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허물어진 벽 사이로 뒤란이 보인다.
고성혁
며칠 전 해거름이었다. 숲 앞에 서서 마지막 저녁 햇살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데 고샅으로 발걸음을 떼던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보더니 대뜸 말씀하셨다.
"여보시우, 연동댁이 아주 갔어요." "예?" "쯧쯧, 저 안 골목 노인이 서울에서 치료받는다고 올라가더니 죽어 내려 왔어요.""아이구."그 할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늘 정갈하시던 할머니. 뜨거운 햇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콩밭에서 밤낮으로 김을 매던 할머니의 노란 모자가 생각난다. 대파와 고구마순과 양파를 갖다 주시던 할머니의 거친 손과, 웃으시면 얼굴 가득 퍼지던 주름살의 형용. 병색이 완연해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다 드리면 줄 것이라곤 없다며 손사래를 치시던 할머니가 그립다.
지난해 겨울 할머니가 지나가는 나를 부르셨다.
"차를 가지고 와." "왜요?" "글쎄, 차를 갖고 오라고."
시키시는 대로 했더니 할머니는 대문에 서 손짓으로 불렀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놀랐다. 큰 통에 김장 김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여름이 되도록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가를 생각하니 비장한 마음이 든다. 할머니의 묘소를 물어 그곳 생활은 평안하신지 인사라도 여쭤야 도리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