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돌림풀이'와 '겹말풀이'를 벗기는가? |
글쓴이는 2016년 6월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라는 작은 한국말사전(국어사전)을 한 권 써냈습니다. 이 작은 한국말사전을 써내려고 다른 한국말사전을 살피는 동안, 한국에서 그동안 나온 사전은 하나같이 돌림풀이와 겹말풀이에 갇혀서 한국말을 제대로 밝히거나 알리는 구실을 거의 못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쓴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는 '한국말을 새롭게 손질한 뜻풀이'만 실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에서는 못 싣거나 못 다룬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내 보려 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고 하는 두 가지 사전(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하고 북녘에서 내놓은 한 가지 사전(조선말대사전)에 실린 뜻풀이를 살피면서, 앞으로 한국말이 새롭게 나아가거나 거듭나야 할 길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
사람들이 잘 모를 만한 낱말을 알기 쉽도록 풀이해서 알리는 몫을 맡는 한국말사전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안다 싶은 낱말이라면 굳이 한국말사전을 살펴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른 생각'입니다. 어른으로 자란 사람은 여러모로 사회살이를 하면서 '사전을 들추지 않아도 어림으로 말느낌을 헤아리'곤 합니다. 말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더라도 어림으로 말느낌을 헤아리지요.
어림으로 헤아릴 뿐, 똑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별다르다'나 "지천으로 널리다"나 "한 측면" 같은 겹말을 쓰면서도 겹말이라고 못 느끼곤 합니다. 말뜻을 또렷이 알면서 찬찬히 짚는다면 말살림을 북돋우는 길로 가지만, 말뜻을 모르는 채 말느낌만 어렴풋이 헤아릴 적에는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쓰는 길로 가는구나 싶어요.
(표준국어대사전)
생소하다(生疏-) : 1. 어떤 대상이 친숙하지 못하고 낯이 설다 2. 익숙하지 못하고 서투르다
낯설다 : 1.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하다 2.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하다
친숙하다(親熟-) : 친하여 익숙하고 허물이 없다
익숙하다 : 어떤 일을 여러 번 하여 서투르지 않은 상태에 있다
서투르다 : 1. 일 따위에 익숙하지 못하여 다루기에 설다 2. 전에 만난 적이 없어 어색하다 3. 생각이나 감정 따위가 어색하고 서먹서먹하다. 4. 앞뒤를 재어 보는 세심함이 없이 섣부르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생소하다(生疏-) : 1. 처음 보거나 듣는 것이어서 익숙하지 않다 2. 처음 하는 것이라 서투르다
낯설다 : 눈에 익숙하지 않다
친숙하다(親熟-) : 친하여 익숙하다
익숙하다 : 1. 서투르지 않고 능숙하다 2. 자주 대하거나 겪어 잘 아는 상태에 있다
서투르다 : 1. 익숙하거나 능숙하지 못하다 2. 어색하고 서먹하다 3. 앞뒤를 재지 못하고 섣부르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생소하다(生疏-) : 1. 친숙하지 못하여 낯이 설다 2. 익숙하지 못하여 서툴다
낯설다 : x
친숙하다(親熟-) : 친하고 허물없다
익숙하다 : 1. 여러번 겪거나 손에 익어서 솜씨가 매우 능란하다, 또는 몹시 숙련되여 능숙하다 2. 자주 보거나 들어서 눈에 환하거나 매우 낯익다 3. 서로 사귀는 사이가 가까와 친숙하다
서투르다 : 1. 아직 익숙하지 못하여 다루기에 설다 2. 생각이나 감정 같은것이 어색하고 서먹하다 3. 앞뒤를 재여 잘 짜고들지 않고 서뿔리
낯선 낱말을 알아보려고 한국말사전을 뒤적일 수 있어요. 그러나 낯선 낱말뿐 아니라 익숙하다고 여기는 낱말도 알아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그래야 말을 제대로 알면서 슬기롭게 쓸 수 있거든요.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생소하다'라는 한자말을 "낯이 설다"하고 '익숙하다'하고 '서툴다(서투르다)' 같은 낱말을 써서 풀이합니다. 그러면 "낯이 설다"나 '익숙하다'는 무엇일까요? <표준국어대사전>은 '생소하다'를 '친숙하다'라는 한자말까지 써서 풀이하는데, '친숙하다'는 '익숙하다'라는 낱말로 풀이하지요. 한국말사전마다 돌림풀이에다가 겹말풀이 얼거리입니다.
