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헨로에 4,000종의 유기농 로컬푸드를 직판하는 호헨로에 지역농민시장
정기석
독일 남부 바덴-뷔템베르크주의 슈베비쉬 할(schwabisch Hal|) 농민 생산자조합(bäueriche erzeuger gemeinschft)의 성공사는 가히 신화적이다. 슈베비쉬 할(Schwäbisch Hall) 지역은 인구 3만6천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목가적 도시이나, 농민생산자조합 본부가 자리잡은 볼퍼츠 하우젠(bolpertshausen)마을 때문에 전국적인 농업의 명소가 됐다. 부설 호헨로에 지역농민시장(hohenlohe regional markt)도 유기농 직판장으로 명성이 드높다.
애초 조합의 설립 목적 자체부터 농업의 규모화나 기업화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지속가능한 농업이었다. 1980년대 초반, 멸종 위기의 재래종 돼지였던 '슈베비쉬 할리쉬종' 지역특산 돼지를 되살리자는 데 몇 명의 농부들이 뜻을 모았다. 비계가 두꺼운 특성을 가진 그 돼지를 상인들이 사가지 않자 고민하던 농민들이 자구책으로 직접 직판을 시작한 것이다.
이어 1986년 '돼지육종협회'를 본격 설립했다. 당시 불과 8명의 조합원이 모였을 뿐이다. 1988년에는 마침내 농민조합으로 발전했다. 이후 조합의 성공신화를 쓰기 시작한다. 2000년에 조합도축장 자체 설립하고 2007년에는 호헨로에 지역농민시장을 개장했다.
특히 2011년 소시지 공장을 설립한 건 조합의 성장사에 중요한 전기를 제공한다. 이때 설립 자금 6백만 유로 가운데 100만 유로를 정부에서 지원받은 게 성장의 탄력을 얻는 데 큰 힘이 됐다. 이를 계기로 지역 뿐 아니라 독일 전역을 대상으로 농식품을 판매하게 되면서 안정경영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30년 넘게 줄기차게 양적, 질적 성장을 거듭한 조합은 2014년말 현재 1450명 생산자 조합원의 규모로 성장했다. 연간 매출은 1억200만 유로(약 1285억4346만 원)에 달한다. 조합원 가운데 35%는 유기농가이다. 조합에 기업농은 가입할 수 없고 오직 가족농 생산자만 가입이 가능하다. 가입하려는 생산자들이 줄을 잇지만 조합 가입요건이 A4지 10장 정도일 정도로 문턱이 높다. 아무나 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되살아난 슈베비쉬 할리쉬 돼지가 지역사회를 살려 협동조합의 7원칙에 나와있는대로 협동조합답게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지역에 기여하려는 사업철학과 전략도 확고하다. EU의 지리적 원산지 증명을 받은 지역특산 '슈베비쉬 할리쉬' 전통품종을 되살리면서 지역 전체의 경기도 살아났다. 조합은 호헨로에와 슈베비쉬 할 두 지역 관공서는 물론 농민조합과 지역관광업체가 상호 협력, 지역관광산업을 촉진하는 역할까지 감당하고 있다. 지역고용 창출 효과는 물론이다.
무엇보다 생산자조합 본연의 역할을 철저히 명심하고 실천하고 있다. 조합원인 농민들의 협력과 공생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사고하고 행동한다. 농촌과 지역의 고유 문화, 전통, 미풍양속도 유지하려 노력한다. 유기 순환농업을 통해 생태적 다양성을 보전하는 것은 물론이다. 사회적 공동체로서 청년들의 미래가 열리는 희망찬 농촌공간을 확보하는 데도 앞장 선다.
또 슈베비쉬 할 농민생산자조합은 조합과 별도로 주식회사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공장의 운영주체인 주식회사를 따로 설립, 생산자조합에서 고기를 수매해 세금문제 등을 원활히 해결하고 있다. 자체 도축장(schlachhof), 소시지 가공장, 농민시장 등 1차 생산에서 2차 가공, 3차 직거래 유통에 이르는 이른바 6차산업화 과정을 내부 계열화하는 것도 효과적인 사업수행 전략으로 삼고 있다. 명분이나 원칙에만 매달리지 않는 사업전략도 유연하고 합리적인 것이다.
특히 2007년에 개장한 호헨로에 로컬푸드 지역농민시장의 성과는 두드러진다. 총면적 950㎡의 농민시장에서는 4000여 종류의 로컬푸드를 직거래 판매하고 있다. 인근 생태마을 볼퍼츠 하우젠(bolpertshausen)의 축산농가들이 생산하는 바이오가스 열병합 발전기의 열, 지열 등을 활용해 건물을 난방하고 있다. 로컬푸드 레스토랑, 허브가든, 빵가게, 지역여행사, 어린이 놀이터, 태양광발전소 등 복합시설도 함께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