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역판 <지리산> 출판기념회 팸플릿 마쓰다가 번역한 이병주 작가의 장편 소설 <지리산>이 2015년 출간됐다. 가수 아라이 에이이치(新井英一, 67)가 출판 기념 축하 공연을 하고, 시인 김시종(88)이 출판기념 강연회를 했다.
권세진
학교 교육이 미래세대를 향한 것이었다면, 번역은 기성세대를 향한 것이었다. 그는 어른들이 가진 생각이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준다고 봤다. 어른들의 생각을 바꿀 방법으로 찾은 것이 번역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일을 알 수 있는 책을 일본에 소개하고 싶었다. 문제는 독자가 일본인이라는 점이었다.
해방 이후 세대의 한국 작가들이 묘사한 일본인을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직접 만나보지 않고, '나쁜 일본 사람'이라는 이미지로만 일본인을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병주는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사람이다. 그의 소설에는 조선인 학생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교사도 나오지만, 반대로 반일 감정을 가진 학생을 돕다 파면된 교사도 있다. 마쓰다씨는 <지리산>이 '인물들의 얼굴이 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역사적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에게는 애착이 가는 책이었다.
약자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 마쓰다씨는 '무지개'에 관해 물을 때마다, "그렇게 크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모임"이라며 손사래 친다. 부락해방운동을 하며 알게 된 친구들이 만든 작은 모임일 뿐이다. 모임을 시작한 경위를 설명할 때도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아주머니들의 힘이 컸다"고 말한다. 그는 '무지개'도, 이번 서울 방문도, '사소한' 것이라 여긴다. 거창한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 역사를 가깝게 느껴주길 바랐다.
그런데 그런 사소함이 변화를 만들었다. 마쓰다씨는 그들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알려줬고, 서울까지 데려왔다. 관광 목적이라면 지루할 수 있을 법한 역사유적들만 골라 방문했다. 그렇게 '무지개' 학생들은 한일 관계에 대한 관심을 넓혔다. 드라마를 좋아하던 학생들은, 이제 "한국어와 역사를 더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무지개만큼이나 '사소'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꾸준히 해온 한일관계 및 한일 역사 공부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묻자 "나의 위안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답변했다. 언제나 학생들에게 "이지메를 모르는 척하면 언젠가 너희가 당한다. 그러니 용서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차별이 있는 사회를 그냥 놔두면, 언젠가 그 차별이 자기에게 향할 수 있다. 약자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 그곳이 바로 그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는 김학순 할머니와 야나기모토 피해 할아버지 두 분이 하신 말씀을 언제나 가슴에 새긴다. "내가 입은 피해에 대한 개인적인 보상을 원하는 게 아니다.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 그런 마음 하나로 일본에 왔다." 보상하라는 말보다 '같은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가슴 아팠다. 가해자 국민으로서 한없이 미안했다. 피해자는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도 제쳐놓고 미래의 인권을 말하고 있었다. 고작 '약자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당연한 말을 할 뿐인데, 일본은 그것마저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인보(人寶)라는 말이 있다. 아니, '그런 말이 있다'고는 할 수 없겠다. <지리산>을 소개했던 친구 최호진 군이 지어낸 괴상한 말이니까. 별게 아니라, 사람(人)과 보물(寶)을 합친 말이다." 어찌 보면 진부한 말이지만, 마쓰다씨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 발음이 정겹다. "인연이라고 할까? 많은 한국 분들이나, 그런 활동 하는 일본 분들을 만나는 게 '인보'라고 생각한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저를 인도해 주는 것 같다. 나라 교대 시절 만났던 한인 유학생 최호진 군, 고 김학순 할머니, 한국어 교실 '무지개' 학생들처럼 직접적 만남도 있고, <지리산>의 이병주 작가처럼 간접적인 인연도 있다." 마쓰다는 이런 인연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장구 20개와 야나기모토 비행장그는 일본 내 한일관계와 식민지 역사, 인권 교육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본인들은 식민 역사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전혀 없다. '한일합방'이라는 용어는 교과서에서 배우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한다. 교사조차도 모른다. 토지조사사업, 창씨개명, 강제연행, 강제노동, 징병, 위안부 등 한국인이 잘 아는 문제들을 일본인은 잘 모르기 때문에 갈등이 끝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좀 더 사실을 지각하고, 인정해야만 한일관계가 호전할 수 있다. 앞으로 일제 강점기 가해 당사자들은 반성하고 처벌받아야 하며, 당시의 일반 시민들과 그 후손들은 그런 침략을 지지한 것, 그런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있는 것을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마쓰다씨는 다음 학기엔 나라 현의 다른 학교로 전근한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한국 문화 교육을 위해 사용하던 장구 20여 개를 옮겨야 한다. 그는 한국인 강제노동이 있었던 야나기모토 비행장 진상규명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야나기모토 비행장이 있는 텐리(天理)시가, 기존에 있던 '강제노역' 안내판을 없앴다. 이를 재설치하라고 요구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이미 텐리시와 자매도시인 한국 서산시에서는 시청 소녀상 옆에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텐리시에선 여전히 안내판 설치를 위한 운동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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