더 살피면, 여러 한국말사전은 '익숙하다 → 서투르지 않다'로 풀이하고, '서투르다 → 익숙하지 못하다'로 풀이하기까지 합니다. 한국말사전을 엮은 이들 스스로 못 느끼거나 못 알아챘기에 이런 돌림풀이가 불거질 텐데, 여느 사람들도 저마다 익숙하다고 여기는 쉬운 낱말을 안 찾아보기 때문에 이처럼 얄궂은 돌림풀이를 못 느끼면서 못 나무라는구나 싶습니다.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생소하다(生疏-) : 1. → 낯설다 2. → 서투르다
낯설다 : 1. 지난날에는 거의 못 보거나 못 들었다 2. 처음 보거나 자주 못 보거나 마음에 남지 않아 잘 모르다(익숙하지 않다)
친숙하다(親熟-) : → 익숙하다
익숙하다 : 1. 여러 번 해 보아서 꽤 할 줄 알다(솜씨가 있다) 2. 여러 번 보거나 이야기를 들어서 잘 알다(눈에 선하거나 환하다) 3.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자주 보거나 어떤 일을 자주 겪어서 잘 알다 4. 어둡거나 밝은 곳에 눈을 잘 맞추어 웬만큼 볼 수 있다 5. 늘 사귀어 사이가 가깝다
서투르다 : 1. 일을 얼마 해 보지 못해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다 2. 얼마 만나지 못해서 반갑게 여기기 어렵다(서먹서먹하다, 자연스럽지 않다) 3. 앞뒤를 재지 못학고 함부로 나서다(꼼꼼하지 못하다)
한국 사회는 똑같은 모습이나 몸짓이나 일을 두고 '한국말하고 한자말을 섞어서' 쓰곤 합니다. 여느 사람들은 예부터 수수한 한국말을 썼고, 집권자와 지식인은 한자말(중국 한문)을 썼기 때문입니다. 남북녘이 새롭게 엮을 한국말사전은 한국말하고 한자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뜻풀이는 어떻게 추슬러야 할까요? 한자말은 한국말로 풀이해 주고, 한국말은 이래저래 빙글빙글 맴도는 뜻풀이를 붙이면 될까요?
'생소하다·친숙하다' 같은 한자말에는 굳이 뜻풀이를 안 붙여도 되리라 봅니다. '낯설다'나 '서툴다'나 '익숙하다'를 찾아보도록 이끌면서, 한국말을 또렷하게 제대로 다루면 좋으리라 봅니다. 이러면서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제대로 풀이하는 일에 마음을 깊이 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돌림풀이가 되지 않도록 '익숙하다'하고 '서툴다(서투르다)'하고 '낯설다'를 올바로 가누어야지 싶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편하다(便-) : 1. 몸이나 마음이 거북하거나 괴롭지 아니하여 좋다 2. 쉽고 편리하다
편리하다(便利-) : 편하고 이로우며 이용하기 쉽다
쉽다 : 1. 하기가 까다롭거나 힘들지 않다 2. 예사롭거나 흔하다 3. 가능성이 많다
