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로부터 받은 트로피(소정의 상금도 받았다). 옷깃에 달라고 'Ohmynews'라 새긴 뱃지도 줬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깨물어봤지만 금은 아니었다. 아쉽다.
하지율
시민기자로 활동했던 순간이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독자의 입장과 기자의 입장은 많이 다르다. 후자는 한두 번 기사를 써보는 것만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중요한 포인트는 기사의 분량이 제한적이란 것이다. 기자가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 독자들이 듣고 싶은 말을 전부 만족시킬 수 없다. 이런 상황은 기자로 하여금 중요한 팩트와 그렇지 않은 팩트를 선별하고, 중요한 팩트만 기사에 배열해 스토리로 엮도록 '가치 판단(주관)'을 요구한다. 고로 언론은 기사 완성 단계에 이르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완성품을 내놓을 수 없다. '진보' 언론 따로 있고 '보수' 언론 따로 있는 이유가 뭐겠는가.
언론이 표방하는 객관성? 그건 주로 취재의 초기 단계에 무엇이 팩트고 팩트가 아닌지 판별하는 단계 정도에만 유효한 이야기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팩트를 보여줘도, 자기가 보고 싶은 팩트나 결론이 아니면 기자에게 '객관적이지 않다' '기레기다' '찌라시다' 등의 야유를 보낸다. 예를 들어보자.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기업가 정신을 "불확실성 속에서도 도전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또한 기업가 정신을 경영자 마인드와 동일시하면서 노동자와 대립시키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안 전 대표의 생각과 달리 '도전 정신', '창조 능력'은 기업가 정신 그 자체가 아니다. 안 전 대표에게 기업가는 잡스, 주커버그 그리고 V3를 만든 안 전 대표 자신일지 모르지만, 현실의 기업가 중에는 이재용, 박용성 같은 재벌들 그리고 노조를 파괴하고 청년들에게 열정 노동을 강요하는 중소기업 사장들도 많다. 그러므로 '기업가 정신'을 도전 정신이나 창조 능력 그 자체로 정의하고 싶다면 이러한 현실부터 바꿈으로써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순서지, 단어만 산뜻하게 정의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기업' '기업가 정신'이 엄연히 내포하고 있는 온갖 부정적인 찌꺼기만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실이다. 그래서 기사에 썼다. 댓글 창에 바로 '문빠(문재인빠)' '기레기' 운운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다른 사례도 있다. 내가 쓴 기사는 아니지만, 얼마 전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했다가 낙마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을 둘러싼 논란에 관한 기사들을 몇 편 쓴 적이 있다. 전 사령관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셋으로 5.18 관련 발언, 무리한 포로극복 훈련으로 인한 부사관 사망 사건,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구속이다. 상근기자들은 팩트에 근거해 보도를 냈고 또 문 전 대표와 전 사령관의 입장도 실었다. 나름 균형을 추구한 것이다.
그런데도 댓글 창에는 <오마이뉴스>를 '조중동'과 '친박'과 비교하고 '쓰레기'라 욕하는 댓글이 달렸다. 뉴스가 아닌 관점을 소비하는 분위기는 언론이 제 기능을 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다. 일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보고 싶은 내용이 아니면, 언론이 의무적으로 보도해야할 내용일지라도 기자를 원망하며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대상의 이름을 붙여버린다. 이들 식의 기준대로라면 내 정체성은 '문빠(문재인빠)'도 됐다가 '안빠(안철수빠)'도 됐다가 '친박'도 됐다가 '일베'도 됐다가 '메갈'도 됐다가 일관성도 없고 뒤죽박죽이다. 이렇게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초심을 잃는다.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상처도 남는다. 해답은 뭘까? 결국 대중과 공생할 타협점을 계속 찾는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누구라도 언론을 활용할 수 있다. <오마이뉴스>는 열린 기회의 장이다. 그러나 너무 큰 확신이나 대중에 대한 기대를 갖지는 말자.
내 트로피에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등불이 됐다"는 말이 써있다. 이 말이 전적으로 사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글이 단 한 명의 동료 시민이라도 변화시켰다면 이 말은 진실이다. 기자들에게는 각자의 진실이 있다. 이 글에서는 다소 냉정하게 묘사했지만, 진실 하나만 믿고 인생을 거는 이 치명적인 도박사들의 행진에 합류할 용기만 있다면 기자도 괜찮은 직업 같다.
좋은 기자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