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2번 쉬고 120만 원... 이주노동자의 삶"

[현장]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집회

등록 2017.02.09 20:07수정 2017.02.0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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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창에 갇힌 인권을 석방하라 -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집회
철창에 갇힌 인권을 석방하라 -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집회 이윤경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 속에 이주민 인권을 위한 부산울산경남 공동대책위원회(아래 부울경 이주공대위) 활동가들이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 모였다. 장밋빛 꿈을 안고 대한민국을 찾은 이주노동자들이 교도소를 방불케하는 속칭 '보호소'에 갇혀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중상을 입은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매년 이 맘때, 이 곳에서 10년째 만나는 사람들은 안부 대신 '날씨가 너무 춥다'며 인사를 건넨다. 그만큼 부산 중구 영주동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은 유난히 춥다. 올해는 그 추위가 극에 달했다. 한 참가자는 '10년이 된 화재참사 희생자의 한이 섞인 바람'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집회(아래 추모집회)는 울산이주민센터 조돈희 소장의 사회로 시작했다. 이 날 추모집회에서는 화재참사 10년이 지났음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의 노예와 같은 삶이 활동가들의 입을 통해 공개되었다.

밀양 깻잎밭에서 하루 10~12시간을 일하며 월 2회 휴무에 월급은 약 120만 원을 받는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들.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임금 대신 월 15만 원 가량의 생계비를 받는 인도 노동자. 허리통증으로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며 하선(下船)한 베트남 선원 노동자를 선주가 이탈했다고 신고해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강제퇴거 당한 사건도 있었다.

또한 강제퇴거 명령을 취소하라는 부산지법의 판결에 항소한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와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 고용노동부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추모집회는 참가자들의 발언에 이어 헌화와 묵념으로 마무리되었다.

오는 10일은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과 추모행사가 열리며 토요일인 오후 3시에는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여수 화재참사 희생자 열 분의 이름이 담긴 폼보드 위패
여수 화재참사 희생자 열 분의 이름이 담긴 폼보드 위패 이윤경

 "일시킬땐 노동자, 월급줄땐 연수생! 노예제도 폐지하라" 부울경 이주공대위 활동가들과 추모집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일시킬땐 노동자, 월급줄땐 연수생! 노예제도 폐지하라" 부울경 이주공대위 활동가들과 추모집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윤경

사회 울산이주민센터 소장 조돈희
사회울산이주민센터 소장 조돈희이윤경

발언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사무국장 정해, 김해이주민인권센터 간사 김은이, 이주민과함께 상담실장 김그루
발언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사무국장 정해, 김해이주민인권센터 간사 김은이, 이주민과함께 상담실장 김그루 이윤경

조돈희 울산이주민센터 소장은 여수 화재참사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뒤 "불법체류자의 인권 문제뿐만 아니라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한국 정부의 문제도 함께 얘기하고자 한다"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성화하고 합법화 하는 데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밀양 깻잎밭에서 일하는 농업 여성이주노동자에 대해 발언한 정해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사무국장은 "하루 12시간 가량 일하며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여성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협박에 못 이겨 고용노동부를 찾았지만 5개월이 넘도록 해결된 것이 없다"면서 "노동부는 오히려 이 노동자들에게 깻잎밭에서 일 한 것을 증명하라고 했다. 근로감독관은 그 노동자들이 깻잎밭에서 일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라며 분노했다.


정해 사무국장은 "이 나라에서는 부당과 모욕을 감내해야만 합법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법의 이름으로 노동자의 자유를 구속하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산업연수생제도의 폐혜에 관해 발언한 김은이 김해이주민인권센터 간사는 "산업연수생으로 우리나라에 온 인도 노동자는 근무 중 손을 다쳤는데 산재가 불허됐다.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이라서 그렇단다. 주야 맞교대로 하루 12시간씩 일했지만 임금이 아닌 생계비 명목으로 월 15만 원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김은이 간사는 "수천 명의 산업연수생들이 우리나라에 와 있다. 산업연수생제도는 즉각 폐지되어야 할 노예제도이다. 여수 화재참사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이 제도를 바꾸고자 한다"고 말했다.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의 무리한 단속과 강제퇴거로 고통을 겪고 있는 베트남 선원노동자에 대해 발언한 이주민과함께 김그루 상담실장은 "제발 '보호'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 철창 안에 가두고 출입을 못하게 하는 것은 구금이고 수용이지 보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김그루 실장은 "허리통증으로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며 하선(下船)한 베트남 선원 노동자를 선주가 이탈했다고 신고해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강제퇴거 당한 일이 있다"며 "이탈 신고만으로 사람을 감금할 수 없고 신분증을 압류하는 것은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다"라고 설명했다.