좋다 : 1.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 만하다 3. 말씨나 태도 따위가 상대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아니할 만큼 부드럽다 10. 어떤 일이나 대상이 마음에 들 만큼 흡족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편하다(便-) : 1. 거북하거나 괴롭지 아니하여 좋다 2. 힘이 들거나 어렵지 않아 편리하다
편리하다(便利-) : 편하고 이로우며 이용하기 쉽다
쉽다 : 행해지는 데 그다지 많은 수고나 노력이 필요치 않다
좋다 : 1. 성질이나 내용이 보통 이상이거나 우수하다 3. 잘 어울리거나 알맞다 6. 기쁘고 즐거워서 상쾌하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편하다(便-) : 1. 몸이 아프거나 피로하지 않다 2. 일을 하거나 활동하는데 힘들거나 복잡하고 까다롭거나 거치장스러움이 없이 헐하다 3. 마음이 불안하거나 걱정스럽거나 괴로운데가 없다
편리하다(便利-) : 편하고 리용하기 좋다
쉽다 : 1. 힘이나 품이 적게 들다 2. 흔하거나 례사롭다 3. 그러한 가능성이 적지 않다
좋다 : 1. 마음에 들어 흐뭇하고 만족스럽다 6. 마음이 거뜬하고 흐뭇하게 기쁘고 즐겁다 7. 조건에 맞아 고갠찮거나 알맞다
이제 사회는 온갖 기계가 많고 누리그물이 발돋움해서 매우 손쉽게 여러 가지 일을 보거나 살필 수 있습니다. '손쉽게' 또는 '쉽게' 또는 '수월하게' 또는 '좋게'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어요. 이러한 느낌이나 뜻은 '편하다·편리하다' 같은 한자말로 나타내기도 하지요. 그런데 남녘에서 나오는 두 가지 사전은 '편하다'를 '편리하다'라는 낱말을 써서 풀이하고, '편리하다'는 '편하다'라는 낱말을 써서 풀이합니다. 이러면 참 알쏭달쏭한 노릇이에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편하다(便-) : 1. → 좋다 2. → 쉽다
편리하다(便利-) : → 쉽다
쉽다 : 1. 힘을 적게 들여도 다루거나 할 수 있다 2. 앞으로 자주 일어나거나 이루어질 수 있다 3. 자주 하거나 만나거나 듣거나 보다 4. 뜻·줄거리·이야기를 누구나 바로 알아들을 수 있다 5. 삶이 빨리도 흐른다고 할 때에 쓰는 말
좋다 : 1. 나무라거나 아쉬울 만한 곳이 없도록 마음에 들다(훌륭해서 흐뭇하다) 2. 마음이나 느낌이 기쁘면서 넉넉하다(흐뭇하다) 10. 어떤 일을 하기에 힘이 적게 들다(낫다·알맞다)
말풀이를 곰곰이 살피고 말느낌을 찬찬히 돌아보면, '편하다'는 '쉽다'를 가리키지 싶습니다. 때로는 '좋다'를 가리키고요. 그러면 한국말사전 뜻풀이에서도 이 대목을 더 읽고 살펴서 '좋다'나 '쉽다'라는 낱말을 찾아보도록 이끌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모든 한자말을 다 풀이해야 할 까닭이 없다고 할까요. 우리가 한국말을 알맞게 쓰고 슬기롭게 쓰도록 이끄는 길을 한국말사전이 밝혀 주면 된다고 할까요. 한국말을 알맞게 쓰는 길을 제대로 못 밝히는 한국말사전인 탓에 한자말을 애써 풀이하는 자리에서도 서로 돌림풀이가 되기 일쑤입니다. 이러면서 한국말은 한국말대로 너무 엉성하거나 서툴거나 어리숙하게 다루고 말아요.
