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수 전 부개동 성당 주임사제가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가 2월 27일 부평아트센터에서 개최한 인천마당에서 강연하고 있다.
김영숙
"1980년, 처음으로 보좌신부에서 본당 주임사제직을 시작했다. 열정이 넘쳤다. 수배돼 도망 다니던 여대생을 숨겨줬다가 어르신들에게 오해를 사 밤새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난데없이 내 방에 총알이 날아와 죽을 뻔했던 일, 밤마다 동네 청년들이 모여 김치에 소주를 마시던 일이 떠오른다.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인 1983년, 부평1동(현 부평4동) 본당 재직 시절에는 현직 교사들과 야학을 재건하고 가톨릭노동청년회 지도신부를 맡았다. 24시간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으며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본당과 지역의 유지라는 어른들에게 '빨갱이 신부'라는 살벌한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86년, 부평을 떠나 남구 주안5동 본당으로 갔다. 부평4공단에서 주안5공단으로 이동이다. 정보기관의 감시와 견제는 계속됐다. 거기서 역사적인 '5.3 인천민중항쟁'을 겪었고, 본의 아니게 항쟁의 배후조종자가 돼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주교님은 구속 수감될지 모르는 나를 위해 나를 백령도로 보냈다. 2년간 백령도에 있었다.
그때 흑백 TV로 평양 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임수경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의 당찬 모습을 봤다. 백령도에서 철조망 저편의 황해도 장산곶을 바라보며 통일을 그리는 시를 썼고, 그것이 1991년 '백령도'라는 시집으로 세상에 나왔다. 지금도 가끔 백령도 친구들이 어물이며 고구마 등을 보내주는데, 고마운 일이다.
1994년 부임한 곳이 제물포 본당이다. 본당 설립 20주년을 기념해 북한 돕기 모금운동, 사월초파일에 성당 입구에 단 부처님 탄생 축하 연등, 사랑의 쌀통 설치 등의 행동은 본당 원로들의 눈에 곱게 보이지 않았다. 한 해에 사제관 입구에 버려진 핏덩이 아이 둘을 얻은 것도 그때다."
어머니 임종을 보지 못한 게 가슴 아파"1998년 간석2동 본당에 있을 때, 서품 25주년 은경축을 맞았다. 내 사제생활이 결코 자랑할 게 없어 잔치는 못 하겠고 대신 지금은 돌아가신 최기산 주교님께 시골 공소(=본당보다 작은 천주교의 단위교회)에서 몇 년간 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2002년 덕적도 공소에 들어가 생전 처음 자취생활을 했다. 부모님께 거듭 설명했지만, 유배된 거라고 오해하셨다. 그리고 섬 생활 2년이 되던 해 두 분 모두 6개월 사이로 돌아가셨다. 섬에 있느라 어머니 임종을 보지 못한 것이 제일 슬프고 가슴 아프다.
2004년 신도시인 부천 상동 본당에 발령받았다. 거쳐 간 본당 14곳 중에 가장 힘들게 살았던 곳이다. 폐결핵 이후 30년 만에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했다. 쌓인 스트레스가 암의 원인인 것 같다. 많은 분들의 정성으로 지금은 건강하다.
2007년부터 살기 시작한 부천의 변두리인 고강동 본당 생활은 즐거웠다. 뉴타운 계획이 발표되자 동네가 술렁였다. 연극까지 만들어가며 뉴타운 반대운동을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임기 5년을 채울 수 있었다. 이제야 철이 들어 본당 사제 노릇을 제대로 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부개동 본당에 왔다. 5년 임기를 마치면 퇴임하겠다고 마음먹고 40년의 사제생활을 잘 마무리하려고 했다. 예수 공부에 각별히 공을 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구에서 꽤 고참인 나는 여전히 잘못과 실수가 많았다. 그런 나였지만 본당 교우들 덕분에 즐겁고 행복하게 지냈다. 그들은 나를 외롭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10월 15일에 열렸던 헌정음악회와 12월 15일의 출판기념회는 다른 어떤 사제도 받아보지 못한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0년을 돌이켜보면 자랑스럽고 보람된 삶보다는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게 훨씬 많았다. 권위적이었고 게으르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였다. 그러면서도 안 그런 척, 착한 척, 잘난 척하는 위선자였다.
이제 혼자가 되면 본색과 민낯이 드러날 거다. 알몸을 가리고 있던 겉옷을 벗고 더 이상 짙은 화장을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때 내 모습이 그럭저럭 봐줄 만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경청해주셔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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