김그루 실장은 "지난해 1월,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부산지법은 강제퇴거명령을 취소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했지만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는 항소했다"며 분노했다.

추모집회 참가자들은 "뭘 잘했다고 항소하냐! 항소 포기하라!"라며 함께 구호를 외쳤다.

 피켓으로 만든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부상자의 증언이 지나는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피켓으로 만든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부상자의 증언이 지나는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윤경

 현대판 노예제도, 산업연수생제도 폐지하라
현대판 노예제도, 산업연수생제도 폐지하라 이윤경

헌화와 묵념 세찬 바람에 제단이 쓰러지지 않도록 활동가들이 양쪽을 잡고 있다.
헌화와 묵념세찬 바람에 제단이 쓰러지지 않도록 활동가들이 양쪽을 잡고 있다. 이윤경

아래는 기자회견 전문.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10주기, 고인들을 추모하며
참사원인이었던 단속·추방 정책을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민을 합법화하라!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7년 2월 11일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이하 '여수 참사')가 벌어졌다. 이중으로 된 쇠창살 안에 갇혀 있던 이주노동자들은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외국인보호소 직원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소방대원들이 뒤늦게 구출에 나섰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후였다. 그렇게 10명의 이주노동자가 불에 타거나 가스에 질식해 목숨을 잃었고 17명이 중상을 당했다.

이는 결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정부의 야만적인 단속·추방 정책이 낳은 살인이었다. 당시 정부는 2004년 8월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를 정착시키려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죽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런 정책 아래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고, 그들은 인간이기 이전에 오로지 단속·추방의 대상이었다. 당시 '비상사태' 발생 시 유일한 행동지침이 "재소자 탈출 방지"뿐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심지어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참사 후 병원에 있던 이주노동자들에게까지 도주 우려가 있다며 수갑을 채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신축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시설이었지만 스프링클러와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치조차 없었다.

외국인'보호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인간 이하 취급을 받았다. 24시간 햇볕도 들지 않고 악취가 진동하는 좁은 보호실에 수용 인원보다 많은 인원을 가둬놓고 CCTV로 감시하는 곳이 외국인보호소였다. 직원들의 폭언과 폭행은 다반사였다. 이 때문에 참사 발생 전에도 외국인보호소에서 탈출하려고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가 사망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한마디로 여수 참사는 예고된 참사나 다름 없었다.

이에 분노해 전국적으로 80여 개 단체들이 공대위를 구성하여 투쟁에 나섰고, 서울역에서 1천여 명이 참가하는 항의 집회를 열었다. 그 결과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배상과 출입국관리국장 사임 등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참사의 원인이었던 정부의 야만적인 이주노동자 정책들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지속되며 이주노동자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고 있다. 우리가 여수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수 참사 이후에도 단속·추방이 지속돼 2003년 이후 지금까지 30명 이상의 이주노동자가 단속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수도권∙영남권 광역단속을 벌여 마석에서는 14개월 된 아이의 엄마까지 단속하고, 경주에서는 단속 도중 이주노동자 다리가 부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외국인보호소 내 인권문제도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지난해만 해도 청주와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있던 이주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벌어졌고, 구금된 이주 여성에게 생리대를 지급하지 않아 수건으로 대신하는 일도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15년 발간한 <외국인보호소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외국인 보호시설 내 보호외국인들의 처우는 여러 측면에서 … 수형자의 처우보다 열악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는 올해 미등록 체류자 단속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광역단속팀을 2개에서 4개로 늘리고 정부 합동단속을 상·하반기 10주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단속 과정에서, 그리고 외국인보호소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어야 이런 정책들을 중단할 것인가!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내국인 일자리 잠식과 저임금의 주범으로 몰며 단속 강화를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를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하려는 정부 정책 때문에 더 열악한 조건과 차별을 강요받는 피해자이지 내국인 일자리나 임금을 위협하는 존재도, 범죄자도 아니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정한 체류기간과 체류자격, 사업장 이동의 자유마저 박탈한 고용허가제 등 이주노동자를 통제하는 정책 때문에 일부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것이다. 더 쉬운 해고, 더 많은 비정규직, 더 낮은 임금을 위한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정부야 말로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임금을 위협하는 주범이다.

우리는 오늘을 시작으로 여수 참사 10주기가 되는 2월 11일까지 희생자를 추모하고 야만적인 정부 정책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행동들을 벌여나갈 것이다. 정부는 참사의 원인이었던 단속·추방과 외국인보호소 구금을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민들을 합법화해야 한다.

2017년 2월 9일
이주민 인권을 위한 부산울산경남 공동대책위원회

#여수화재참사 #이주노동자 #산업연수생 #노예제도 #민주노총부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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