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위선자" 민주화 운동 몸 담은 어느 사제의 고백

호인수 베네딕토 전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민낯 드러나도 봐줄만 했으면"

등록 2017.03.06 11:48수정 2017.03.0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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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인수 전 부개동 성당 주임사제가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가 2월 27일 부평아트센터에서 개최한 인천마당에서 강연하고 있다.
호인수 전 부개동 성당 주임사제가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가 2월 27일 부평아트센터에서 개최한 인천마당에서 강연하고 있다.김영숙

"며칠 전 전입 신고하러 동사무소(=동 주민센터)에 갔다. 동사무소 직원이 관련 서식을 주면서 쓰라고 했는데 제대로 작성하지 못해 몇 차례나 보완을 요구받았다. 다 쓰고 기다렸더니, 왜 안 가냐고 묻더라. '남들은 다 아는 건데 나만 모르고 살았나?' 하는 생각에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러고도 어떻게 잘난 척하고 살았을까? 아니 어쩌면 모르는 게 더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며 살았을지 모른다. 이제 생각해보면 나보다 멍청한 인간이 없는 것 같더라."

천주교 사제생활 40여 년을 마치고 지난해 말에 퇴임한 호인수 베네딕토 전 부개동성당 주임사제의 고백이다.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이사장 신현수)는 지난달 27일 저녁 8시 부평아트센터 2층 세미나실에서 '49회 인천마당'을 열었다. 강사로 나선 호 신부는 '또 다른 사랑법'이라는 주제로 지난 40여 년간 성직자로서 살아온 삶의 소회를 들려줬다. 청중은 호 신부의 사제생활 자체가 '인천지역 민주화 운동사'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강연 주제인 '또 다른 사랑법'은 호 신부가 지난해 11월 출간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지난 40여 년간 신문 등 여러 매체에 썼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호 신부는 이날 강연에서 "20여 년 전에 쓴 글도 수록했다. 원고를 정리하면서 예전에 썼던 것을 다시 읽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비슷한 상황이 반복돼 새롭게 느껴질 정도다"라고 한 뒤 "교회 내부와 사회를 비판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애정을 표현하는 스킨십만 사랑의 방법이 아니다. 잘못했다면 꼬집고 비판하는 것도 애정이 없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정했다"고 설명했다.

호 신부는 지난해 12월 31일 은퇴미사를 마지막으로 성직자로서 생활을 정리했고, 현재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아래는 강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김병상 신부 석방 위한 성명서 작성했다가 경찰서 연행

 호인수 전 부개동 성당 주임사제
호인수 전 부개동 성당 주임사제김영숙
"1976년 12월 7일에 답동성당에서 신품을 받은 지 40년이 됐다. 늘 남의 일, 까마득한 선배들의 일로만 보이던 정년퇴임이 어느새 내게 닥쳤다. 오늘은 내가 본당 14곳을 거치며 걸어온 지난날들을 찬찬히 회상해보려 한다.

신품을 받고 처음 간 곳이 주안1동 본당이었다. 그러나 한 달도 안 돼 성탄 밤 미사를 마치고 갑자기 각혈을 해 석 달간 병원에서 격리수용을 당했다. 두 번째 성당이 1977년에 간 부천 소사 본당이었다. 거기서 당시 구속됐던 김병상 신부님 석방을 위한 인천교구 기도회에 성명서를 써서 발표한 죄로 연행돼 부평경찰서 지하실로 끌려갔다.


그런 와중에 폐병이 재발해 1년간 휴양했다. 그때 최정숙 화가의 도움으로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시화전을 열었는데 그게 계기가 돼 첫 시집을 발간하고 계간지 '실천문학'의 추천으로 시인의 이름을 얻었다.

세 번째가 동구 송림동 본당이다. 수도국산 밑에서 많은 이들과 야학을 시작해 학생들이나 노동자들과 어울려 지냈다. 1979년 박정희 피살 소식을 잠결에 듣고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불렀던 곳도 그곳이었다."


