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은미씨는 '3시STOP' 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내 삶이 '가성비'가 안 맞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결국 저는 높은 연봉과 다른 미래를 꿈꾸며 야심차게 개발 공부에 도전했지만 도리어 안 하느니만 못한, 바닥이 꺼지는 절망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늦은 시작'은 없다고들 했지만 직장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장기간 투자해야 하는 공부를 위한 여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럴 여력이 있었다면 차라리 공무원을 준비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걱정을 이야기하면 주변 분들은 주식, 증권, 펀드, 부동산 투자 심지어 로또에 이르기까지 많고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모을 수 있고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야하지 않겠냐고 조언합니다. 그러면서 저 역시 몇 년 후면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는 주제가 결국 저 안에서 벗어나질 못할 거라고 장담하듯이 덧붙입니다. 정말 그런가 싶어서 한숨이 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최악의 상황들이 겹쳐진다면, 결국 지난주 돌아가신 60대 남성처럼 가족과 어떤 연결도 없이 쓸쓸하게 내 미래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저는 단지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앞에서 언급한 저러한 방법들밖에 이야기하지 않는 이 사회에 문득 매우 억울하고 화가 났습니다. 사실 그보다도 더 거북스러운 건 주변에서 무언의 압박이기도 합니다. 가끔 택시를 타서 기사님들과 이야기를 하면 '여자는 돈 많은 남자 잡아서 시집만 잘 가도 성공한다'는 말을 쉽게 하십니다.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게 당연한 사회에서 남편 벌이에만 의지해 사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요? 어쨌거나 결혼을 해도 결국 일을 포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최근 한 공무원이 육아와 과한 업무에 치여 과로사로 돌아가셨다는 뉴스도 마냥 남 얘기 같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결혼을 해야 돈을 모은다는 말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혼을 하더라도 저 혼자 살 집 정도는 장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장하면서 저희 부모님들이 운 좋게도 저를 낳기 전에, 당신들이 거주할 유일한 집 한 채를 얻을 수 있었기에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한 것은 없게 자식들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요즘같이 이혼도 잦고, 사건사고도 많은 사회에서 저 역시 자식을 낳고 살다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 집이 없다면, 아이를 키우기는커녕 내 몸 건사하며 살기도 상당히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월급으로 언젠가는 제가 제 집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퇴근 시간만 되어도 집만 생각나는데 지친 몸으로 어떻게든 악착같이 돈을 벌겠다고 주식 관련 서적을 뒤적거리느니 차라리 영화를 한 편 다운 받아 보는 삶이 저에겐 풍요로울 것 같습니다. 단지, 그렇게만 살고 싶고 그렇게 살아도 내가 위험하지 않고 노후 보장이 되는 삶을 꿈꿉니다.
그게 나뿐만 아니라 당신도 그랬으면 더 좋겠습니다. 잘 오르지 않는 월급을 바라보면서 아무리 늘 송구해하며 아끼고 아끼더라도, 어쩌면 내 생명을 유지하는 일 자체가 처음부터 세상에서 가성비가 안 맞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차마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막막함을 제발 좀 같이 해결했으면 싶어 저는 오늘 조기 퇴근을 하고 거리로 나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로에서, 어떤 IT 노동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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