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에서 왕인 박사를 만나다

아스카 문화의 원류, 왕인 박사의 현창비 앞에 서다

등록 2017.03.27 15:40수정 2017.03.2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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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쓰시마 북섬 동북에 있는 작은 반도인 '시타자키(舌崎)'로 갔다. 이곳은 미우다 해수욕장 인근에 자리하고 있지만, 사람 출입이 제한되고 있는 곳이다. 안쪽에 50살이 조금 넘는 군사용 등대가 외롭게 하나 있고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바다 조망이 좋은 조금 넓은 터에 별장을 지으면 좋을 것처럼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 쓰시마 동백이 좋은 시타자키 ⓒ 김수종


차를 타고 미우다 해수욕장을 지난 언덕 위 뒷길을 따라서 한참을 달리면 정말 좌우가 10m도 되지 않을 정도로 폭이 좁은 길이 나온다. 비포장도로인데다 좌우로 바다가 보이는 가운데 천천히 아슬아슬하게 길을 달리면, 출입을 금한다는 의미의 철망이 보인다. 인근에 차를 주차하고는 이제부터 한 시간 정도 걷는다.


일본 쓰시마 시타자키의 동백나무 숲 ⓒ 김수종


우선은 좌측의 바다가 좋다. 멀리 일을 하고 있는 어민들 모습도 보이고, 저 멀리 지나가는 배들도 보인다. 이곳은 순전히 동백나무 숲길이다. 좁은 길을 따라 동백 숲이 좋다. 직진하여 전진하면 바로 북쪽 바다다. 바닷가에는 정말 누워서 자라는 나무들이 보인다. 바람이 심하고 강하여 눕지 않고는 성장하기 힘든 환경인 것 같다.

일본 쓰시마 나무 위에 올라서서 기념촬영 ⓒ 김수종


이곳 나무 위에 살포시 누워보기도 하고 가지 위에 앉아서 사진을 찍는다. 풀밭도 아닌 나무 위에 올라앉거나 서서 사진도 찍고 걷는 기분이 묘하다. 그리고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등대가 있는 곳으로 간다. 정말 사람은 전혀 없고 작은 길을 따라서 동백을 보면서 가면 오랜 된 등대가 나온다.

일본 쓰시마 멀리 시타자키 등대가 보인다 ⓒ 김수종


일본 쓰시마 동백이 참 좋은 시절이다 ⓒ 김수종


무인등대 하나를 위해서 반도 전체를 비워둔 것 같다. 인적이 없지만 동백나무 숲이 좋아 볼 것은 많고 자연도 멋지다. 그러나 조금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등대를 살펴 본 다음, 다시 동쪽 바다를 본다. 아래에 바위들이 좋다. 점판암의 바위들은 정말 묘한 느낌이다. 강한 파도와 바람에 마치 차가 방금 지나간 것처럼 진하게 바퀴자국이 보인다. 자연이 만든 자국이 묘하다.

일본 쓰시마 점판암 지형이라 바다가 바위의 모양이 특이하다 ⓒ 김수종


일본 쓰시마 키 작은 나무 위에 서다 ⓒ 김수종


안쪽에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시타자키(志多崎)신사'가 보인다. 사람은 없고 건물도 변변치 않은, 우리식으로 보자면 절에 딸린 작은 암자와 같은 신사이다. 정말 작은데 바다를 바라보고 있어 무엇인가 소중한 소망을 빌기 위해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일본 쓰시마 50살이 조금 넘은 시타자키 등대 ⓒ 김수종


인적이 드물고 너무 동백 숲이 좋아서 정말 세상의 사람들에게 꽁꽁 숨기고 싶은 곳이다. 이런 곳에 자리를 깔고 그냥 노숙을 하고 가면 좋을 것 같다. 2~3일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조용하고 바다와 나무가 좋아서 속이 확 트이는 것 같다. 기분 좋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멋진 곳이다. 

일본 쓰시마 시타자키 신사 ⓒ 김수종


이어 다시 길을 돌려 와니우라로 방향을 잡는다. 오전에 둘러보지 못한 마을과 함께 지난 2007년에 건립된 '백제국 왕인 박사 현창비(百濟國 王人 博士 顯彰碑)'를 살펴보았다. 


