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주연
지인이 카톡으로 얼마 전 부산 갔다가 찍은 거라며,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 모습을 담은 사진을 몇 장 보내주었다(2부 기사에 게재). 그리고 혹시 모이 기사감이 되겠느냐고 물으시기에, 냉큼 "그럼요. 글 쓰면 보내드릴게요"라고 약속했다. 그러자 지인이 기뻐하며, 옛날 추억이 나게 써달라 요리 주문을 하시며, 거기에 얹을 토핑 재료까지 덤으로 챙겨주었다. 화장실과 문이 멀어서 헛기침으로 노크(문 두드림)를 대신하기도 했으며, 예전 농촌에서는 움막 형태로 화장실을 지어 가마니나 멍석을 걸어 문으로 만들어서 아예 노크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노라고.
실은 소싯적에 대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내 글을 내 것이라 당당하게 밝히고 싶어서 그만두었다. 어차피 직업 대필가도 아닌, 그저 주위에서 부탁하니 글쓰기 좋아하여 거의 대부분 공짜로 써주곤 했던 터라 그만 두는 것에 아쉬움도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오랜만에 글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글감만 공급받아 내 이름 걸고 쓰니 기분이 즐겁다. 또한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이리 싱싱한 재료를 무상으로 제공해 주신 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대신에 사진 출처에 그 은인의 이름을 넣어드리려고 한다. 지적재산권도 준수할 겸.
화장실. 그건 역사 이전의, 태초에 생명이 탄생한 순간부터 존재했다. 일단 뭐든 먹었으면 불필요한 요소는 배출하는 것이 당연지사. 그런데 나를 포함한 이 인간이란 존재는 고등동물에 수치심도 아는 터라 아무데서나 이 거사(?)를 치룰 수가 없었다. 물론 우리 집 개도 어디든지가 아니라 일단 정해진 곳에 가서 한다. 하지만, 인간처럼 '화장실'이란 공간 자체에 대한 집착은 덜하다. 일단 배출을 한 후 냄새로 기억하며 그 장소에 다시 갈 뿐이다. 물론 인간도 예외가 있다. 특히 남성은 신체구조상 일부 노출로 소변 배출이 가능하여 은폐가 여성보다 쉽고, 아기 때부터 양육자에 의해 이러한 노출이 괜찮다는 지지(?)를 받아서인지 간혹 일부가 '세상=화장실' 개념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그 화려한 베르사이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남녀가 모두 하이힐을 신은 것은 여기저기 널린 오물에 발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여자가 길 안쪽에 가도록 남자가 배려한 이유는 위층에서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오물을 피하기 위함이라나... 어찌보면 그 옛날 고대인들이 화장실과 욕실문화는 더 발달했으니 퇴행이라 할 수도... 당시 유럽에서 향수가 발달한 것은 잘 씻지 않아 생기는 고약한 체취를 가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여자들은 화려한 가발 속에서 이와 쥐를 키우기도 했고.
암튼 이러한 구질구질 흑역사 화장실도 인쇄술, 증기기관차, 인터넷, 스마트폰, 사물인터넷처럼 혁명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인간은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새로운 시장 개척도 하고, 창조미와 미학도 추구할 겸 화장실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 결과 쪼그리고 앉아 흙이나 풀밭, 길 위에 싸느라 자칫 반사되어 튈 수 있는 것을 방지하고, 누군가에게 흔적도 들키지 않도록 흙구덩이를 팠다. 어쩌면 이 기술은 동물에게 배웠을지도 모른다. 이후 구덩이는 돌, 시멘트 등의 재질로 된, 네모형의 지하공간으로 변모하면서 고정식의 욕구 배출을 위한 장소로 승격되었다. 이제 떠돌이 생활을 접으니 이름도 갖게 되었다. 측간, 뒷간, 해우소, 변소, 화장실...
그와 더불어 인간은 점점 발이 닿는 지상공간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더니, '변기'라 별도로 부르며 주위와 확연하게 분리시켰다. 그러다 그 오래 전 바벨탑을 쌓던 때처럼, 아니 그 이전 네발에서 두발로 직립보행으로 바꾸면서 하늘을 쉬이 볼 수 있을 때부터 생긴 오만함이 꿈틀거렸다. 이 잘난 인간이 쪼그리고 중대한 일을 치르다니. 게다가 이 구린내는... 또한 타인이 내 속을 볼 수 없게 가려야 해. 이로서 지하공간의 은폐작업이 시작되었고, 반대로 인간의 오만을 만족시키기 위해 변기는 '직립' 하여 좌변기로 바뀌었다.
좌변기는 화장실사에서 보면 가히 IT업계의 컴퓨터와 인터넷과도 같은 혁신적인 발명품으로, 이후 화장실이 급속도로 진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앉은 자세로 편히 일을 볼 수 있으니, 기존에 쪼그리고 앉아 힘주느라 소모되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이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개인의 집이 아닌, 공공장소일 지라도 당당하게 '나 홀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면서 비약적인 변화의 바람이 시작되었다. 그렇다. '딴짓의 시대'가 도래했다.
인간은 화장실이라는 철저하게 독립적이고, 은폐적인 사유공간에서 독서와 사색을 즐길 수 있었다. 이에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치며 나온 아르키메데스의 후손들이 화장실에서 배출되기도 했다. 어쩌면 화장실은 비공식적인 노벨상의 산실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딴짓이 지나쳐서 신성한 '배출'의 공간에서 '흡입'을 하는 반역자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 음모는 항상 '연기'와 '다른 냄새'라는 흔적을 남겼기에 완전범죄가 대부분 불가능했다.
그리고 앉아서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 공간에 대한 미적 감수성과 더불어 창작에 대한 열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화장실 꾸미기'가 가속화되었다. 그림과 문자, 사진 등이 벽면을 차지했다. 여기에 일부 열성적인 개인들의 창작욕이 가세하면서 '화장실 창조시대'가 열렸다. 어떤 이는 화장실에서 창작된 글과 그림을 모아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화장실 유머>이다.
또한 화장실을 좀 더 편리하고 아늑하게 만들자는 운동이 생겨났다. 그 결과 '비데'가 탄생했다. 하지만 이 비데가 마냥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무엇이든 양지가 있으면 그늘이 존재하여, 이 저변화된 딴짓의 시대에서 인간의 식습관과 생활 변화가 더해지면서 '치질'이라는, 화장실사에서 취객의 구강 배출물과 더불어 경계하는 질병이 증가했다. 그리고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투입된 것이 바로 '비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딴짓의 시대에서 꼭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화장실에게 전신성형과도 같은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바로 여성들이 주도한, 화장실과 화장대, 탈의실의 융합이다. 이는 스마트폰의 발명이 IT를 강타한 충격과 같을 정도로, 이후 화장실을 기존의 배출 전용의 공간에서 탈피하게 했다. '탈피'. 일부 여성은 화장실에 오기 전과 후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특히 10대 여학생들의 경우는, 오래된 일본 애니에서 곧잘 나오던, 요술봉 휘두르며 매번 그 바쁜 와중에도, 초미니 스커트 차림새로 변신하여 악당과 싸우는 소녀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그녀들의 교복은 공공 화장실에서 거침없이 바뀌었다. 얼굴도.
한편, 이러한 융합은 이용자를 위한 배려로 받아지면서, 여성 소비자를 주로 대상하는 업체에서는 오히려 본래의 배출욕구보다는 변신욕구 충족의 공간으로 화장실을 바꾸었다. 참고로 부산의 부전역 여자 화장실에는 '옷 갈아입는 곳'이라 하여 별도의 탈의실을 마련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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