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역시 하나다기자회견장에서 양성모 한국산연 지회장
정영현
노동자들은 경남희망행진에 나서기 전 현수막과 선전물을 챙겼다. 그때였다. 소형화물차가 노동자들을 가로질러 회사 주차장으로 향했다. "전체 생산직을 해고한 공장에 제품 나갈 것도 없는데 웬 화물차?"라는 물음에 양성모 전국금속노조 한국산연지회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수시로 화물차가 오갑니다. 어떨 때는 컨테이너도 들어오고, 대형 탑차도 들어옵니다."생산직 전 사원이 해고됐지만 회사는 분주했다. 양성모 지회장은 이런 모습을 보며 정리해고를 "노조파괴를 위한 부당해고"라고 인식하고 있다. 사측으로부터 해고된 생산직의 상당수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소속 조합원이다. 한국산연이 위치한 마산수출자유무역지역 내 마지막 남은 금속노조 조합원이다. 나머지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들은 자본철수 등으로 사라졌고, 조합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양성모 지회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화물차를 바라보았고, 화물차는 희망행진을 준비하는 조합원들을 가로질러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측이 경남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을 수용했으면 화물차에는 현장노동자들이 생산한 제품이 담겼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제품이 아닌 현수막과 피켓, 홍보물품 등을 차에 실었다.
"피곤하지만 좋아요."진주에 도착했다. 진주시청을 찾은 노동자들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주시지부를 찾았다. 이날 진주시청 기자회견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3일째에 접어든 희망행진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이정희 조합원은 "피곤하지만 좋다"라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들려줬다. '피곤한데 좋을 수 있을까?'라는 원초적 의문이 있었지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난 2일동안 부산, 양산, 김해를 들렸는데 시민 중엔 발걸음을 멈추고 설명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분들이 있었고, 설명을 들은 분들은 꼭 서명(정리해고 철회 요구서명)을 해 줬어요. 예전에 일본에서 오래 사셨다는 어떤 어르신은 일본인이 곤조(근성)이 있어서 정리해고 철회까지 힘들 수도 있지만 본인이 변하고 세상이 변했듯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도 해 줬어요. 사람들을 만나고 응원을 들으니 절로 힘이 나죠."사람은 사람에게 힘을 얻는다. 169일이라는 긴 시간이었지만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여전히 관심과 응원에 소외돼 있었다. 무수한 정리해고와 노사분규 중에서 35명의 정리해고는 어떻게 보면 작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산연은 35명 개개인의 삶이 달린 일터였다. 일터에서 해고되는 것은 인생을 좌우하는 큰일이다. 그렇기에 한국산연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큰 관심과 응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희망행진을 통해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물론 힘든 일도 있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늙은 노부모의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 해고 기간 중에 어떤 노동자의 부모님은 암 판정을 받았다. 아이도 문제다. 어떤 이의 자녀는 대학에 입학했고, 어떤 이의 자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노부모의 부양과 자녀의 부양까지 책임져야 하는 나잇대의 한국산연 노동자들이 투쟁을 이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지역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사실 일면식도 없지만 같은 노동자라는 이유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양성모 지회장은 모든 노동자가 힘든 상황에서도 한국산연 노동자의 상황에 공감하고 도움을 주는 부분에 고마움을 표했다. 이러한 도움들이 있었기에 이날까지 싸울 수 있었다.
22일은 진주의료원 해고 노동자도 경남희망행진에 함께했다. 이들은 본인들도 해고되어 힘든 상황에서 십시일반 쌈짓돈을 모아 투쟁기금을 전달했다. 그뿐만 아니다. 경남희망행진을 하는 동안 효성중공업 노동자들이 김치와 물, 라면을 기부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어디서나 투쟁하는 노동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