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에 마련된 고 신영복 교수 빈소지난해 1월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에 마련된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빈소. 신 교수는 지난 2014년 피부암 진단을 받아 투병중, 암이 다른 장기로 급속히 전이되면서 병세가 악화되었다.
성공회대 제공
시간은 매정하게 흐른다. 아니다. 시간이 매정할 리 있겠는가. 매정한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차가운 바다 밑으로 삼백 명의 목숨이 가라앉은 게 벌써 천 일도 넘었지만 정말 매정했던 것은 '천 일'이라는 물리적 시간의 격차가 아니라 그 동안을 속절없이 흘려보낸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시간이 매정하게 흘렀다"는 말은 그 동안을 별안간 발견하고만 자의 부끄러움이나 자책감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1월 15일, 우리 곁을 떠나가신 신영복 선생님의 타계 소식도 그러한 마음으로 다시 마주치게 된다. 벌써 1년이 지났다.
내가 스물일곱의 나이로 다시 들어갔던 대학의 1학년 1학기, 전공필수 과목이자 선생님께서 담당하셨던 '사회과학입문' 수업시간은 매주 수요일 아침에 있었다. 매번 강의내용을 나는 당돌하게도 선생님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다가 "강의실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하기도 했지.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이야기인데요, 감방 안에서는 아무래도 좁은 공간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다보니 싸움 같은 것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한 번은 어촌에서 살다 온 사람이 해는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진다고 말한 일이 있었어요. 그러자 산에 살다 온 사람이 무슨 소리냐, 해는 산에서 떠서 산으로 진다고 대꾸를 해요. 그럼 도시에 살다 온 사람은 뭐라고 말하겠어요?"
동기들 몇몇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빌딩에서 떠서 빌딩으로 진다고요..."
"맞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해가 빌딩에서 떠서 빌딩으로 진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참 어리석지요. 여러분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해가 어디서 뜨는 게 아니라 해는 본래 가만히 있는 것이고 지구가 그 해를 도는 것이라고요. 정답이죠. 맞는 말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학교에서 배웠죠. 적어도 어촌 사람은 해를 바다에서 보고 하는 얘길 테고, 산에서 온 사람은 해를 산에서 보고 하는 얘기일 것이며, 도시 사람은 틀림없이 빌딩숲 속에서 해를 본 것입니다. 그럼, 그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여러분은 지금 해를 어디서 보고 있는 거죠?"
순간 강의실은 조용해졌다. 선생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바닷가든 산속이든 빌딩숲이든 그렇게 말한 사람들은 모두 어쨌든 자기가 선 자리가 있는 거지요. 그런데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럼 우주 공간에 서 있나요? (학생들 웃음) 그건 자기 입장이 없는 겁니다. '입장(立場)'이란 '서 있는 자리'니까요. 본질적으로 객관적인 입장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걸 '관객적인 입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관객이란 구경꾼이지요. 나는 '중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든가, 나는 '객관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싶다'든가 하는 말은 나는 '개입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이며, 나는 '구경만 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입장이 없으면 인식은 있을 수 없으며, 인식이 없으면 실천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객관이란 관객입니다. 방관입니다. 소외된 입장입니다. 비주체인 것입니다."
무참한 나라에서 '구경꾼'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하겠다고 입학한 스무 살 아이들에게 '사회과학입문' 수업의 첫머리에서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꼭 '사회과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가지 않은 한 누구나 크고 작은 '사회과학'을 접할 수밖에 없고, 여러 방식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으며, 무엇이든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처음부터, 정답이나 객관이란 존재할 수 없다며 너는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고, 너는 무엇을 선택했느냐고 물으셨다.
애써 돌아볼 필요도 없이, 지난해에서 올해의 벽두로 이어지던 이 나라는 얼마나 무참하고도 비루했던가. 아이들이 죽어가던 그 시간 동안에, 과연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으며 구해야만 했던 이들이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명확히 밝혀진 적이 없는 땅에서 다시 무정하게 새 해는 밝아왔고 우리 모두는 다시금 자기 코앞의 일들을 어떻게든 처리하거나 치우며 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대체 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 대체 여기는 어떻게 또 '구경꾼의 자리'가 아닐 수 있는가.
며칠 전, 모교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선생님께서 타계하신 지 1주기가 되는 날에 열리는 추모행사에서 졸업생 대표로 추도사를 해줄 수 있느냐는 전화였다. 나는 전혀 자격이 없는 사람이며 더 훌륭한 동문들도 많지 않느냐고 답했어야 했는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덜컥, 맡아버렸다.
그 어떤 말과 글로도 1년 전, 선생님의 부고를 접했던 날의 상실감과 슬픔을 담아낼 길은 없고, 그 어떤 추도사를 통해서도 지난 1년 동안의 무심함과 불한당 세월을 변명할 수는 없다. 다만, 주제를 모르고 담당한 추도사를 곤란해 하며 작성하다가 겨우 매만진 것들이 있다. 미흡한 추도사를 이처럼 뻔뻔하게도 건네 본다. 세월이 아니라 사람이 매정하다. 선생님은 가셨고 시간은 흘렀고 우리들만 이렇게 남아있다. 그런 우리들끼리의 소통을 위해 말을 건다.
이어지는 글은 추도사의 원고다. 정작 추도사를 할 때는 원고를 든 채 읽지 않을 작정이므로 아래의 이야기, 그대로 행사장 스피커를 울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원고를 여기에 남겨본다. 이 죄스러운 마음의 이야기도 원고 전문을 포개서 이렇게 마감해본다.
선생님께서 내려놓으신 등짐, 우리가 우직하게 짊어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