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건넨 아이스크림을 받아 먹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2005년 6월 14일 대통령비서실 촬영)
노무현재단
"난 프로가 하라는 대로 할기다"노 대통령은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대통령이 자신을 인정해줬던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하노라 고백한다. 2004년 해외 순방 중 하와이에 들렀을 때였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노 대통령이 차에서 내렸다.
어디를 배경으로 찍으면 좋을지를 두고 비서진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전속 사진사인 저자 역시 조심스레 의견을 개진했지만 비서들 앞에서 묵살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딱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당신들이 사진사는 아니잖은가? 프로가 여기 서라는데 와 그리 말이 많노. 난 프로가 하라는 대로 할기다."대통령의 사진사로서 자신의 의견이 배제되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크게 상할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힘을 실어준 대통령에게 저자가 느꼈을 감동은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저자 역시 "그 순간 나를 인정해주는 님의 말씀에 잠시 목이 메었다"고 고마운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사진 촬영을 업으로 하는 저자에게도 대통령을 찍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아무리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한 면모를 가졌다 하더라도,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보는 눈도 많았다. 대통령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비서관들의 허락도 받아야했다.
그러나 저자는 대통령의 소박한 면모를 한 장이라도 더 렌즈에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으로 '몰카'를 시도했다고 말한다. 밥 먹을 때도, 양치질을 할 때도 사사건건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저자에게 기분이 나빴을 법도 하지만, 노 대통령은 "별 걸 다 찍네" 한 마디 툭 던지고 말 뿐이었다고.
애연가로 유명한 노 대통령이 담배 피는 모습을 담아낼 때도 그랬다. 대통령이 담배 피는 모습을 꼭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저자는 어느 날 노 대통령이 담배를 무는 순간을 포착하자마자 곧바로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그만 플래시가 '펑' 하고 터졌단다. 갑작스러운 플래시 세례에 대통령도 놀라 고개를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놀란 사람은 저자였다.
저자는 슬그머니 카메라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호된 질책을 각오한 채. 그런데 웬걸. 대통령은 아무 말 없이 다시 남은 담배를 피울 따름이었다. 신난(?) 저자는 카메라를 들어 기어이 몇 장을 더 찍었다는 후문이다.
"담배를 피울 때 님은 무슨 생각을 그리 하셨나요? 저는 님의 눈빛, 미소, 얼굴 근육의 떨림까지 렌즈를 통해 바라봤습니다. 담배를 피우시는 동안에도 고뇌, 안도, 상념의 순간들이 스쳐지나갔고 주름 하나하나가 미세하게 변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 p.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