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조재현
3대 동맹을 바탕으로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던 보수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이했다. 보수가 자랑하던 경제관리 능력에서 치명적 약점이 드러난 것이다. 그 결과 정권을 내주어야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보수는 야인 생활을 해야 했다. 보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했다. 보수 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경제적 무능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문제는 대안이었다. 바로 그때 이명박이 급속히 부각되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추진한 청계천 복원공사와 대중교통 혁신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보수 세력은 이명박의 두 가지 사업 성공을 통해 과거 박정희 시대를 관통했던 높은 효율성을 발견했다. 보수 세력은 이명박이 바로 그 효율성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를 되살릴 것이라고 믿었다. 보수는 이명박을 선택했다. 경제 회생을 바라는 많은 국민들이 여기에 가세했다. 이명박은 200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이명박은 보수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잘못 해석했다. 이명박은 청계천 복원공사 성공에 대한 보수의 지지를 과거 1970년대식 개발주의에 대한 지지로 착각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청계천 공사의 전국판이라고 할 한반도 대운하였다. 이명박은 한반도 대운하가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자 4대강 살리기로 슬쩍 우회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전면적인 혁신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할 중대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를 주도해야 할 정부는 4대강에서 삽질만 하느라 시간을 다 허비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 회생에서 완전 실패했다. 보수는 실망하지 않고 히든카드를 꺼내 들었다. 박정희 딸 박근혜였다. 보수는 박근혜를 통해 박정희 시대의 정신으로 경제를 되살릴 것이라 기대했다. 박근혜는 경제 회생의 비책으로 창조경제를 앞세웠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조차 창조경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박근혜 정부가 방향을 못 잡고 헤매는 사이 한국 경제는 하릴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앞선 김대중․노무현에 비해서도 형편없이 저조했다. 장하성 교수가 어느 신문 칼럼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 경제 성적표를 조사 발표한 적이 있는데 대략 이렇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누적 경제 성장률은 60퍼센트 정도 된다. 그에 반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 동안 누적 경제 성장률은 그 절반도 안 되는 28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1인당 국민총생산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김영삼 정부가 초래한 외환위기 여파로 1998년 4천 달러 이상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1만 1천 달러 늘어났다. 반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 동안 1인당 국민총생산은 4100달러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민의 살림살이는 어떠한가? 가계소득은 김대중 정부 시절 1998년 외환위기로 크게 감소했지만 이후 4년 동안 19퍼센트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 5년을 거치며 10퍼센트 증가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 동안 가계소득은 누적 경제성장률의 3분의 1 수준인 10퍼센트 증가에 머물렀다.
이번에는 가계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보자. 해당 수치는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에는 97퍼센트,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에는 105퍼센트였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에 125퍼센트로 크게 증가했고 박근혜 정부 4년째인 2016년에는 150퍼센트를 넘어서고 말았다. 액면 그대로 국민부채시대가 열린 것이다. 빡빡해진 것은 가계살림만이 아니었다. 나라살림 사정 또한 다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 정부 재정은 6.8조 원 흑자였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을 거치며 매년 재정적자를 기록해 누적 재정적자가 무려 166조 원에 이르렀다.
보수 세력은 당면한 한국 경제의 위기를 타개할 비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동안 보수가 축적해온 노하우는 새로운 상황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음이 명확해졌다. 경제는 보수가 유능하다는 신화는 맥없이 깨져 나갔다. 보수 세력 내부에서 심각한 동요와 이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보수의 위기3. 동맹의 균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