋았다. 책에 실린 시인의 '아름다운 관계'란 시를 좋아하게 되어서 더욱 기억에 오래 남을 책이 될 것 같다.

음식 잘하기로 소문난 시인의 음식인가? 그를 바탕으로 한 음식 소개와 나눔에 대한 책인가? 읽는 동안 시인의 음식 준비와 나눔, 그 속사연이 궁금했다. 누군가와 손수 만든 음식을 나누는 번거로움을 자처하는 이유가 말이다. 아울러 내 밥상을 돌아보게 한 책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 공지영이 이 책을 내게 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남에게 빚지지 말자고 자신의 관 값만 통장에 넣어두고 나머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며 사는 버들치 시인이 어느 날 쓰러졌단다.

한사코 수술을 거부하는 시인에게, 그간 시인의 음식에 매력을 느꼈던 저자가 책을 제안, 책의 계약금과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심장 수술을 하게 됐다는 것. 저자는 책의 이익금 일부는 그 빚을 갚고자 하는 시인에게 갈 것이니 많이 사달라는 후기를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시인의 밥상>(공지영) | 한겨레출판 | 2016-10-27 | 정가 14,000원

시인의 밥상

공지영 지음,
한겨레출판, 2016


#버들치시인(박남준) #공지영 #굴밥(굴전) #시인의 밥상 #한겨레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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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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