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이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를 주제로 열렸다. 성소수자 단체와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성소수자 보호 등의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사실상 반대 뜻을 밝힌 문 전 대표를 규탄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사장에서 성소수자들은 문재인 전 대표의 기조연설 내내 피케팅을 했고, 나중엔 소리를 질렀다. 당신 마음대로 나의 인권을 반으로 잘라내지 말라는 절규였다. 돌아오는 답은 나중에 발언할 기회를 준다는 것과 진행을 방해하지 말라며 '나중에'를 연호하는 객석의 집단반응이었다. 성소수자는 문재인 전 대표의 부정적인 입장을 듣는 것으로 모자라 참가자들의 야유 속에 행사주체의 호의도 무시하고 행사를 방해한 '폭도로 찍혔다'.
문득 2014년 서울시인권헌장 공청회가 떠올랐다. '동성애 아웃'을 외치는 수백 명의 외침 한가운데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성소수자 인권을 외쳤던 풍경은 3년이 지난 지금 '나중에'로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물론 두 행사는 많은 차이가 있다. 초기 서울시인권헌장 공청회가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서울시의 의지를 보여주려던 행사였다면, 후자의 공간은 유력한 야당 대선후보가 바로 전날 보수기독교 단체를 만나 성소수자 관련 인권제도는 없을 것이라 약속하고 포럼을 열어 페미니즘과 성평등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다.
공청회에서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보수기독교 세력들이 관객으로 대거 자리를 차지하고 집단으로 혐오구호를 외쳤다면, 성평등 포럼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체적으로 성소수자 인권 보장의 의지까지 내려놓은 정치인을 찾아가 행사에 개입하고, 참가자들의 야유를 뒤집어썼다.
혐오세력의 압력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머리를 조아렸고 서울시가 시민들이 만든 인권헌장을 폐기했다면, 지금의 문재인 전 대표는 성소수자 인권과 무관하다며 자신의 결백함을 혐오세력 앞에 스스로 찾아가 차별금지법과 동성혼 자체를 부정했다. 박원순 시장은 성소수자들에게 사과했지만, 문재인 전 대표는 아직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못 박는다. 수치심 없는 정치의 시대에 대선주자들은 혐오세력의 강력한 민원공격에 눈치를 보며 입장 바꾸기에 급급하고, 정책에서 배제되는 당사자들 면전에 반인권적 선언을 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
두 상황의 상이한 배경과 결과를 인권에 대한 정치인들의 입장차이로 볼 수 있겠지만, 3년 동안 성소수자를 향한 프레임은 완연하게 달라졌다. 혐오세력은 보수정권의 비호 아래 조직화되었고, 혐오의 집단외침 속에 '인권'은 검열키워드가 되었다. 2012년 대선 당시 공약했던 차별금지법을 뒤엎은 야당 대권주자는 최근 부상한 페미니즘과 성평등을 붙여 자신의 정책을 선전한다.
문재인 전 대표는 자신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될 것이라 약속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이는 낙태법이 민감한 사안이라 언급하며 얼렁뚱땅 넘어가고, 차별금지법은 불필요하며, 동성혼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본인 스스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될 것이라 자리까지 만들어 열었지만, 자칭 그의 페미니즘 우산으로부터 배제되는 여성/퀴어들은 어떤 예고도 없이 자신의 언어를 도둑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3년 전과 지금의 공통점이 있다면, 절박하게 외쳐야만 귓등으로나마 듣는 척하는 풍토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성소수자들의 절박함 또한 그대로다.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여론의 함성은 여전히 성소수자들을 위축시킨다.
하지만 '나중에'라는 구호는 '동성애 아웃'과 달리 복잡한 결로 다가온다. 물론 저들의 외침은 행사 진행을 방해하지 말고 순서를 지키자는 요구일 수 있다. 하지만 보수기독교단체에 가서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혼을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한 상황에 '나중에'를 연호하는 참가자들의 외침을 질서를 지키라는 구호로만 해석할 수 있겠는가.
사실상 성소수자는 이날 행사에 공식적으로 초대받지 못한 집단이다. 이는 성평등을 약속하는 정책포럼에 여전히 성소수자를 배제하겠다는 선언이 아니고 무엇인가. 성별 이분법이자 이성애 중심의 기존 양성평등정책과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유력 대선주자가 성소수자의 인권배제를 약속한 상황에서, 발언권을 줬으니 행사의 질서를 지키라는 요구는 권력의 오만이다. 더구나 인권변호사 출신으로서 기존 차별금지법 공약을 뒤집고 나와 페미니스트를 운운하는데, 그에 대한 소수자들의 배신감을 비이성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무시당한 당사자가 개입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3. 앵벌이이날 이후 트위터를 중심으로 SNS에서는 격전이 일었다. 행사장에서 성소수자의 개입을 두고 누리꾼들은 진행을 망친 이들에게 발언권까지 줬는데 이런 비판을 하는 건 인면수심이라는 공격을 쏟아냈다. 문재인 전 대표만 집중적으로 공격한다는 비판 역시 쇄도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는 차기 대권주자를 모함해서 앵벌이 하는 집단으로 매도되었다.
논쟁의 정당성을 떠나 인권 감수성과 비전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문재인 후보를 향한 비판을 공격으로 치부하고 조리돌림 하는 것은 대권후보 지지자로서 품위가 결여된 행위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발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등지고 밀실정치로 자기를 향한 비판을 원천봉쇄했던 데 있었음을 기억하자.
지금 상황에서 문 전 대표에 대한 비호는 그가 지금 있는 자리, 그가 원하는 자리에 설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자라면 그를 향한 비판을 방어하기보다 그의 잘못된 정치 활동에 대해 직언해야 했다. 문재인 후보의 자리가 갖는 책임의 무게를 인지한다면 오히려 비판의 언어들, 경계에 매달린 언어들에 귀 기울이고, 문 전 대표의 잘못된 태도를 바로잡는 것이 당연하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불안하게 만들었는가. 아니, 어째서 외부비판에 위축과 방어로 응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인가. 지지자들의 태도는 5년 전 자신의 인권공약을 뒤집어버린 문 전 대표의 변화와 어떤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혐오가 세력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혐오는 표심으로 계산된다. 인권활동 경력이 있을지라도 선출직에 올라야 한다면 혐오와 타협하는 것이 최선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지지자들은 혐오 대상을 없는 존재로 취급하면서 '지지하지 않아도 차별은 반대한다'는 거짓 관용을 합리적인 절충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정권 교체를 위해 당신의 인권을 양보하라는 것이 나름의 계산이고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성소수자를 기회비용으로 삼고 혐오와 절충하는 당신들의 행동이야말로 앵벌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성소수자 단체가 문재인 전 대표를 공격해서 앵벌이 한다는 공격은 기존 차별선동세력들이 동성애자를 세금도둑으로 몰아갔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는 기생과 약탈, 오염으로 재현되었던 역사를 재차 소환한다.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도록 선동하는 권력과 제도를 비판해서 여론의 지지를 얻는 것을 앵벌이라고 부른다면, 좋다. 우리는 계속해서 당신들이 배제한 인권에 대한 요구들을 끝까지 모아내겠다.
0. 추신_ 불화함에도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