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앞 도박장을 막아달라는 성심여중고 학생들
설혜영
* 이 글을 쓴 설혜영님은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살고 있으며 6살 한 아이의 엄마이자 용산화상경마장추방대책위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서울 강남의 한 나이트클럽.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 나이트클럽을 애용하던 손님들은 점점 나이도 들어가고 이젠 나이트클럽이 술 먹고 담배 피는 어두침침한 안 좋은 이미지 때문에 점점 기피시설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자 나이트클럽 사장은 아이디어를 짜냈다. 나이트클럽의 새 고객층을 발굴해야 겠다고. 젊은층이 애용하는 곳이 되어야 장기적 비전이 있다는 영업컨설팅도 받았다. 젊은 층을 끌어들이고 특히 아이들에게 조기교육을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이트클럽을 개방하여 낮에 댄스교실을 여는 거다. 그럼 맨날 오던 사람만 오는 곳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오게 되고 낮에 오다 보면 저녁에도 오게 되고... 그러면서 나이트클럽의 고리타분한 이미지도 개선하고 지역에 아이들 댄스교실을 열면서 봉사하는 이미지도 쌓아 보겠다는 일을 추진했다.
어떤가? 이런 발상? 어이 없는 일이라고? 그렇지 않다. 그보다 더 심한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용산 화상경마장 문제, 여전히 진행중서울 용산의 화상경마장 건물을 본 사람들은 경마장의 세련된 외관에 놀란다. 회색의 지상 14층의 멋스러운 건물의 자태는 오토바이가 즐비하고 쓰레기, 담배꽁초, 소주병이 뒹구는 그런 경마장과는 전혀 다르다. 저녁에는 색색깔의 선조명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렇게 이미지 쇄신을 한 화상경마장에서는 경마가 없는 월~금을 이용하여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이 펼쳐지고 있다. 경노당 어르신들에게는 경마장 노래교실이 재미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노래 교실뿐만이 아니다. 민요, 미술교실 등등. 더욱 심각한 것은 어르신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린이 대상 바이올린, 영어, 역사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한 달에 3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반응이 좋다는 소문이다. 여기에 한술 더 뜬 마사회장은 요즘 엄마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키즈 까페까지 손을 뻗쳤다. 이제 엄마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경마장에 오게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거 주먹구구식 사업이 절대 아니다. 나이트클럽 사장님도 하물며 주변의 자문을 받았는데 1년에 5조 원을 주무르는 한국마사회가 그냥 했겠는가? 마사회는 지난 2014년 한국경영컨설팅협회로부터 자문을 받았다. 그 업체는 마사회에게 고객 확대를 위해 "아저씨 이미지를 해소하고 젊은층, 여성층을 유도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지난 금요일 동네 엄마들과 함께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의원실을 방문했다. 학교앞 화상경마장을 막기 위해 싸운 지 4년이 되는 우리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기는 커녕 점점 일이 커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이제 마사회는 아예 화상경마장 안으로 아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이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보게 생겼으니 말이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에 대한민국의 희망이 있다고 외쳐왔다. 급기야 미래창조부는 창조경제를 띄우기 위해 나섰고 그러다 한국마사회의 도박장내 키즈까페 사업까지 창조경제로 엮어 12억 예산을 지원했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비난 여론이 들끓자 미래창조부는 뒤늦게 남은 예산을 거둬들였지만 해외토픽감으로 비난을 받던 경마장 내 키즈까페는 이후 계획대로 모두 추진되었고 이제 개장만을 앞두고 있다.
지난 2013년부터 학교 앞 화상경마장을 막기 위해 단식, 삭발 투쟁을 빼곤 안 해본 게 없는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화상경마장 입구에는 작은 푯말이 붙어 있다. '19세 미만 출입 고용금지 업소'라고.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키즈까페를 만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곧 알게 됐다. 청소년보호법 2조에 따르면 화상경마장은 청소년 출입 고용금지 업소지만 단서 조항이 붙어 있다는 것이다. 경마가 열리는 날에만 청소년 출입고용금지 시설이라는 것이다. 딱 나이트클럽과 같다. 나이트 클럽 영업 시간이 아닌 낮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