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도등스님이 건설한 일본 우지시의 우지교

1996년 3월에 새로 개축...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 사진 찍은 곳

등록 2017.02.21 10:34수정 2017.02.2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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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차(宇治茶)로 유명한 일본 교토 남부의 우지시(宇治市)에는 우지강( 宇治川) 있다. 이 우지강에의 우지교(宇治橋)라는 다리는 서기 646년, 고구려 도등(道登)스님이 건설한 다리로 알려졌다.

13일(월)에 찾은 우지강은 즈믄 해(천년)의 세월을 품은 채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서 "강물을 건너다 빠져죽은 이들을 보고 이들이 안전하게 강물을 건너도록 다리를 놓은 도등스님"을 떠 올렸다.

우지는 과거 다이카(大化)부터 오우미(近江)를 거쳐 관동(關東)에 이르는 인적, 물적 유통은 물론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곳이다. 우지교는 세타노가라교(瀬田唐橋)와 야마사키교(山崎橋)와 함께 일본의 오래된 다리(古橋) 3곳으로 전해지는 데 현재의 우지교는 1996년 3월에 새로 개축한 것이다.

우지교 1 1급하천 우지교라고 쓴 다리 빗돌, 우지역 쪽에 있다
우지교 11급하천 우지교라고 쓴 다리 빗돌, 우지역 쪽에 있다 이윤옥

길이 155.4m, 폭 25m로 실제 다리를 건너가보면 그렇게 크지 않은 느낌이며 주변에 명승고적 뵤도인(平等院)을 포함한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의 고장답게 우지교는 일반 다리에서 볼 수 없는 전통미를 살린 모습이다.

우지교에 관한 기록은 <혼초고소덴(本朝高僧傳)>을 비롯하여 <니혼쇼키(日本書紀)>, <쇼쿠니혼기(續日本紀)> 등 수많은 일본의 문헌에 등장하고 있으며 8세기 설화집에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기록도 보인다.

"고구려의 학승 도등은 간고지(元興寺) 승려로 야마시로(지금의 교토) 혜만 집안 출신이다. 과거 다이카 2년 우지교 건설 때문에 자주 왕래하던 때에 나라산(奈良山) 계곡에 해골이 있었는데 항상 사람이나 짐승들에게 밟히고 있었다. 도등은 이를 불쌍히 여겨 종자(從子)인 마로를 시켜 해골을 나무 위에 걸어두게 하였다.(뒤줄임) <니혼료이키(日本靈異記), 8세기>상권 12화"

우지교 2 우지역 쪽에서 바라다 본 우지교 전경
우지교 2우지역 쪽에서 바라다 본 우지교 전경 이윤옥

도등스님에 관한 가장 자세한 기록은 1702년에 만겐시반 스님이 전국을 돌며 고승들의 행적을 기록한 <혼초고소덴(本朝高僧傳)>이 으뜸이다. 좀 길지만 도등스님이 우지교를 놓게 된 당시 상황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기록이므로 원문의 일부를 기자의 번역으로 소개한다.


"석도등(釋道登)은 스이코(推古天皇) 말기에 고구려에서 당나라로 들어가 가상사의 길장대사에게 삼론의 종지를 전수 받고 견당사와 함께 일본에 와서 간고지(元興寺)에 머물면서 오로지 공종(空宗 =삼론종)을 설하였는데 도소(道昭)와 함께 명성을 얻었다. 고토쿠천황(孝德天皇) 다이카 원년(645) 가을 8월에 천황이 도등(道登)과 복량(福亮), 혜운(慧雲) 등 10사(師)를 불러 여러 절의 승려들에게 석가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라고 하였다.

다이카 2년 병오에 도등(道登)과 도소(道昭)에게 명령하여 우지강에 대교(大橋)를 놓으라고 하고 우사(右史)에게 명하여 빗돌에 이름을 새기에 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칠게 흐르는 물이 빠르기가 화살 같아 유유히 지나가는 나그네 말을 멈추어 저자(시장)를 이루었다. 그런데 물을 건너뛰자니 무섭고 깊어서 사람과 말이 다 목숨을 잃겠는지라 옛날부터 지금까지 운명에 항거할 줄 몰랐다. 이때 세상에 석가의 제자가 있어 이름을 도등(道登)이라 하였다. 야마시로(교토)의 혜만 집에 태어나서 다이카 2년 병오에 다리를 놓아 사람과 짐승이 건너게 하였다. 곧 조그만 선업(善業)을 인연으로 큰 원을 세웠는데 이로 인해 다리를 놓아 피안(彼岸)에 이르게 하였다. 법계의 중생이 널리 한가지로 이 소원을 빌어 공중에서 전생의 인연을 인도해주었다.'