곰곰이 따지면 "쉽고 편하게"나 "편하고 쉽게"처럼 쓰면 겹말이에요. 뜻이나 결이나 느낌이 맞물리거든요. 한국말사전은 한국말을 쓰는 사람 누구나 알맞고 바르면서 즐겁게 생각을 북돋우도록 이끄는 몫을 맡아야지 싶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정(表情) : 마음속에 품은 감정이나 정서 따위의 심리 상태가 겉으로 드러남
얼굴 : 4. 어떤 심리 상태가 나타난 형색(形色)
얼굴빛 :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이나 빛깔
낯빛 : 얼굴의 빛깔이나 기색
형색(形色) : 2. 얼굴빛이나 표정
기색(氣色) : 1. 마음의 작용으로 얼굴에 드러나는 빛
(고려대한국어대사전)
표정(表情) : 얼굴에 드러나는 여러 가지 마음속의 심리와 감정의 모습
얼굴 : 2. 어떤 심리 상태가 나타난 표정
얼굴빛 : 1. 감정이나 느낌 따위가 내비치는 얼굴 표정
낯빛 : 얼굴의 빛깔이나 기색
형색(形色) : 2. 얼굴빛이나 표정 따위에서 나타나는 특성
기색(氣色) : 1. 어떤 마음의 작용으로 드러나는 얼굴빛
(북녘 조선말대사전)
표정(表情) :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이나 정서 등의 심리상태
얼굴 : 5. 어떤 사물현상의 드러내고있는 겉모양이나 모습을 비겨 이르는 말 6. 진면모를 알수 있게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태나 표징을 비겨 이르는 말
얼굴빛 : 1. = 얼굴색 2.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이나 기분
낯빛 : = 낯색
낯색(-色) : 1. 낯의 색갈 2. 낯에 나타나는 감정이나 기분
형색(形色) : 2. 얼굴의 생김새와 빛갈
기색(氣色) : 1. 어떤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얼굴빛
겉으로 드러나는 마음을 한자말 '표정'으로 가리키기도 합니다. 한국말로는 이러한 뜻을 '얼굴'이나 '얼굴빛·낯빛'으로 가리켜요. 그러니 "얼굴은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처럼 쓰면 겹말입니다. 이런 겹말을 퍽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얼굴'이나 '표정' 가운데 한 낱말만 골라서 써야 할 텐데, 좀처럼 한국말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맙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펴보면 '얼굴'을 풀이하며 '형색'이라는 한자말을 쓰고, '낯빛'을 풀이하며 '기색'이라는 한자말을 써요. '형색 = 얼굴빛이나 표정'으로 풀이하고, '기색 = 얼굴에 드러나는 빛'으로 풀이해요. 곧 '형색 = 표정이나 표정/얼굴빛이나 얼굴빛'으로 풀이한 꼴이요, '기색 = 얼굴빛'으로 풀이한 꼴이니, 여러모로 돌림풀이나 겹말풀이가 됩니다.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표정(表情) : → 낯빛·얼굴빛
얼굴 : 3. 남을 마주할 만한 몸짓이나 남이 말하는 됨됨이 4. 마음이나 느낌이나 생각이 겉으로 나타난 모습
얼굴빛 : 마음이나 느낌이나 생각이 얼굴로 나타난 모습
낯빛 : 마음이나 느낌이나 생각이 낯으로 나타난 모습
형색(形色) : 2. = 얼굴빛
기색(氣色) : 1. = 얼굴빛
한국말을 즐겁게 쓰는 기쁜 얼굴이 되기를 빕니다. 아이와 어른이 다 같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가꾸는 아름다운 낯빛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한국말사전은 '한국말'사전일 뿐, '한자말'사전이 아니라는 대목을 잘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한자말 가운데 한국말로도 받아들인 낱말이 있을 뿐, 모든 한자말을 한국말사전에 억지스레 담을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알맞게 잘 쓰는 한국말을 한국말사전에 담고, 새롭게 지어서 쓰는 한국말을 한국말사전에 실어야지 싶습니다. 한자말은 따로 한자말사전을 새로 엮어서 담으면 될 일이라고 느낍니다. 영어사전이나 일본말사전에 있으면 되는 낱말을 한국말사전에 구태여 옮겨서 담을 까닭이 없다는 대목을 생각해야지요. 한국말이 아름답고 넉넉한 그릇에 푸지게 깃들어 기쁘게 노래하는 살림터를 이룰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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