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베기부산귀농학교 텃밭 만화리 벼베기, 기계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노동력으로 벼 수확한다.
이정인
맨손으로 일하는 기쁨, 벼베기부산에서 차로 20-30분 거리인 철마의 귀농학교 농장에 모였다. 좁은 지역이면 으레 볼 수 있는 다단식 논과 밭이었는데, 실전귀농 팀에서는 500평정도 되는 논을 담당했다. 마침 같은 날 자립하는 소농 팀도 인근에서 추수를 했는데 토종벼 수확이라고 했다.
귀농운동본부에서 얻은 토종벼라고 하는데, 여러 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토종종자 지키기' 운동의 일환인 듯 싶다. 실전귀농 팀이 모이자 설명과 주의사항을 들은 후 바로 벼 수확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물이 덜 빠진 논바닥에 장화가 빠지지 않아 허우적대다 물이 마른 논바닥 쪽으로 이동해서 벼를 벴다. 순서는 이러하다. 왼손으로 올곧게 벼를 바로 잡은 다음 낫 안쪽 힘을 이용해 밑동을 자른다. 벼는 최대 길게 자를수록 좋다.
나락을 털고 난 짚단은 축가와 농가에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벼를 거꾸로 세워 보기 좋게 정리한 후 가지런히 바닥에 쌓는다. 지푸라기로 볏단이 풀리지 않게 꼼꼼히 묶은 후 햇볕과 바람에 서너일 말려둔다. 각 공정마다 사람들이 흩어져 일을 진행했다.
고라니가 잠깐 쉬었다 갔는지 염소 배설물같은 것도 보였다. 속이 보이도록 푸른 여치와 여기저기 튀어 오르는 메뚜기, 샛노란 줄무늬가 눈부신 거대 거미와 아직 동면에 들지 않은 참개구리. 자신의 삶을 다해 살아있는 곤충들을 본 지가 얼마만이었던가. 어릴 적 고구마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 곁에서 방아깨비와 여치를 잡아 놀던 시절이 기억나 문득 그리워졌다.
일을 하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몸이 고되니 얼마만큼 했나 보고 싶은 것이다. 지나간 자리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볏짚과 잘린 밑동의 일렬들이 보인다. 오롯이 노동으로만 부여된 질서이다. 등 뒤의 정렬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고추밭 잡초를 멘다는 어느 시인 농부의 말이 떠오른다.
낫질이 익숙해지니 잡아 세우는 왼손이 뻐근해지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허벅지 근육이 뻣뻣해진다. 허리 좀 쉴 겸 돌아보니 각자 위치에서 벼를 베고, 묶고, 세우는 이들이 보인다. 바닷가에서 자란 나에게는 추수하는 농촌 풍경은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어느새 이마와 등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아침까지만 해도 날이 선선하니 흐려 땀 흘릴 걱정은 없겠다며 말을 주고받은 게 몇 시간 전 었는데..., 이렇게 일하면서 땀 흘린 적이 언제였더라. 땀방울에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니 헛살고 있지는 않구나, 일하고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차를 탔다. 이동 중 인근 논에서 추수하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현대화된 농기구 없이 손수 낫으로 벼를 베고, 볏단을 정리하고 있었다. 삶 전체를 관통하는 고된 노동과 겹겹의 시간들이 위를 훑고 지나갔다.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한 일을 오로지 당신네의 속도로 살아가는 모습은 오랫동안 바라보게 하는 고요한 풍경이었다.
산 속의 쇠고기, 표고버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