하쿠치(白雉) 원년에 나가토 국사(長戶國司) 무라카베노무라지 시코부가 흰 꿩을 바쳤다. 도등(道登)이 말하길, '옛날 고구려왕이 절을 지으려고 터를 고르는데 흰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 자리에다 백록원사(白鹿園寺)를 지었더니 불법(佛法)이 크게 일어났고 또 흰 공작이 나타나서 모두들 길조라고 했습니다.'고 하였다. 그래서 천황은 원호(元号)를 하쿠치(白雉)라고 하였다. 도등(道登)이 처음으로 우지교를 놓았다. <뒷줄임><혼초고소덴(本朝高僧傳)>,권 제72, pp.410~411)"

우지시 우지역 앞에 있는 우지시 안내판에는 우지시가 역사의 고장임을 잘 말해주는 명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지시우지역 앞에 있는 우지시 안내판에는 우지시가 역사의 고장임을 잘 말해주는 명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윤옥

이 기록을 통해 고구려 도등스님으로 인해 하쿠치(白雉, 650-654)라는 원호(元号, 원호란 메이지 '明治' 라든가 쇼와 '昭和'와 같이 천황의 통치 연호를 말함)가 붙었으며, 우지교를 처음으로 건설한 사람이 도등스님 (道登初營宇治橋)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짚고 넘어 갈 것은 우지교를 건설한 사람이  <쇼쿠니혼기(続日本紀)> 에는 백제계 도소(道昭) 스님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점이다. 그러나 고구려 도등스님의 경우 <니혼료이키(日本靈異記>, <후소략키(扶桑略記)>, <곤자쿠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 <쇼쿠니혼기(続日本紀)>, <혼초고소덴(本朝高僧傳)> 등에 기록되어 있고 백제계 도소(道昭)스님이 건설자로 되어 있는 사료로는 <쇼쿠니혼기(續日本紀)>, <겐코샤쿠쇼(元亨釋書)>뿐인 것으로 보아 고구려 도등스님의 건설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고구려 도등스님이 건설했든 백제계 도소스님이 놓았든 간에 이들은 고대 한국과 관련된 인물이다. 이들이 우지교를 놓은 것은 훗날 돌비석에 이름을 남기기 위한 것도 아닐 것이요, 칭송을 얻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우지강 2 우지가와(우지강)이라고 적힌 다리 난간에 선 기자
우지강 2우지가와(우지강)이라고 적힌 다리 난간에 선 기자 이윤옥

우지교를 건설한 고구려 도등스님은 어쩌면 조국에서 이루지 못한 중생구제의 꿈을 일본에서 우지교 건설 등을 통해 실천해 갔는지 모를 일이다. 1300여년이 지난 지금 도등스님의 조국 고구려는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이름은 일본의 사서에 또렷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그가 건설한 우지교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 스님의 불법(佛法) 실천을 향한 구도(求道)의 삶을 느끼게 한다.

참고로, 우지교를 건너 걸어서 20여분 거리에는 윤동주 시인이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친구들과 함께 놀러갔던 아마가세댐(天ヶ瀨) 하류 지역의 줄다리(밧줄로 당기는 모습의 다리, 츠리바시 '吊り橋') 가 있으며 윤동주 시인의 마지막 사진은 1943년 5월 이곳에서 찍은 것이다.  뿐만아니라 우지시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뵤도인 (平等院) 등 볼거리가 많다.

우지강 우지가와(우지강)이라고 적힌 다리 난간에 선 기자
우지강우지가와(우지강)이라고 적힌 다리 난간에 선 기자 이윤옥

우지역 케이한전차 우지역을 빠져 나오면 바로 이 앞에 우지교가 보인다.
우지역케이한전차 우지역을 빠져 나오면 바로 이 앞에 우지교가 보인다.이윤옥

* 우지교 (宇治橋) 찾아가는 길
교토부 우지시 우지가와(京都府 宇治市 宇治川)에 있는 다리로 케이한전철 우지역( 京阪  宇治驛)에 내리면 바로 앞에 있다.

* 기사에 나오는 문헌의 번역은 기자가 한 것이며, 한자는 지원이 안돼 구자체로 표기하였다.

덧붙이는 글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우지교 #우지역 #도등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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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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