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 가는 길에서 만난 길거리 퍼포먼스
길동무
돌아보니 길동무 여행에는 그때마다 드러난 말이 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갔을 때는 "썹써바이"였다. 이 말은 캄보디아어로 '안녕하세요.'다. 일반적으로 많이 쓴다는 이 말이 귀에 들린 순간 길동무 누군가의 순발력이 발휘되었다.
"섭섭하이!"뭐가 섭섭하다는 것이지? 참 난데없는 해석이었다. 그때부터 '섭섭하이'는 '안녕하세요'가 필요할 때나 아쉬운 일이 생겼을 때, 또 분위기 반전이 필요할 때 시도 때도 없이 등장했다. 캄보디아 여행 때뿐만 아니다. 지금까지도 정기 만남 때면 때에 따라 '섭섭하이'가 등장한다. 잊을만하면 누군가로부터 들춰지면서 윤활유 역할을 한다.
길동무가 아프리카 4개국 여행을 갔을 때 주도했던 말은 "오빠는 강남스타일"이었다. 가수 싸이의 독특한 춤과 함께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노래 제목, 이 역시 요소요소 매우 흥겹게 쓰였다. 노래와 어우러진 '말 춤' 또한 여행 중 몇 번이나 등장했었다. 영국 일주 여행을 할 때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였다. 그리고 이 말 또한 그 이후에도 변함없이 상황에 따라 등장한다. 이처럼 길동무 여행 상황에 따라 생겨난 이 말들은 길동무 여행 신조 "우리가 언제 또 여기를 온다고~"와 함께 참 유용한 조미료다.
고야,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이 루시엔테스(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1746~1828)란 긴 이름의 스페인 화가, 나는 마드리드 여행기를 시작하면서 '고야'라는 두 글자를 쓴 그 후 며칠을 옴짝달싹 못 했다. 고야 삼매에 갇혔다. 그의 일대기를 읽다가 그를 그린 영화 <고야의 유령(Goya's Ghosts. 2006)>을 보았다. 머리를 싸매고 그를 생각하다가 안주 없는 술을 그와 대작하기도 했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고야의 생각이다. 그렇다. 사람에겐 이성이 필요하다. 특히 작금과 같은 시대 상황에서는 괴물이 나타나지 않도록 자기의 이성을 잠재우지 말아야 한다. 훌륭한 예술가는 참 많다. 내가 존경하는 예술가도 부지기수다. 그중에서도 고야는 단연 품격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았다. 그의 품격은 그의 삶과 작품이 온전히 증명한다. 그는 조국 스페인과 스페인 민중을 위해 자신을 불태웠다. 스페인 최고의 화가이니 문화 영웅이니 하는 따위의 찬사로 그를 대변하기에는 한참 부족할 정도다.
"고야는 미래를 위해 불합리와 무분별한 폭력에 끝까지 대항하며 현대의 삶과 정치를 바꾸어 놓았다." <뉴욕 타임즈> 예술 평론가 마이클 키멜만의 말이다. 세상은 늘 혼돈이고 늘 불확실하다. 고야는 그 혼돈과 불확실을 탐구하여 창작의 소재로 삼았다. 그래서 "시대와 민족의식을 깊이 탐구한 '전무후무한 진정한 예술가'"라는 평가가 너무 잘 어울린다.
고야의 전기를 쓴 로버트 휴는 "고야는 처음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 화가이다. 그리고 축제의 기쁨 또한 훌륭히 그려냈다"고 밝힌다. 그렇다. 고야에 대한 대표적인 평가 한 마디는 '낭만주의 작가'다. 그는 작은 오렌지, 담배 한 모금, 와인의 뒷맛, 촉촉이 젖은 실크, 아무 무늬 없는 면, 여름밤 축제의 분위기, 밤하늘의 어스레함 등 관능적인 것을 사랑했다.
고야는 일생 인물을 그렸다. 그가 남긴 작품 대부분이 인물화일 정도다. 그는 인물화를 그릴 때 그 인물이 지닌 내면적 특성을 통찰하여 그림으로 드러내는 데 천재적이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들을 살피면 후기로 갈수록 간결하면서도 상황이 인물의 얼굴에 강렬하게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자는 그가 악마적 분위기에 빠져든 결과라고 하는데, 전쟁과 사회 악습에 대한 고야의 깨우침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고야는 그의 작품을 통해 생명력 없는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기보다 살아 숨쉬는 정치적·사회적·종교적 악습을 비판했다. 한편으론 명예를 추구하고 세속적 성공을 향해 돌진한 적도 있다. 그러나 언제라도 세속의 명예와 성공에 이성을 잃거나 이성이 잠들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자신이 몸담았던 상류사회나 자신을 후원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옳지 않은 것에 관해 그의 기록은 항상 냉철하고 신랄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파리의 루부르, 상트페테스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드리드 여행객들에게 프라도 미술관은 빠트릴 수 없는 곳이다. 길동무 이번 여행에도 프라도 미술관 탐방은 마드리드 여행의 핵심이었다.
프라도 미술관의 자랑은 3천 개 이상의 회화 작품을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규모다. 그리고 디에고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루벤스, 라파엘, 알브레이트 뒤러, 렘브란트 등 불멸의 화가들의 뛰어난 작품들이다. 과연 놀라운 곳이었다. 그리고 거기 고야가 있었다. 이전에 내가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새로운 고야가 거기 있었다. '새로운 발견'이란 바로 이런 것일 터였다.
고야는 1799년에 그가 바라던 수석 궁정화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권위를 누리기 위해 궁정화가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은 무능하고 부패했던 궁중을 비판하고, 타락한 왕실의 모습을 풍자한 그의 작품들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는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략 직전 청력을 잃었다. 신체적으로 불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으로 승화였다. 그로부터 그의 작품은 주제의식이 더욱 분명해졌고,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깊이를 탐구하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