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00일을 애도하며-
검은 안개가 서해바다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 우리 배는 출항한데 밤안개가 유령처럼 세월호를 끌고 있나 봐
엄마, 꽝소리가 났어 배가 이 큰 배가 한 바퀴 빙 돌았어, 미쳤나봐 배가 기울고 있어
그런데, 엄마! 가만히 있으래,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해 엄마! 선장이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되겠지? 그럼 경찰이 와서 구해주려나 봐 엄마 걱정마 엄마아빠가 얼마나 세금을 잘 냈는데 경찰이 와서 구해줄 거야
그런데, 엄마! 배가 계속 기울고 있어 49도, 50도, 51도... 해경 123정이 왔어 헬기 소리도 들려 옆에 둘라에이스호도 왔어 우리가 탈출만 하면 구해준대 그런데 둘라에이스호가 그냥 돌아가네 아마 경찰이 구해주려고 그러나 봐
그런데, 엄마! 해경 123정은 우리 곁을 빙빙 돌기만 해 엄마, '선내 대기하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또 방송이 나와 배는 점점 더 기우는데 61도, 62도, 63도... 그래도 기다리면 엄마 곧 만날 수 있겠지 진도의 어부들도 고기잡이를 중단하고 우리 곁으로 달려 왔어 엄마 안심시키려고 거짓말하는 것 아니야 정말이야 유리 한 장 밖에 갈매기 나는 것도 보이고, 경찰도 보이는 걸 차마 그 유리 한 장 못 걷어낼까봐
벌써 뉴스에도 나왔다니까 대통령도 우릴 구하려 애쓰고 있겠지 다른 건 몰라도 약속은 잘 지킨다는 대통령이잖아 우리의 대통령이고 우리의 선장이잖아 아빠, 엄마! 만일 말이야 승객을 버리는 선장이라면 그 선장 잡아다가 동물원에나 가둬버려야 해 쇠창살 박힌 유리동물원 안에 갇혀서 손톱으로 유리창 박박 긁다가 죽어가는 고통을 알 때까지
엄마, 그런데 말이야 엄마 걱정할까봐, 이말 안 하려고 했는데 물이 차올라, 서서히 물이 차올라 발목 위로, 무릎 위로, 배꼽 위로
강아지를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겠다는 다인이도 여기 있고 아이들이 좋아 교사가 되겠다는 아혜도 여기 있는데 아, 물이 차올라 가슴 위까지 모가지까지....
엄마, 나 춥지 않아 엄마가 사준 빨간 스웨터를 입고 있고 그리고, 동생이 사준 노란 양말도 신고 있는 걸 구명조끼는 알바하는 승무원 지영이 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가 자기는 승무원이니까 괜찮다고 자기는 마지막에 나갈 거라고 자기것 벗어서 입혀 줬어
엄마, 4월 16일, 10시 12분이야 배가 너무 기울었어. 90도, 95도 엄마 물이 턱까지 차올랐어 엄마 이게 마지막 통화가 될지도 몰라 그런데, 왜 이렇게 엄마가 보고 싶지? 엄마, 진짜 보고 싶네 엄마, 그동안 엄마한테 잘못한 것 다 용서해줘 아빠 일하러 나가셔서 인사도 못 하고 왔는데 어떻게 해 동생한테도 선물 사다주겠다는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다고 꼭 전해줘야 해 보고 싶다고, 용서해주라고
엄마 내가 진도 어느 섬의 나지막한 언덕에 꽃이 되어서 내가 어두운 그믐날 하늘 한 귀퉁이에 별이 되어서 나의 이 향기 나의 이 빛깔로 늘 엄마 곁에 있을 거야 늘 엄마 곁에서 엄마 지켜줄게
엄마, 그런데 말이지 다시 우리 만날 때 나에게 꼭 알려줄 게 있어 왜 안개 속으로 세월호를 밀어 넣었는지? 왜 가만있으라고 했는지? 왜 배는 급선회를 했는지? 왜 우릴 탈출하지 못하게 했는지? 왜 진상규명은 안하려고 하는지?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엄마, 엄마가 흘리는 눈물 대신 그것을 꼭 알려줘야 해 아니면 그것을 내 묘비명에 새겨 줘도 좋아, 잊지 않게 그리고 내가 탔던 세월호 인양해서 마지막 친구까지 모두 구했다는 소식도 꼭 전해줘야 해
엄마, 그만 울어! 내가 어느 섬의 나지막한 언덕에 꽃이 되어서 내가 하늘 한 귀퉁이에 별이 되어서 나의 이 향기, 나의 이 빛깔로 늘 엄마 곁에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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