본당 주임신부 돼 열정이 넘치기도

 호인수 전 부개동 성당 주임사제가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가 2월 27일 부평아트센터에서 개최한 인천마당에서 강연하고 있다.
호인수 전 부개동 성당 주임사제가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가 2월 27일 부평아트센터에서 개최한 인천마당에서 강연하고 있다.김영숙

"1980년, 처음으로 보좌신부에서 본당 주임사제직을 시작했다. 열정이 넘쳤다. 수배돼 도망 다니던 여대생을 숨겨줬다가 어르신들에게 오해를 사 밤새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난데없이 내 방에 총알이 날아와 죽을 뻔했던 일, 밤마다 동네 청년들이 모여 김치에 소주를 마시던 일이 떠오른다.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인 1983년, 부평1동(현 부평4동) 본당 재직 시절에는 현직 교사들과 야학을 재건하고 가톨릭노동청년회 지도신부를 맡았다. 24시간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으며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본당과 지역의 유지라는 어른들에게 '빨갱이 신부'라는 살벌한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86년, 부평을 떠나 남구 주안5동 본당으로 갔다. 부평4공단에서 주안5공단으로 이동이다. 정보기관의 감시와 견제는 계속됐다. 거기서 역사적인 '5.3 인천민중항쟁'을 겪었고, 본의 아니게 항쟁의 배후조종자가 돼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주교님은 구속 수감될지 모르는 나를 위해 나를 백령도로 보냈다. 2년간 백령도에 있었다.

그때 흑백 TV로 평양 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임수경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의 당찬 모습을 봤다. 백령도에서 철조망 저편의 황해도 장산곶을 바라보며 통일을 그리는 시를 썼고, 그것이 1991년 '백령도'라는 시집으로 세상에 나왔다. 지금도 가끔 백령도 친구들이 어물이며 고구마 등을 보내주는데, 고마운 일이다.

1994년 부임한 곳이 제물포 본당이다. 본당 설립 20주년을 기념해 북한 돕기 모금운동, 사월초파일에 성당 입구에 단 부처님 탄생 축하 연등, 사랑의 쌀통 설치 등의 행동은 본당 원로들의 눈에 곱게 보이지 않았다. 한 해에 사제관 입구에 버려진 핏덩이 아이 둘을 얻은 것도 그때다."

어머니 임종을 보지 못한 게 가슴 아파

"1998년 간석2동 본당에 있을 때, 서품 25주년 은경축을 맞았다. 내 사제생활이 결코 자랑할 게 없어 잔치는 못 하겠고 대신 지금은 돌아가신 최기산 주교님께 시골 공소(=본당보다 작은 천주교의 단위교회)에서 몇 년간 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2002년 덕적도 공소에 들어가 생전 처음 자취생활을 했다. 부모님께 거듭 설명했지만, 유배된 거라고 오해하셨다. 그리고 섬 생활 2년이 되던 해 두 분 모두 6개월 사이로 돌아가셨다. 섬에 있느라 어머니 임종을 보지 못한 것이 제일 슬프고 가슴 아프다.

2004년 신도시인 부천 상동 본당에 발령받았다. 거쳐 간 본당 14곳 중에 가장 힘들게 살았던 곳이다. 폐결핵 이후 30년 만에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했다. 쌓인 스트레스가 암의 원인인 것 같다. 많은 분들의 정성으로 지금은 건강하다.

2007년부터 살기 시작한 부천의 변두리인 고강동 본당 생활은 즐거웠다. 뉴타운 계획이 발표되자 동네가 술렁였다. 연극까지 만들어가며 뉴타운 반대운동을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임기 5년을 채울 수 있었다. 이제야 철이 들어 본당 사제 노릇을 제대로 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부개동 본당에 왔다. 5년 임기를 마치면 퇴임하겠다고 마음먹고 40년의 사제생활을 잘 마무리하려고 했다. 예수 공부에 각별히 공을 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구에서 꽤 고참인 나는 여전히 잘못과 실수가 많았다. 그런 나였지만 본당 교우들 덕분에 즐겁고 행복하게 지냈다. 그들은 나를 외롭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10월 15일에 열렸던 헌정음악회와 12월 15일의 출판기념회는 다른 어떤 사제도 받아보지 못한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0년을 돌이켜보면 자랑스럽고 보람된 삶보다는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게 훨씬 많았다. 권위적이었고 게으르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였다. 그러면서도 안 그런 척, 착한 척, 잘난 척하는 위선자였다.

이제 혼자가 되면 본색과 민낯이 드러날 거다. 알몸을 가리고 있던 겉옷을 벗고 더 이상 짙은 화장을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때 내 모습이 그럭저럭 봐줄 만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경청해주셔서 고맙다."
덧붙이는 글 <시사인천>에 실림
#호인수 신부 #부개동 성당 #인천사람과문화 #인천마당 #또 다른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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