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쓰시마 왕인 박사에 대한 기록문
김수종
이에 일본 왕은 백제에 사신을 보내 왕인을 불러오게 했다. 드디어 16년 2월 왕인이 왔다. 태자는 왕인을 스승으로 삼아 많은 것들을 배웠는데, 모든 것에 거침이 없는 유식한 사람이었다. 아무튼 일본 기록은 전후좌우가 조금은 차이가 난다. 그래서 명확하지는 않다.
다른 기록에는 백제 17대 아신왕 때 왕인은 일본 오진왕의 초청을 받아 영암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왕인은 책 이외에도 도공, 야공, 와공 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갔다고 한다. 그의 행적이 바로 일본 고대 '아스카(飛鳥)문화'의 원조가 되는 것이다.
아직도 왕인의 도일 연대는 3세기 후반인지 4세기 후반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왕인은 일본에 전해지는 백제문화의 상징으로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당시 일본 조정에서 문인직(文人職)의 시조인 서수(書首)라는 존칭을 왕인에게 내렸고, 백제군(百濟郡)또는 백제향(百濟鄕)이라 일컫는 지역을 주어 그의 후손들이 살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왕인은 중국인이었는데, 백제로 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6세기에 들어 백제는 일본에 대하여 새로운 문화시책의 하나로 왕인과 비슷한 최고 전문가인 오경박사들을 수시로 파견한다. 513년에 단양이(段楊爾)가, 3년 뒤에는 고안무(高安茂)가 교대로 일본으로 갔다. 이후 마정안(馬丁安), 왕류귀(王柳貴) 등이 연이어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