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테섬으로 연결된 다리
김종성
#낮과 밤 #여행지'장소'는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의 '시간'은 '계절'보다는 훨씬 좁은 범위다. 그러니까 '햇볕(해가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보다는 '햇빛(해가 비추는 빛)'에 가깝다. 다시 쓰자면, 장소는 햇빛의 '유무(有無)'에 따라 달라진다. 아니, 더욱 엄밀히는 햇빛의 '양(量)'일지 모른다.
여행을 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다보면, 문득 조금 더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장소와 마주하게 된다. 만약 그곳을 찾은 시간대가 '낮'이라면, '이곳의 밤은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다. 자유 여행의 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마카오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Ruins of St. Paul's, 大三巴牌坊)을 만났을 때, 어두워지기 전에 홍콩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던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밤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밤이 오기 전까지 시간이 제법 남았던 탓에 '로버트 호퉁 도서관'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고, MGM을 비롯해 마카오의 최고 산업인 카지노까지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파리에선 '시테섬'이 그랬다. 특히 노트르담 대성당(Notre-Dame de Paris)은 이곳의 밤을 꼭 만나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센 강(Seine River)의 중앙에 있는 시테섬(Île de la Cité)은 파리의 시작이자 중심이고, 더 나아가 프랑스의 중심이라 일컬어진다. 우리로 치면 한강 위의 '여의도'를 떠올리면 된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파리 1구와 4구에 속하고, 바로 옆에는 생루이섬이 위치해 있다. 시테섬에는 법원과 경찰청 등 주요 시설들이 위치해 있는데, 무엇보다 이곳에는 저 유명한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파리를 여행하면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빠뜨린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뿐인가. 시테섬에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생트샤펠 성당(Église Sainte Chapelle)'과 마리 앙투아네트가 갇혀 있던 파리 최초의 형무소 '콩시에르쥬리(Conciergerie)'도 있다. 생트샤펠 성당은 햇빛이 좋은 낮에 그 아름다움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오후'에 꼭 방문해야만 한다. 퐁네프 다리(Pont Neuf)를 비롯해 샤틀레, 레알 지역과 시테섬을 연결하고 있는 로맨틱한 다리들은 시테섬을 더욱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든다. '낮'에도 좋지만, '밤'이 내린 후 펼쳐지는 야경은 가히 압도적이다.
앞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언급하며 시테섬에서 낮과 밤 두 시간대에 모두 머무르고 싶어졌다고 말했지만, 사실 생트샤펠 성당이나 다리에서 바라본 야경(제법 차가운 날씨였지만,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등 그 이유는 훨씬 많다. 시테섬의 다양하고 풍성한 모습들을 모두 감상하기 위해선 오후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일정을 모두 쏟아붓는 게 좋다. 여행을 '패키지'로 뚝딱 해치워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낮의 그곳과 밤의 그곳, 모두 놓쳐선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