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방에 설치한 작은 트리와 산타 양말산타 할아버지에게 적은 편지를 양말에 넣어두었다. 성탄절 아침, 양말은 아이들의 선물로 채워질 것이다. 당연히 산타할아버지의 소행이다.
이정혁
내 안의 두 가지 목소리에는 나름의 타당한 근거들이 존재한다. 먼저 산타의 허상을 알려줄 때가 됐다는 입장. 성격 형성 단계의 아이들이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지는 걸 미리 방지하고자 함이다. 언제까지 순수한 영혼으로 세상을 살 것인가. 산타를 믿고, 파랑새를 믿고, 무지개 끝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을 믿기에 세상은 너무 탁하다. 산타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은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지 못한다.
더구나 여전히 산타의 존재를 믿는 우리 집 아이들이 친구들과의 논쟁 끝에 상처를 받거나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성탄절 아침 마다 "어머, 산타할아버지가 밤새 다녀가셨네"라면서 어설픈 연기를 했던 부모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비뚤어질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는 거짓말쟁이!"라고 외치며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는 아이를 상상해 보라. 아이가 진실을 알기 전에 이실직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반면, 산타에 대한 동심을 지켜줄 필요가 있다는 반론도 일리가 있다. 크리스마스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 우리 집에는 굴뚝이 없어서 산타가 그냥 지나칠지 모른다는 작은 아이와 선물 주러 오는 동안 썰매는 어디에 주차해야 할지 고민하는 큰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간은 인생에서 길지 않다. '요즘은 보일러실 창문으로 들어오시고, 크리스마스에는 경비아저씨가 불법주차 스티커를 안 붙이신대'라고 아이들을 달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산타가 허구였음을 알게 되면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를 접을 지도 모른다. 유치원에 다녀간 산타는 등록금 마련하려고 나온 대학생 형이었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나는 루돌프 썰매가 컴퓨터그래픽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부터 아이들을 기다리는 건 퍽퍽한 삶 뿐이다. 루돌프 사슴의 반짝이는 코보다 녹용이 더 귀한 값을 쳐준다는 걸 알아챈 아이들의 인생은 생각만 해도 씁쓸하다.
며칠간 치열하게 고민했다. 산타의 비밀을 누설할 것인가? 아니면 지켜줄 것인가? 우주의 비밀을 풀 열쇠 하나를 가지고 하루 종일 열쇠구멍에 넣다 빼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와중에 내 어린 시절의 산타가 떠올랐다.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의 성탄절로 또렷이 기억한다. 살림살이 뻔히 알면서 요즘 아이들처럼 장난감 사달라고 졸라댈 정도로 분별력이 없진 않았다. 산타할아버지께 장문의 편지를 썼다(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다섯 살에 한글을 깨쳤다).
결국 나의 선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