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옥-김용순 부부와 강옥자 독거노인 관리사.
신광태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 살고 있는 이진옥 할아버지(86세)는 20대 군 생활 시절 고참병 구타에 의해 귀에 문제가 생겼다. 고막이 터졌던 거다. 당시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단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하소연할 대상도 없었다. 운명으로 받아 들였다.
젊었기 때문일까,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건 큰 불편이 되지 않았다. 먹고살기도 빠듯한 생활, 쉼 없이 일해도 좀처럼 생활이 나아지질 않았다. 불편한 한쪽 귀를 탓한다는 건 사치로 느껴졌다.
할아버지 나이 60세쯤 들어서자, 남은 한쪽 귀도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멀쩡하던 귀에 너무 의존해 온 탓일까 '안 들림' 증세는 날이 갈수록 악화됐다.
병원을 찾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활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듣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향해 아내인 김용순 할머니(85세)는 집안이 떠나갈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하곤 했다.
'글을 써서 보여주면 되겠구먼!' 그런 생각을 하던 할아버지는 이내 좌절했다. 할머니는 글을 몰랐다. 방법이 없다. 손짓 발짓 다 해가며 표현하다 보니 신경질만 늘었다. 답답한 심정 때문일까, 할아버지 입에서 욕설이 쏟아지는 날이 잦았다.
"그렇게 20년 세월을 살다 보니 할머니 입 모양으로 대충 알아 듣겠더라구."어쩔 수 없다. 부부가 말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노릇. 할아버지는 할머니 입 모양을 바라보는 게 일상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가 보다. 할아버지 귀가 들리지 않을 무렵 할머니에게 뇌졸중이 찾아왔다. 병원을 갈 수 없는 형편. 뇌졸중에 좋다는 산약초를 구해다 드셨다. 그러나 몸은 약해졌고, 합병증도 찾아왔다. 그래서 할머니는 집안에 있는 날이 잦았다. 운동을 위해 집 밖에서 몇 걸음 걷고 들어오면 앓아눕는 날이 많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 아들과 딸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도 나을 게 없단다. 그럼에도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생활보호 대상자로 책정되지 못했다. 군청에서 추진하는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면 한 달에 20만 원 번다. 그 돈으로 20kg짜리 정부미 한포 사면 한 달은 걱정없단다.
"반찬은 어쩌구요?"라는 내 질문에 할아버지 시선은 옆 사람을 향했다. 나를 이들의 집으로 안내했던 독거노인 관리사다.
노부부 돌보는 독거노인 관리사 강옥자씨강옥자씨는 화천군 사내면 독거노인 관리사다. 30가구를 담당한다. 매일 전화 또는 직접 방문을 통해 홀로 사시는 노인들의 건강과 생활상을 확인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어느 날 한 주민으로부터 이진옥-김용순 부부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후 강 관리사는 늘 반찬을 여유 있게 만들었다. 노부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시장에 들러 국거리를 사 가는 것도 일상이 된 지도 오래다. 청소나 빨래도 그녀의 몫이다.
보청기 지원사업 응모 역시 강 관리사의 제안이었다. 지난해 12월 화천군 라이온스클럽에서 생활이 어려운 가정을 대상으로 보청기 지원사업이 추진했다. 화천군 사내면에 할당된 가구가 2가구였고, 120만 원짜리 보청기에 20만원 자부담 조건이었다. 심사를 거쳐 설날을 앞두고 지원이 이뤄졌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조금씩 모으셨던 20만 원을 내셨다.
"자전거를 드렸을 때도 보람을 느꼈어요."할아버지는 20여 리 떨어진 읍내에 나갈 땐 버스를 이용했다. 그런데 정류장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녀는 지난해 어느 행사에서 자전거를 경품으로 받았고, 부랴부랴 남성용으로 교체해 할아버지께 드렸다. 이후 자전거는 할아버지 자가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