백제의 영암 출신 학자로 알려진 왕인 박사는 우리 역사에는 기록이 없는 인물로, 일본 고대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이름이 적혀 내려오는 학자이다. 일본에 논어 10권과 천자문을 전했다고 한다. 일본어로는 '와니(王仁)' '와니기시(わにきし, 和邇吉師)'라고 표기되어 있다.

일본 쓰시마 왕인박사 현창비 ⓒ 김수종


"백제에 현인이 있다면 일본에 보내달라"는 요청을 먼저 한 사람은 일본의 오진(應神)왕이었다. 이때 백제가 보낸 사람이 와니기시, 바로 왕인 박사이다. 그가 처음으로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달하였다' 하여 왕인을 일본에서는 유교와 한자를 가르친 원조라고 한다.

또 다른 기록에는 오진왕 15년(284), 백제왕이 일본에 아직기(阿直岐)라는 사람을 보냈는데, 아직기는 경전에 능해 태자의 선생이 되었다. 이때 왕이 아직기에게 '그대와 같은 훌륭한 박사가 또 있는가?' 묻자, 아직기는 '왕인이라는 뛰어난 이가 있다'라 대답했다.

일본 쓰시마 왕인 박사에 대한 기록문 ⓒ 김수종


이에 일본 왕은 백제에 사신을 보내 왕인을 불러오게 했다. 드디어 16년 2월 왕인이 왔다. 태자는 왕인을 스승으로 삼아 많은 것들을 배웠는데, 모든 것에 거침이 없는 유식한 사람이었다. 아무튼 일본 기록은 전후좌우가 조금은 차이가 난다. 그래서 명확하지는 않다.

다른 기록에는 백제 17대 아신왕 때 왕인은 일본 오진왕의 초청을 받아 영암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왕인은 책 이외에도 도공, 야공, 와공 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갔다고 한다. 그의 행적이 바로 일본 고대 '아스카(飛鳥)문화'의 원조가 되는 것이다.

아직도 왕인의 도일 연대는 3세기 후반인지 4세기 후반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왕인은 일본에 전해지는 백제문화의 상징으로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당시 일본 조정에서 문인직(文人職)의 시조인 서수(書首)라는 존칭을 왕인에게 내렸고, 백제군(百濟郡)또는 백제향(百濟鄕)이라 일컫는 지역을 주어 그의 후손들이 살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왕인은 중국인이었는데, 백제로 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6세기에 들어 백제는 일본에 대하여 새로운 문화시책의 하나로 왕인과 비슷한 최고 전문가인 오경박사들을 수시로 파견한다. 513년에 단양이(段楊爾)가, 3년 뒤에는 고안무(高安茂)가 교대로 일본으로 갔다. 이후 마정안(馬丁安), 왕류귀(王柳貴) 등이 연이어 다녀왔다.

일본 쓰시마 후배인 지리학 전공의 안종천 박사랑 ⓒ 김수종


554년에는 오경박사 외에도 역(曆)박사, 의(醫)박사 등이 교대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들은 누구나 현지 어디에서든 환영과 존경을 받았다. 가르치는 대상은 왕족과 귀족이 중심이었지만, 나중에는 일반 서민에까지 배움을 전했다. 이 모두가 왕인으로부터 시작한 문화 전파의 위대한 길이었다.

일본 쓰시마 와나우라의 바닷가 창고 ⓒ 김수종


일본 쓰시마 와니우라 마을에서 올려다 본 한국전망대 ⓒ 김수종


현창비를 둘러보고는 기념촬영도 했다. 이제 와니우라 마을로 갔다. 마을은 생각보다 이쁘고 멋진 곳이다. 과거에 큰 항구가 있던 곳이라 그런지 집들도 좋고, 바닷가에는 많은 창고와 어민들의 조합 건물이 보인다. 요즘은 사람이 많지는 않은지 조용한 것이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와니우라마을에서 일본 쓰시마 ⓒ 김수종


5월 초순에 이팝나무 축제가 열리면 이곳 마을에서 올려다보는 조망이 무척 좋을 것 같다. 언덕 위에 있는 한국전망대까지는 나무 계단이 만들어져 있어 오르내리면서 나무도 보고 산책을 하면 최상일 것 같다. 아무튼 마음에 드는 작은 항구와 마을이다.
#일본 #쓰시마 #와니우라 #시타자키 #동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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