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기 휘날리는 보수단체 행진통일외교안보 분야에 대해선 적폐 청산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지만, 사태는 점점 더 악화돼 왔다.
이희훈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통일외교안보 분야는 다른 분야와 달리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일들이 많았기에 전문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적폐 청산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강력히 주문해왔다. 그럼에도 사태는 점점 더 악화돼 왔다.
급기야 사드배치를 위한 부지 교환 계약이 이루어졌다. 저들의 거침없는 폭주에는 '적폐' 청산에 소극적인 야당의 무기력함도 한 몫을 했다. '권한 대행'을 무력화하는 것이 국정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신중론이 얼마나 무지한 생각이며, 윤병세를, 김관진을 그리고 홍용표와 한민구를 그대로 둔 지금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 우리는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청산의 대상들이 그 적폐를 그대로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결과, 126일 동안 숨어있던 수구세력들이 하나 둘씩 광장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저들의 견고한 바리케이드가 나름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숨죽이던 저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광장으로 모여드는 데 박근혜 키즈인 적폐세력들이 가장 큰 역할을 해냈음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적폐를 그대로 두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비정상적인 적폐의 역습은 보통사람들의 일상마저 침해하기 시작했다. 탄핵이 인용될 때까지 할인해주겠다는 가게는 하루 500통이 넘는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지하철에선 노란 리본을 단 젊은이들이 공격당한다. 마음에 맞지 않으면 헌재 재판관도, 유력 대선 후보도 암살과 협박의 대상이 된다. 이제 거리는 공포와 광기로 채워지고 있다.
적폐 청산의 시기를 놓친 후과는 이렇게 크다. 정확히 짚어야 할 것이 또 한가지 있다. 126일 동안, 광장에선 시민들은 '종북몰이'와 '북풍'이란 미망에서 벗어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야권 대선 후보들이 보여준 '수세적 태도'이다.
종북 프레임은 '안보관'을 문제 삼지만 안보가 어디 북한의 위협만 있는가?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모든 것이 안보 위협이며, 사드 배치 하나 때문에 '한한령'까지 유발시키는 것이야 말로 심각한 안보위협이다. 이런 점을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우선 북풍만 피하고 보겠다는 안이한 태도가 왜곡된 안보진영의 논리를 강화하고, 적폐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키워준 것은 아닐까?
운명의 한 달, 정의와 평화를 위해 최선 다해 싸우자3월은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이른바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테러지정국 재지정 논의가 고개를 들 것이고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 혐의도 추가될 것이다. 당연히 북한은 강하게 반발할 것이고, 그 이후는 박근혜 정부에서 익숙히 보아온 장면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당장 닥쳐 온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은 안보 불안이 절실히 필요한 적폐 세력의 요구와 미국의 강경 입장이 맞물려 유례없는 긴장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보수집회는 더욱 광기를 머금고 기승을 부릴 것이다. 야당과 야권후보들은 이런 상황이 되도 전략적 모호성과 수세적 태도로 일관할 것인가?
탄핵 인용과 무관하게 저들은 안보를 팔아 생명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방향타를 잡았다. 보수의 아름다운 퇴장과 새로운 보수의 태동은 분단국에선 사치와 같다.
북풍은 허구적 여론에 불과하다. 지금과 같이 광장이 열리고 상식적인 토론이 넘치는 국면에선 절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김진태 의원이 촛불의 배후를 북한이라고 했다가 호되게 비난을 받은 일은 이를 입증한다. 정부가 안보에서 무능할 때 북풍은 맥을 못 춘다.
박근혜 정부는 4년 동안 총체적으로 안보와 외교의 무능을 드러냈다. 그 무능한 정부가 자신의 무능을 또 다른 무능으로 덮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의 태도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런 정부의 무능을 덮어주는 결과를 빚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졸속으로 추진된 사드 배치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전략적 모호성으로 가려주고, 북한 붕괴를 염두에 둔 한탕주의식 대북정책으로 강행한 개성공단 폐쇄 또한 현실의 문제를 들어 이를 바로잡기 어렵다는 식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지금 바로 박근혜 외교안보팀의 위험천만한 행동을 전지하고, 적폐 청산에 주저 없이 나서야 한다. 북풍에 대한 수세적 태도를 버리지 않고서는 적폐의 역습을 막을 수 없다.
탄핵 인용 이후 다시 60일이 지나는 동안 선거운동 외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대통령 후보만 넘쳐난다면, 이 나라는 다시금 어두운 시대를 맞게 되가 될 것이다.
그것은 선거 결과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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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26일, 전혀 변하지 않은 '적폐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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